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

참으로 이중적인 자기혐오.

by MissP

나는 나를 참(really, a lot) 좋아한다.

그리고 나를 조금(pretty, a little) 싫어한다.


나는 나의 성실함, 꾸준함, 노력함, 독창성, 사랑스러움, 순수함, 끈기, 의리, 기억력이 좋음,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해이함, 게으름, 산만함, 고집스러움, 잘 기억 못 함, 싫은 점을 잘 잊지 않음, 영악함, 폐쇄적인 태도, 미움을 싫어한다. 스스로 내 부족함을 인정하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가장 못난 점을 제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를 매우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면서도 나를 싫어한다. 나의 장점의 뒷면이 바로 단점이 되고, 단점의 뒷면은 장점이 되기 때문이다.


타인이 보는 것은 이미지일 뿐, 실제 그 사람을 알기까지는 평생을 같이 산 가족들도 잘 모른다. 모두가 남들에게 자신의 100프로를 보이고 살진 않는다. 때로는 걱정할까 봐, 때로는 싫어할까 봐, 때로는 부담스러울까 봐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 사람의 내면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과 경험, 그리고 직접 겪은 것과 보고 들은 것, 주변 환경, 미디어, 문화, 언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처럼 다양한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같은 색이라는 것은 없다. 한집에서 나고 자란 형제도 다르고, 하물며 쌍둥이도 다르지 않은가?


사람은 자기를 계속해서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반문하고 싶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아는 것인가? 나를 좀 미워하면 안 되는 것인가?


자기 집착을 버리라고 하고 싶다. 갓 스무 살이 되자 꽤나 순진했던 나에게는 유독 주변에 친구, 선배, 언니, 오빠, 상사 심지어 후배, 동생들까지 모두가 자신의 경험을 말하며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고 나를 '가르쳤다'. 뭐, 좋은 경험이었고, 배운 바도 많았지만 그건 그들의 경험이었기에 나에게는 적용할 수 없었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 속 캐서린처럼 나는 너무 왈가닥이었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누군가 이런 말을 할 때는 어떤 뜻을 가지고 있으니 저래야 하고, 사회에서는 이래 저래야 하고 말이다. 나는 그들의 말처럼 '고전문학 속 레이디'는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의 외형과 외모만을 보았지, 보지 못했던 것은 그동안의 내 삶이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나? 나는 순진하지만, 녹록지 않은 사람이기에 그들의 조언이 더 쓸모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다른 이의 조언도 필요하지만, 스스로를 조금 더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상태는 자신이 제일 잘 아는 것 아닌가? 받아들임, 그래야 진짜로 자기 사랑이 찾아온다. 빈그릇이야 말로 다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매번 느끼는 것이 있다. 당신이 이 땅에 태어나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점에 큰 의의를 두지 말라고 말이다. 선천적인 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거기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만족도 없고, 불만만 생기며, 계속해서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과 자신이 싫은 것은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상황을 조절할 수 없는 무능력감에서 오는 상실감과 자괴감이다. 그건 자기혐오의 그릇이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싫은 것은 말 그대로 나의 어떠한 점이 매우 혹은 약간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다. 고쳤으면 하지만 고치고 싶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나의 단점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나를 싫어한다고 해서 내가 소중하지 않고 미운건 아니다. 나는 내가 소중하고 나를 사랑한다. 바로 여기서 이중적인 자기혐오가 온다. 나는 나의 이런 이기적인 나의 모습을 좋아하면서도 싫어한다. 뭐 그렇다.


나는 남들과 나를 잘 비교하지 않는다. 대신에 나와 나를 비교한다. 예전에는 잘했는데 왜 못하냐고 내가 싫어지기도 하고, 너무 잘했다며 엉덩이를 토닥거리기도 한다. 예전에 비해 외모가 바뀐 내가 싫기도 하고, 또 때론 마음에 들기도 한다. 예전에 비해 많이 유해진 내가 정말 사랑스럽기도 하고, 아직도 많이 딱딱한 내가 싫기도 하다. 예전에 비해 느긋해진 내가 너무 좋기도 하고, 게으른 내가 싫기도 하다. 이렇게 자신에 대한 모든 감정은 항상 이중성을 띤다. 이런 복잡한 생각에서 자기혐오가 생기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내 모든 모습을 사랑하고, 싫어한다. 참으로 혼란스러운 애증이다. 나는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진 않는다. 그저 때로는 아주 죽도록 미운 내가 덜 힘들기를 간절히 바라며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이 시기가 지나기를 기다려준다.


이 글도 두서없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단순한 생각의 나열이지 않은가? 혼란스럽고 질서는 없다. 나는 그래서 마음에 든다.


동전에는 앞면이 있으면, 뒷면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때로는 던져 앞면이 나올 때도, 뒷면이 나올 때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고, 때로는 혐오한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물그릇에 먹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고 해서 그 물이 물이 아닌 것은 아니지 않나? 자신이 미워죽겠는, 혐오하는 그 모습마저도 당신의 사랑스러운 이면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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