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상처의 치유자.

by MissP

상처

1. 몸을 다쳐서 부상을 입은 자리.
2. 피해를 입은 흔적.


시리도록 아픈 내상은 잘 치유가 되지 않는다. 이토록 아픈 상처의 치유자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의 몸은 매우 약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세상 어떤 동물보다도 유약한 면이 있다. 영유아뿐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외형은 큰 변함이 없고, 튼튼하지 않다. 털이 충분히 있어 더위와 추위를 대비할 능력도 없고, 딱딱하지 않은 매끄러운 피부는 작은 자극에도 생채기가 쉽게 생긴다. 거기에 적으로부터 매우 빨리 달리거나 높은 점프도 불가능하다. 보호색이 있어 숨거나 스스로를 보호하기도 어렵다. 익지 않은 생고기나 상한 음식을 먹으면 급체를 하거나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 소화기관도 매우 유약해 과한 식이섬유나 생채소 역시도 소화장애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치아로 단단한 껍데기를 부수거나, 껍질을 벗겨내어 섭취할 수도 없다. 거기에 질병까지 생긴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지기도 한다. 너무 마르거나 너무 과해도 호흡기, 뇌, 장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벼운 감기나 세균에도 쉽게 죽을 수 있다. 이토록 인간은 너무나 약하고 작은 존재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하고, 더 큰 위험을 막기 위해 파상풍 주사를 맞기도 한다. 큰 질병으로 인해 수술이라도 하면, 온갖 약과 보약, 치료와 관리를 받는다.


그런데 정작 마음의 상처는 크기의 가늠도 어려울뿐더러 크게 들여다보지 않는다. 수많은 강의들, 정신과 의사들의 방송 출연, 정보의 범람으로 인해 이제는 사람들이 마음의 상처도 중요하다고 여기지만 그럼에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


아마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신체는 너무도 신기하게도 기억을 한다. 그래서 큰 수술을 하거나 상처가 나면 치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수술 자국이나 상처 부위가 간지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한다고. 실상 인체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고, 고통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은 계속해서 그 감각을 느끼는 것이다.


그럼 정신적인 충격은 어떠할까?

정신적 고통은 분명 외상이 없음에도 계속해서 마무리되지 못한 고통으로 자신을 끌어당긴다. 눈에 보이는 상처야 약을 발라주고 나아가는 과정을 본다지만, 마음의 상처는 방치되기 십상이다.


뇌에는 신기하게도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느끼는 부위가 같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신경이 생겨나며 인체에 메시지를 보낸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대비를 하는 것이다.


폭력을 심하게 당한 사람의 뇌, 정신적으로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의 뇌는 잊지 않고 그 고통을 기억하는 듯하다. 자신의 주인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말이다.


꽤 오래전 연구 결과에 타이레놀이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물론, 정신과적 약물과는 큰 차이가 있겠지만 아마도 뇌에서 동일한 곳에서 작용하여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눈에 보이는 몸의 상처는 상처가 낫는 과정을 느끼고 눈으로 보고 안심할 수 있다. 그럼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낫는지 알 수 있을까?


'시간이 약이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저 말은 폭력과 다름이 없다. 차라리 침묵과 따뜻한 포옹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작은 생채기는 시간이 약이 맞지만, 크게 부풀어올라 터진 자국은 시간이 약이 되지 않는다. 정말로 약을 발라주어야 한다.


그게 어떤 상처가 되었든, 그 상처의 치유자는 자신이다. 혼자서 치료가 어렵다면, 서포트해 줄 수 있는 전문의와 상담가들이 있지만, 그들은 약을 바르는 방법과 약을 제공해 줄 뿐이다. 약을 먹을지 말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다.


인간은 몸과 정신이 연결된 유기체이므로, 이겨낼 수 없는 상처에 정신뿐 아니라 몸 역시 아우성치고 있을 것이다. 그 늪에서 구해낼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건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다. 그래서 몸이 아플수록 마음을 챙기고, 마음이 아플수록 좋은 것을 먹고, 몸을 챙겨야 한다.


고통의 기억은 숨길수록 그 강도가 강해진다. 비록 고통스럽고 마주 보기 힘들지라도 그 상처를 계속 꺼내야 한다. 스스로 그 상처를 마주 보고 이겨내고 약을 발라주고 해야 한다. 그 흉하고 고통스럽고 고역스러운 냄새가 나는 상처를 자꾸 내보여야 한다. 때로는 그 상처에 누군가는 눈살을 찌푸리고 구역질을 할 수 있겠지만, 과감히 드러내야 한다. 상처에 약을 바르고 햇빛도 쐬고 어느 순간 딱지가 생기고 떨어지길 반복하면서 새살이 돋고 흉살이 남아있다가 흐려지도록. 곯아 썩어 문드러진 그 상처가 자신을 통제로 삼키지 않도록.


상처를 받은 사람이 그 상처의 수렁 속에 허우적댄다고 해도 그 과정을 직접 겪고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세계가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간은 고통을 승화할 수 있다. 아무리 아픈 상처라도,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기절할지라도. 자신이 아닌 남의 상처에 예기치 못하게 입은 사고라 할지라도.


우리는 모두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고통 속 기억은 반복적으로 찾아올 것이고, 계속해서 자신을 어둠으로 끌고 갈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어느 순간, 그 고통이 찾아와도 상처가 아물어 그저 잠시 느껴지는 간지러움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그러니 그 구원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 되기를 바란다. 희망이란 밧줄을 고통 속에 나뒹구는 자신에게 내려줄 수 있는 힘을 찾기를. 밑까지 숨이 막혀서 목구멍이 달싹거리며 눈물이 흐르는 고통 속에서 아무리 아프더라도 어두운 우물 안에 버려진 자기 자신에게 사랑의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따스함을 지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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