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서로 다름의 충돌.

by MissP

아주 금기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정치와 종교.


이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적 느낌으로, 정치적, 종교적 어떠한 견해도 포함되어 있거나, 비난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먼저 알립니다.

저는 모든 것은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므로, 모든 행보를 따져보았을 때, 반드시 나쁘다, 좋다로 나눌 수 없었습니다.(명도 있고, 암도 있으며, 더 나쁘다, 덜 나쁘다의 차이 같습니다.) 다만, 당신의 입장을 지지합니다.


나는 굳건히 믿는 종교는 따로 없지만, 굉장히 가까운 종교는 있다. 그리고 정치적 성향 역시 갈대처럼 움직이지만 거의 고정되어 있기도 하다.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현재 내게' 누가 더 합리적인가.


정치와 종교적 견해에 관해서는 타인의 반박에도 잘 수긍하는 편이지만, 서로 단단하지 않은 관계에서는 내 의견은 되도록 숨긴다. 이유는 하나다. 그 사람은 '자신이 공격당한다'라고 느낀다. 참 아이러니하면서도 이해가 된다. 사상이기 때문이다. (설사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개인 의견임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릴 적, 엄마와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하여 얘기를 하다가 격렬하게 다툰 적이 있다. 나는 학문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했고, 엄마는 사실주의적 관점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넘어 중반쯤 되었을 때,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그때 같이 어울리던 동생 하나가 나의 정치적 입지를 물었고, 나는 그 당시 내가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언급하자 그 친구 역시 격렬하게 몰아붙였다. 나는 물었다. 정치적 견해는 내 자유 의지고, 나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그 사람을 지지한다. 너의 지지 이유는 무엇이길래 이토록 흥분을 한 건지 말이다. 그 동생은 말을 못 했다. 그 뒤로 몇 번의 이런 일이 더 있었다. 하필이면 모두 비슷한 특성을 가졌기에 그 뒤로 특정한 선입견이 생겼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 열려있다. 선입견은 양쪽에 다 있기 때문이다.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하자. 자유의지, 개인의 행복권 추구!)


나는 선거 특보를 몇 번 정도 해봤다. 각각 다른 진영이었다. 실제로 크게 한 일은 없다. 특보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있고, 등록도 어렵지 않다 보니 말이다. 한쪽 진영은 내게 실지로 도움이 되는 정책과 약속 이행을 위해 노력했다. 무지는 아니지만 썩 잘 지켰다. 다른 한쪽은 다선임에도 (몇 선인지 자세히 말하면 혹시 모르니까, 응원합니다.) 선거철에만 반짝하고 공약은 실행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무려 2번이나 선거를 진행하는 동안 말이다. 지연과 혈연의 힘이었다. 선거철에는 네거티브 공략을 문자로 보내는 등 계속해서 펼치는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그럼에도 나는 역시 실질적으로 내게, 국민들에게 이득이 되다면 언제든지 바꿀 의향은 있다. 다만 말은 하기 싫다. 왜냐하면 철새 취급을 하면서 공격당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당신은 나라를 부국강병 하고 좀 더 나은 우리나라를 원하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 정치의 부정적 특징 중 하나는 사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부디 사상에 매몰되지 말길 바란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는 존중합니다.)


나와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과의 건강한 토론을 즐긴다. 그런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치는 신념과 사상을 건드리는 부분이 많으므로 그런 것 같다. 국내 정치 외 미국 정치만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어릴 적 교회도 다니고, 절도 다녔다. 물론 클수록 엄마의 압력이 거세지긴 했지만, 나는 처음 종교 역시 학술적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들은 나의 믿음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 믿음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내가 이미 호기심을 가진 시점에 신은 곁에 와 있는 것 아닌가?


어릴 적에 엄마와 할머니를 따라 절에 자주 갔다. 그러면 스님이 나를 매우 예뻐하시면서 어린이용 염주를 선물로 주셨다. 나는 너무 예뻐서 여러 개 달라고 했지만, 스님은 1개면 충분하다고 하셨다. 그래서 절 앞에 노상에서 엄마를 졸라 2개를 더 사곤 했다. 염주를 매번 잃어버릴 만큼 관심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염주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앞 문구점에서 배가 남산만 한 아주머니가 전도를 하고 계셨다. 우리 집까지 따라와서 하느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불교였지만, 내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다녀보라고 했다. 교회에 가면 맛있는 걸 줘서 좋았다. 매번 맛있는 걸 챙겨주시는 맛에 다녔다.


나는 두 종교 모두 믿음보다 물욕이 앞서 나갔다. 그러면서도 꾸준히 나가다 보니 믿음이라기에는 뭐 하지만 교리에 관심이 생겼다. 나중에는 그 호기심에 다녔다. 그때는 이미 나는 어쩌면 신의 품 안에 있었던 것 아닐까?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는데, 어째서 싸우는 걸까? 인간이 감히 신을 구분할 수 있고, 정의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 어떤 종교이던지 당신의 종교를 존중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우리는 그 믿음이라는 것을 이용하여 스스로를 믿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설사 믿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을 믿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물론 신이 그렇게 매정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너그러우실 수도 있지 않은가?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수긍할 수 있는 마음가짐. 한 번쯤은 생각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