공부, 운동, 악기 등 여러 분야를 막론하고 고된 연습과 교육을 받는 것을 빗대어 '스파르타 훈련'이라고 표현한다. 이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의 고대 도시, 스파르타에서 유래되었는데 당시 스파르타는 그 누구도 대적하지 못할 강력한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스파르타 군대는 전사의 수도 적지 않거니와 체력적인 면뿐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다른 도시 군대들과 비교해 훨씬 뛰어나고, 용매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사회 분위기 자체가 전쟁을 숭배하고 예술을 천시했다. 여성들 역시 굉장히 거칠어서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고 춤을 추며 때로는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당시 그리스에 거주하던 시민 중 가장 '센 캐'만 모여있는 곳이 바로 스파르타 라고 말할 수 있으나 이곳 시민들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시나 지금이나 '영토의 크기'는 국가의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넓고, 비옥한 땅을 갖고자 고대 그리스의 여러 국가들은 다른 도시 국가를 침략했다.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했던 스파르타는 바깥과 교류도 적었고, 지형적 특성상 군사적 요충지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눈독 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18세기 말,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던 외세처럼 말이다.
예상치 못한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지던 스파르타는 최정예 군대를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파르타인들에겐 일상도, 직업도,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남자 아이들은 7살이 되면 가족들과 떨어져 아고게(Agoge)라는 공교육기관에 들어가 최고의 전사로 성장하기 위한 신체 훈련과 각종 군사 기술을 익혔다. 치열한 전장의 현장을 경험해보고, 살아남는 법을 터득할 수 있게 하고자 때로는 밥도 주지 않고, 극한 추위 속에서 얇은 천 하나로 견뎌야 할 때도 있었다. 심지어 무릎을 꿇고 채찍을 맞는 거의 형벌에 가까운 훈련을 받기도 했다.
누군가는 포기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애초부터 포기란 것을 가르치지도 않았다. 스파르타를 위해 전쟁에서 싸우고, 스파르타를 위해 싸우다 전쟁에서 죽는 것이 가장 큰 영광이라고 세뇌시켰던 것이다. 도시의 모든 남자가 군인이었던 상황에서 어느 누가 감히 포기를 논하고, 다른 꿈을 꿀 수 있으랴. 여자들 역시 훗날 스파르타의 강한 전사가 될 아들을 낳기 위해선 강인한 체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남성들처럼 결투를 하고 몸을 단련했다. 그래서인지 스파르타는 그리스 도시 국가 내에서도 미남, 미녀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스파르타가 '스파르타 훈련'으로 강한 군대를 양성해 낸 덕분에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으나 모든 것은 쇠하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전쟁을 한 스파르타에겐 더이상 싸울 힘이 남아있지 않았고 결국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재밌는 점은 스파르타가 망한 이유가 전쟁 때문이 아니라 저출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통해 강력한 부를 축적한 스파르타는 서서히 아이를 낳지 않기 시작했고, 똥줄이 탄 스파르타 정부는 다둥이 정책을 펼치기도 했으나 건국 초기에 비해 80%나 감소한 출산율을 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추측컨대 사랑하는 아들이 혹독한 군사 훈련을 받고 전쟁에서 싸우는 게 싫었던 부모들이 일부러 아이를 낳지 않은 게 아닐까? 오래 전, 스파르타 훈련으로 고생 많았을 어린 소년과 청년들이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