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이유
반대편에 선 우리는
마주 보고 서로에게 날 선 말들을 내뱉는다.
악악거리며 분노를 표출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춘다.
네가 보고 있는 그 모습이 내 모습일까,
내가 마주하고 있는 저 모습은 네 모습일까.
폭력과 훈육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시행하는 자의 감정에 있다고 본다.
시행하는 자가 자기 자신의 분에 못 이겨 휘두르는 말과 행동은 폭력이고, 그 행동과 말을 받는 자를 가르치고 깨닫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은 훈육이다. 그렇다고 질서 없이 오만데 다 휘두르는 것은 어떤 의도인지 무관하게 폭력이다.
왜 폭력은 위험한 걸까?
그건 당하는 사람에게 평생의 기억을 남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단 폭력이란 육체적인 것만 해당하지 않는다. 언어의 폭력이란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를 훈육할 때 절대 감정적이면 안된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게임을 한다. 엄마는 공부 먼저 하라고 했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 화가 난 엄마는 아이를 향해서 시험 성적도 이것밖에 안 되는 게 무슨 게임을 하냐며 아이의 같은 반 친구와 비교를 한다. 아이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위축될 것이다. 비단 부모와의 관계뿐 아니다. 연인, 직장, 친구 모든 관계는 마찬가지다.
직장에서 화가 난 상사가 페이퍼를 집어던지며, 일을 이따위로 할 거냐고 사무실이 떠나가라 호통을 친다고 생각을 해보자. 사무실의 분위기는 얼어붙고, 다른 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직원은 수치심과 두려움에 일도 제대로 못하고 다음날부터 출근이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친구들끼리 모여 술을 마신다고 해보자. 잘 생긴 남자인 친구가 옆자리 여자인 친구에게 오늘 화장이나 옷이 예쁘다고 했다고 하자. 그 모습에 질투 난 다른 여자인 친구가 갑자기 칭찬받은 친구를 내리깐다. 괜히 기분을 망친 친구의 얼굴은 울그락 불그락 일그러지고, 다른 친구들도 난감해하며 자리는 엉망이 될 것이다.
애인은 어떠한가?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여자는 구두를 신었고 산책이 싫었다. 그래서 음식을 먹는 내내, 뭔가 기분이 나쁘다고 계속해서 말을 한다. 남자는 참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즐거움은 잊고 짜증만 가득하다.
서로 마주 본 체 날 선 말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면 그 순간은 시원하고 개운할까? 아니다. 내 입을 떠난 말은 날카로워서 자신마저 상처를 입히며 떠난다. 그 말들은 다시금 자신의 귓가로 돌아와 자신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칠 것이다. 당신이 명사수라면 한마디로 상대를 함락시킬 수 있겠지만, 우리는 명사수가 아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화살을 쏘아봤자 빗나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신이 화살을 열심히 쏘는 동안, 당신의 손과 몸은 상처로 가득할 것이다.
실컷 화를 낸 엄마는 잠시 후 아이에게 미안해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아이는 혼란스럽겠지만, 곧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인생에 영향을 크게 줄 수 있는 이상한 보상 욕구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부하직원에게 화를 낸 상사는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멋쩍게 내려와 회식을 제안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저녁 약속이 있다며 피할 것이다. 회의를 진행할 때도 자신이 두려워 다들 아이디어를 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질투로 친구를 비하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하나둘씩 떠나간다. 어울리던 무리에서 자신의 험담이 오간다. 그 자리에 있던 마음에 들던 남자인 친구는 친구를 비하하는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엮이기 싫어한다. 되려 이유 없이 공격을 당하던 그 친구와 자주 어울리는 것 같다. 애인에게 짜증을 있는 대로 내던 여자는 결국 그 모습에 힘들어했던 애인과 헤어졌다. 이제는 운동화를 신어도 같이 걸어갈 애인이 없다.
서로 쏟아내도 그러한데, 당하기만 하는 입장에서는 그 모든 공격을 막아낼 재간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어느샌가 무례함, 상스러움과 천박함이 솔직함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음흉함으로 바뀌었다. 음흉함과 배려, 직선적인 것과 명료함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나도 솔직한 것이 더 좋고 마음에 들지만, 허용되는 솔직함이라는 선이 있다. 나는 그 선이라는 것이 점점 더 불분명해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어느새 솔직함을 가장하여 서로에게 무례를 저지르며 우아함이라는 것에서 멀어지고 있다.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무례와 무식함이 어느새 매력과 사랑스러움, 솔직함으로 포장되기 때문이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쓰고 있는 나 조차도 글로, 말로 참 많은 무례를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스스로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깨달았을 때,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작은 변명이라도 하자면 나는 주변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 편이라, 주변의 상황에 내 불편감이 많아지거나 마음이 심란해지면 많이 날카로워지고 날카로워진 만큼 말 역시 창이 되어 날아간다.(그렇다고 욕을 하고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나의 기준에서)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분명 상대가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그 불분명한 경계에서 망설인다면 그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말은 도전이 아니라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 하루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들만 할 예정이다. 당신도 오늘은 기품 있는 당신의 말에 의해 상대에게 행복함이 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