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

모성이라는 이름의 신화.

by MissP

모성애라는 것은 정말로 존재하는가.


모성애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부성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어머니가 되었다고 해서 모성애가 생긴다는 건 아니라고 느낀다. 나는 그저 태초에 인간이라는 동물이 가진 감정이며, 사람마다 깊이와 범위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 생각한다.


모성애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생모에게서 생기는 감정이라면 계모는 모성애가 없는 것인가?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환상이 있다. 태초의 신,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가 그러하듯, 우리에게는 자식을 낳고 기름에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진 큰 의미가 부여된다.


여기에서 오류가 발생한다. 모성애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어째서 버려지는 아이들이 수천수만 이고, 생모 생부에게 학대받는 고통에 노출된 아동들이 수천수만 인가.


어머니, 아버지는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예로는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을 돌봐주는 사람들부터 바른 성직자까지. 그들에게 누군가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그렇게 어머니, 아버지가 된다. 여러분들이 계시겠지만, 이태석 신부님 같은 경우도 해당된다.


더구나 인간만이 지닌 감정도 아니다. 살아있는 생물이라면 모두 모성애와 부성애를 지닌다. 이는 종족 번식과 본능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결혼한 3쌍 중 1쌍이 이혼에 이른다고 한다. 법원에서 처리하는 이혼 법정이 하루 대략 180건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그 사이에는 분명 아이가 있는 부부가 존재할 것이다. 그 부부는 아이를 각자 양육하려고 법정다툼을 지속할 수도, 아이를 양육하지 않으려고 법정다툼을 지속할 수도 있다.


드라마 굿 파트너에 다양한 양육권 다툼 장면이 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보면 부부가 아이를 모두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의 부족한 점을 힐난하면서도 법정에서는 자신의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아이를 맡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부부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스스로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고 할 뿐이다.


물론 이는 드라마이고, 국민정서상 실제 사례보다 완만히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는 매정하게 자식을 버리는 부모가 천지에 널렸으니까 말이다. 과연 친부모라고 해서 아이들을 온전히 잘 키우고, 계모 계부라고 해서 아이들을 온전히 키우기 어려운가? 나는 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친부 친모는 아이가 태어난 순간부터 모성애와 부성애를 느끼며 아이를 완벽하게 사랑하고 키울 수 있는 걸까? 그리고 또한,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고 해서 모성애와 부성애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부모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더 무섭고 불안한 일이다. 한 사람을 온전히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된다는 것, 사람을 만든다는 것이 얼마나 거대한 일인가. 낳고 태어나고 먹고 자라고 입고 행동하고 말한다고 해서 사람이 되는가?


남자도 아버지가 됨에 엄청난 무게와 책임감을 느끼고, 여자는 더더욱 잉태한 순간부터 모성애를 타인도, 자기마저도 스스로에게 강요한다. 사람에 따라 느끼는 깊이와 범위가 다르고, 시간이 소요될 수도 있으며, 없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오히려 이 과정이 귀하디 귀한 아이들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특히나 친모친부에게 모성애나 부성애가 없거나 부족할 경우, 아이들은 다른 보살핌을 줄 수 있는 타인에게서 받을 수 있는 기회와 애정을 박탈당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성애라는 이름에 쓰인 환상을 벗겨야 한다. 모성애는 우리가 생각하는 숭고하고 헌신적인 희생의 이름이 아니다. 그건 되려 사람들을 옭아매는 허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두 부족함을 지닌 존재로 자신의 부족함과 온전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부모도 역시 사람인지라 자신의 기분을 아이들에게 투사할 수도 있고, 사랑의 모습도 제각각일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부족한 사람임을 알고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 모두가 아이를 바라볼 때는 오롯이 그 아이만을 온전하게 바라봐주어야 한다.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 자랄 때,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지 안다면 아이들을 대할 때 두려움이 먼저 앞설 것이다.


어머니, 따스하고 포근한 이름.

그리고 참으로 무겁고도 두려운 이름.


우리는 좀 더 엄밀히 자신과 아이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각자 가진 모성애와 부성애를 이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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