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모든 것을 명료화하고 싶은 불안함.

by MissP

정의하다.

1.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하다.
2. 철학 개념이 속하는 가장 가까운 유(類)를 들어 그것이 체계 가운데 차지하는 위치를 밝히고 다시 종차(種差)를 들어 그 개념과 등위(等位)의 개념에서 구별하다. ‘사람은 이성적(理性的)인 동물이다.’와 같이, 판명하려는 개념을 주어로 하고 종차와 최근류(最近類)를 객으로 하는 판단으로써 성립한다.


요즘 심심찮게 듣는 말이 있다.


에겐 남녀, 테토 남녀.


여성스러운 남녀와 남성스러운 남녀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특성이 있겠지만, 테스트도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은 MBTI때처럼 또다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테스트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모든 것을 확률적으로 분배하고 나누려고 하는 경향이 짙다. 확실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을 배제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주로 그 사람을 판단하고, 혈액형으로 성격을 분류하고, 별자리로 성향을 파악하며, MBTI와 각종 심리 테스트로 자신과 타인을 분류하고, 모든 행동과 말과 생각에 대해 이해되지 않는 것을 자의로 판단하려고 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애인과 문제가 있을 때, 우리 아이가 수능을 잘 볼지, 남편이 바람이 났는지를 물어보러 점집을 찾아간다거나 타로를 본다거나 하는 것도 매한가지 같다. 물론 나 역시, 타로나 사주 같은 것을 매우 좋아하지만, 취미에 가깝다. 그 맞출 때의 쾌감이 좋은 것이다. 이건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사주를 보러 갔을 때, 사주 속 무언가 내 특징과 동일한 것을 발견했을 때, 또는 타로를 직접 보고 시간이 지나 그게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오는 쾌감. 큐브조각을 오랫동안 조물 거리다가 드디어 정답을 찾았을 때, 추리소설을 읽다가 범인을 맞췄을 때와 같은 느낌인 건가 싶다. 확실히 내게는 추리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왜 사람들이 그걸 좋아하는지 알 거 같긴 하다. 아마 제일 큰 건 불안한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인한 안정감이 아닐까? 그렇지만 우리는 안다. 그게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비단 그뿐인가? 그 사람의 성별, 외모, 나이, 직업, 가족, 삶의 방식, 생각이 자질구레한 것들로도 자꾸 정의 내리려고 한다. 보이는 면으로는 절대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직장에서 너무나 멀끔하게 차려입은 잘 생긴 그 사람이 사실은 집구석이 난장판일 수도 있고, 매우 거칠어 보이는 목소리 큰 욕쟁이 아저씨는 사실 공처가일 수 있으며, 얌전해 보이는 옆집 아주머니는 옆동에 사는 남자와 불륜을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절대 그 사람을 모른다.


인류는 지속해서 앞날을 알고 싶어 하고, 조종하려 했다. 조선 사도세자는 궁으로 무당, 파계승까지 불러들여 굿까지 벌였고, 장희빈 역시 인현왕후를 저주하고자 벽에 초상화를 걸어두고 화살을 쏘며 비방을 했다. 비단 그뿐인가. 학교 다닐 때 배우는 인류의 원시 종교는 샤머니즘, 애머니즘, 토테미즘을 기반으로 자연에 존재하는 무생물부터 생물까지 모든 것에 기원하고, 빌며 인류가 발전해 왔다. (이 정도까지 온 걸 보면 AI가 나온 것이 정말 신기하다 못해 경악스러울 정도다.) 서양의 집시(타로 역시 집시들의 점술 도구였다), 그리고 마녀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림형제의 동화 속 백설공주(계모의 마법거울), 라푼젤(마녀의 양상추를 훔쳐 임신), 여섯 마리 백조(저주로 인해 왕자들이 백조로 변함), 개구리왕자(왕자가 저주로 인해 개구리가 됨) 그리고 그 외 꽤 많은 동화들이 매번 저주에 걸린다. 요즘 자주 사람들이 사용하는 드림캐쳐, 선캐쳐 역시 주술적 의미가 있는 것을 보면 이렇게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도 사람들의 불안함과 미지에 대한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집단적인 주술의 특징은 감소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종교를 믿지 않고, 바람난 애인의 바람기를 잡으려고 무당을 찾거나, 부적을 쓰거나, 굿을 하지 않는다. (물론 예외는 언제나 존재한다.) 이제 사람들은 탐정을 찾거나, 이혼전문 변호사를 찾는다. 어릴 때 보면 디즈니는 항상 저주에 빠진 주인공이 나왔다면, 요즘 애니메이션에는 고장 난 AI(고장 난 론)나 로봇들을 이용한 히어로물(빅히어로), 자신의 감정(인사이드 아웃)이 주로 주제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것을 찾는다. 바로 개개인을 프레임 안에 가두려고 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살면서 느낀 발달(?) 과정은 다음과 같다.


이 사람은 O형이니까 활발할 거야, 저 사람은 A형이니까 소심할 거야(혈액형) > 이 사람은 사자 자리니까 리더십이 있을 거야, 저 사람은 처녀 자리니까 섬세할 거야(별자리) > 이 사람은 초식남이니까 자기에게만 관심이 있을 거야, 저 여자는 건어물녀니까 남자를 잘 모를 거야(초식, 육식, 건어물_ 일본 드라마에서 파생되었지만, 생각보다 큰 수준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 영향을 미침.) > 이 사람은 E이니까 외향적일 거야, 저 사람은 N이니까 쓸데없는 상상할 거야.(MBTI) > 이 사람은 테토 남이니까 얼굴에 크림도 안 바를 거야, 이 여자는 에겐 녀니까 잘 울 거야 (에겐, 테토)


말도 안 되는 이 소리들로 당신도, 당신의 친구들도 다들 누군가를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에 들어 더 정의하려는 성향이 강해진 이유는 굳이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점점 고도화되는 디지털 환경(단순한 검색으로 인한 정보 획득, 타인의 도움이 크게 불필요)과 핵가족이 발달한 가정(어른의 지혜를 배울 기회가 낮아짐), 크나큰 전 세계적 전염병(서로의 접촉을 기피)을 몇 차례 겪고 토크포비아가 찾아오면서 서로 대화를 하고 알아가기보다는 편리하게 판단하고자 하는 욕구, 단순 분류를 하고 싶은 욕구가 더 커진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 젊은 친구가 실수를 하거나 미숙한 행동을 했을 때, 알려주고 괜한 꼰대 소리를 듣기보다는 MZ라며 MZ세대는 이상하다며 이해하지 않으려고 하고, (가만 돌이켜보자, 당신도 젊을 때 분명 더 이상한 짓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생각하고 있는 당신도 MZ일수 있다.) 누군가 무례한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도 "너 T야?"라며 더 이상의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MZ는 태어난 년도에 따른 분류일 뿐이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세대가 아니며, T는 의사결정을 할 때 주로 판단하는 성향일 뿐이지, 사이코패스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파악되지 않은 상대에 대한 불안한 감정을 마치 자로 잰 듯이 잘라서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저 사람은 이럴 거야라고. 물론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런 영향을 받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천편일률적으로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하물며 MBTI안에서도 같은 MBTI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 안에 퍼센티지가 다를 텐데 말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실 자기 자신 외의 모든 이에게는 선무당이다. 심지어 가족조차도 말이다. 가령, 당신이 엄마아빠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녀를 100프로 전부 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를 모른다. 마찬가지고 부모도 그렇다. 평생을 자신을 길러준 당신 부모님을 전부 안다고 할 수 있을까? 배우자는 어떠한가? 당신은 배우자를 잘 아는가?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도 99프로는 알 지언정, 1프로는 모를 것이다. 연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마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간단한 몇 마디 단어로 그 사람들을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정의를 내려선 안된다. 아니, 정의가 필요치 않다. 만약에 누군가가 궁금하다면, 그저 가서 말을 걸고 이해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쏟아보길 바란다. 그것이 저 몇 가지 테스트보다 훨씬 더 얻어내는 것이 많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정의 내리지 말고 누군가에게 한마디 걸어보자. 화를 자주 내는 직장 동료라든지 어제 싸우고 묵언수행 중인 가족처럼 껄끄러운 상대와의 의외의 대화가 꽤나 좋은 기억으로 남는 일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