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삶의 마지막일까.

by MissP

나는 윤회를 믿는다.

그렇지만 윤회의 기준은 조금 남들과 다르다. 전통적인 형태로는 절대 인간은 극락이든 천국이든 갈 수 없을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며, 사는 동안 내내 죄를 짓기 때문이다. 혹시나 천국이라는 곳이 가시적으로나마 궁금하다면 넷플릭스 굿플레이스를 보아라. 내가 생각했던 천국과 꽤나 비슷하다. 그러므로 분명 그곳은 꽤나 유연한 선택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음 생은(그렇게 살고 싶지 않지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선택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염라대왕 혹은 저승이나 천국에 가서 신을 만나면 한마디 의견이라도 내보여야 할 것 아닌가? 그렇기에 최대한 바르게 살려고 한다.


나는 완전한 소멸을 원한다. 그야말로 무(無)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완벽한 무의 공간으로 돌아가 시공간의 경계 없이 자유롭게 떠돌고 싶다. 물론 무의 상태이기 때문에 스스로 자각조차 못하겠지만 말이다. 시작과 끝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서의 자유, 그것을 바란다.


그렇지만 만약에라도 선택지에 이런 경우는 없다며 꼭 환생을 해야 한다면, 나는 돌이나 고래나 아니면 거북이가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요즘 바다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고민 중이다. 이렇게 염라(염라가 아니실 수 있으나, 우선 염라로 하자.)께 한마디라도 의견을 붙이려면, 나는 꼭 바르게 살아야 한다.


나는 때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몽상을 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부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필수 불가결한 운명이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


당신은 마지막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


남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싶은가? 실제로 사람이 죽어간다면, 그렇게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웃는 얼굴과 힘 빠진 목소리로 남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회한의 언어로 대화를 하기는 극히 어려울 수 있다. 우리는 대부분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다. 당신이나 당신의 가족들이 병자의 연명치료를 선택하냐 아니냐에 따라서 끝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렇게 아름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미 연명치료 거부 등록을 했다. 이 얘기를 남들에게 하지 않은 이유는 반응이 짐작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젊은 사람이 무슨 그런 생각을 하냐고 온갖 것을 다 물어보며 질문 폭탄이 떨어질 것이다. 난 그저 내 마지막을 생각하며 선택한 것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한다.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데도 말이다.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이야기 자체를 뒤로 미루고 죽음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한다. 그런 삶의 방식이 자신의 고결한 죽음을 방해한다.


나는 원하는 형태의 죽음이 있다.

나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것이며, 최대한 '사람으로서' 마지막을 맞이할 것이다. 만일 내가 정신이 없어 내가 현재 무슨 상황인지 아무것도 모르거나, 더 이상 인간으로의 존엄을 갖추지 못하는 상황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내 유언장에는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깊은 진심과 사랑, 배려가 담길 것이다. 얼마나 사랑했는지, 뭘 함께하고 싶었는지, 미안한 마음과 남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적어두고 싶다. 재산이 있다면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정확하게 기록해두고 싶다. 그리고 나의 장기 중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장기기증을 해도 좋다. 문제가 없다면 보통은 각막이 이용되지 않을까 싶다. 만약에 가족들이 그것으로 상처를 받을 것 같다면 조금 신중하라고는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육신은 소각이 되어 바다나 수목장 등으로 뿌려달라고 하겠다. 그럼 나는 바닷길에, 바람에 온 세상을 돌면서 행복할 것이라고 말이다. 장례식은 이왕이면 작은 곳에서 하고, 돈을 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장례식장 분위기는 나름 즐거웠으면 한다. 조문객을 웃으면서 맞이하고, 내가 원하는 곳(노화와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으로 간 것을 축하하며 행복해하기를 바란다. 조문객에게 음식은 전통적인 것도 좋지만, 간단히 와인 한잔쯤으로 서로 그리움을 달래는 것도 좋겠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것보다는 좀 더 품위 있게 말이다. 그리고 내가 죽은 후, 혹여라도 제사는 지내지 말아 달라고 하겠다. 그저 1년 내지 문득 생각이 날 때, 조계사에 백중절에 기도를 올리라고 하겠다. 안 해도 좋다. 절이 싫다면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루 올려도 좋다. 이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나보다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위한 것이다. 장례식이나 제사에 쓸 비용은 살아있는 자들의 앞날을 위해 쓰라고 하고 싶다.


쓸데없는 상상인데, 꽤나 구체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만일 진짜로 내일 내가 죽게 된다면, 가족들은 비통한 심정에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선택을 하나하나 직접 하며 어찌할 바를 모를 것이다. 이미 병원에서부터 장례식까지 온갖 선택에 시달릴 것이다. 산소호흡기를 할 것인지, CPR을 할 것인지, 중환자실로 보낼 것인지, 조화는 무엇을 할 것인지, 영정사진은 어떤 것을 할 것인지, 조문객에게 음식은, 장례식장 크기는 어떻게 할 것인지처럼 말이다. 아픈 내 모습, 삶이 다한 내 모습을 보며 남은 사람들이 고통을 느낄 시간적 여유도 없이, 이것저것 선택을 해야 하고 죽음이라는, 이별이라는 고통을 더욱더 이질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때는 분명 평상시에 이런 시답잖아 보이던 농담이 남은 가족들에게는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될 것이다. 내 유언을 들어줌으로 인해 남은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최대한의 방법이 되는 것이다.


죽음은 부정적인 것도 위험한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갑자기 닥쳐올 수 있고, 누구에게나 때가 되면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결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저승사자나 서양의 그림리퍼처럼 무서운 모습으로 찾아올지, 대천사의 모습이나 코코나 소울 속 신비하고 따뜻한 형태로 찾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분명 여러 형태로 살아 숨 쉴 것이다. 남은 가족들에게, 혹은 남겨진 편지로, 기억 속에 이런 것들로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지.


당신에게 미래란 분명 밝고 즐겁고 행복한 것들이 가득할 것이고, 나 역시 그렇게 믿는다. 지금 당장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당신과 나의 미래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 꼭 삶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가깝지만 우리가 멀게 느끼는 죽음이라는 친구를 염두에 두기를 바란다.


웰빙(Well-being)만큼 중요한 웰다잉(Well-dying)을 위하여.





P.S.

그리고 혹시나 위험한 선택을 시도하고 있는 당신이 있다면,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자살 예방전화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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