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드라마는 몇 부작인가요?
나의 꽃봉오리는 터지듯이 피어나
붉은빛에 타오르고는 금세 져버렸다.
다시 피어날 생각은 아픔을 기억하였는지
시간이 걸리는 듯 두려움만이 가득했다.
꽃이 피었을 때 수많은 벌과 나비는 꽃을 아프게 쏘아댔고 때문에 가루만 가득 남은 채 열매는 맺지도 못하고 져버렸다.
그래서 다시는 아름답게 피지 않고자 했다.
그러나 곧 다시 필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직 어린 새싹처럼.
아주 아픈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내고자 아프고 괴롭지만 결국 내 인생이란 드라마의 일부가 되었다.
삶을 살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간혹 있다. 그 순간은 마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처럼 뇌리에 남는다. 다음 시간에(to be continued)인지 아닌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다 봐도 기억 속에 남는 장면은 한두 장면이듯이.
그 장면은 충격적인 장면이었을 수도 있고, 아름다웠던 장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장면은 내 인생이라는 장편 드라마에 명장면을 하나둘씩 남겨준 '추억'이라는 것으로 변한다.
가령 나에게는 이런 기억들이 있다.
어릴 적, 초등학교 4학년이었나 모르겠다. 크리스마스 즈음에 나는 산타를 믿었는데, 친구가 나보고 아직 순진하다며 산타클로스를 믿냐고 없다고 했다. 나는 충격을 받았고, 집으로 가서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산타는 있다고 했고, 너무나 궁금했던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자는 척하면서 산타를 기다렸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지나고 밤 12시가 넘어서자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엄마가 몰래 들어와 들어가지도 않는 양말에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넣어두셨다. 내가 원하는 선물보다 작고, 마음에 들지 않았고, 산타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가슴에 남았던 건 어린 그 당시에도 없는 산타를 믿는 딸의 동심을 지켜주겠다고 거짓말을 한 엄마의 말이었다. 나는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산타가 원하는 것을 주고 가셨다며 까르르 웃으면서 기뻐했다. 순전히 엄마를 위해서.
그리고 또 이런 기억도 있다. 더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엄마랑 시장에 갔다. 내가 어릴 때는 마트가 없었기 때문에 시장을 자주 갔다. 그때 엄마는 시래기를 구입하려고 하셨다. 좌판이다 보니 바닥에 재료를 놓고 장사를 하셨는데, 떨어진 시래기를 주어 엄마가 시장 아주머니한테 건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 집은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 먹을 정도로 가난한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렇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그 때문일까. 부모님 친구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중에 유난히도 나를 예뻐라 하던 삼촌이 계셨다. 나는 그분이 나를 엄청나게 예뻐하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분을 좋아했다. 왜냐면 삼촌은 불면 날아갈까, 안으면 부서질까 싶어서 나를 진짜로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번은 그분이 내가 탱탱볼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내 손을 잡고 문방구로 갔다. 나는 색색의 탱탱볼 중 한 개를 차마 고르기 어려웠다. 하나같이 너무 예쁜 색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영악하게도 그 삼촌에게서 모든 탱탱볼을 얻어냈다. 엄마는 삼촌에게 탱탱볼을 다 사주었다고 혼을 냈지만, 결국 내가 승리했다. 6개 중에 2개나 지켜냈기 때문이다. (원래 1개만 사는 것이었는데 2개나 얻어내다니 대단하지 않은가!)
또 이런 기억도 있다. 아빠랑 같이 아빠 친구가 하는 주유소에 가서 앉아있는데, 가만 보니 길에 다니는 자동차 바퀴 색이 모두 검은색이라 계속 지켜보던 내가 아빠한테 '아빠, 바퀴색깔이 알록달록하면 세상이 예쁠 텐데, 아빠가 만들면 안 돼?'라고 하자 아빠가 역시 우리 딸은 천재라면서 칭찬을 해주셨다. 사실 별말이 아닌데 기억에 남은 것을 보면, 그때의 분위기, 아빠의 환한 얼굴과 나를 사랑하는 눈빛, 그 말을 듣고 나는 꽤 뿌듯했던 모양인 거 같다.
부모님과의 유년시절 기억은 잔잔한데, 무언가 묵직한 울림이 남는 일본 영화 같은 면이 있다. 마치 아무도 모른다처럼.
이런 기억도 있다. 중학교 시절 좋아하던 남자애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느꼈다. 주변이 뿌옇게 변하고, 그 아이의 웃는 얼굴만 보였다. 첫사랑이었다. 사귄다 이런 건 생각도 없었고, 학생이니까 혼자 좋아하는 것에 만족했고, 내 마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아이와의 기억 중 뇌리에 남은 기억은 몇 가지가 있는데, 가끔 눈이 마주치던 순간 짓궂게 웃는 얼굴이나 그런 것 말고도 말이다.
나는 당시 말도 못 하게 얌전하고 말이 없었다. 조용하고 눈에 띄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혼자 무언가를 하는 게 좋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낯선 외부 환경과 사춘기의 격렬한 내부 충동으로 인해 어찌할 바를 모른 것이 제일 컸다. 그래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무언가를 보고 해소를 하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빛의 불꽃을 감당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리고 그 불꽃은 나를 잠식할 것 같았다.
두 가지 기억 정도를 쓴다면,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대만 청춘영화 속 장면처럼 아련하고 청순한 느낌이다. 티 없이 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뜨거운 햇살, 초록색 풍경. 아직도 그때 장면은 마치 파란색과 초록색, 흰색으로 온 세상이 물든 것 같은 풋풋한 청춘의 느낌이 든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물을 한 바가지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도망갔고 그 아이는 따라왔다. 도망가다가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는 마치 겁먹은 새처럼 머리를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 아이는 내 목덜미 쪽 교복을 살짝 들어 크게 젖지 않도록 조심스레 뿌리고 돌아갔다. 사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일상이지만, 그때의 공기와 찰나의 적막, 그리고 그 아이의 배려가 범벅이 되어 그날 내 세상을 그 아이의 색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헤어짐에 대한 순간이다. 그 아이는 유학을 갔다. 유학을 가던 날,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고, 그 아이는 한 명 한 명 자리를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내 자리로 와서 인사를 하다가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한 말이다.
'내가 널 못 잊지.'
여기서 엔딩.
진짜 못 잊든 잊든 좋아했든 아니든 그건 중요한 건 아니고, 이 말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 것이다. 그래서 그 아이의 기억은 대만 청춘영화 같은 기억으로 내게 남아있다. 물론 기억이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재해석되고 미화되어 편집된 영상이었겠지만, 그럼에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내게는 꽤나 중요한 추억이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그 아이가 부디 행복하기를.
무서운 경험도 몇 가지 있다. 개중에 두어 개 정도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서 알게 된 여자애가 있었다. 그 애야말로 갓 스무 살이 된 아이였는데,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알게 된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고 그 여자애가 인사불성이 되었다. 나는 그 애를 길거리에 버리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가는 중에 자꾸 집을 모른다고 했다. 집 전화번호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을 헤매다 지친 나는 이제 더 이상 모르겠다 하고 체념할 찰나에 그 여자애가 내 머리를 잡고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는 소리를 질렀고 다행히 주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어 경찰에 신고를 해주었다. 난생처음으로 가본 경찰서에서 경찰아저씨들이 나를 달래주며, 안심시켜 주셨다. 그 여자애는 경찰서 바닥에 누워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알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경찰서에서 나는 여자애가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알고 보니 그 여자애는 동거 중이었고, 그 사실을 내게 알리기 싫었던 모양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남자친구와 같이 사는 중이라 혼자 가겠다고 말해주었더라면, 별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굳이 말하기 싫었으면, 자기는 괜찮다고 택시 타고 혼자 갔어도 될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고 하는데 헬스장 카운터에서 어떤 남자가 따라왔다. 나는 여러 번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끈덕지게 집까지 따라왔다. 요즘 같으면 스토커로 신고하겠지만, 그때는 관련 법률도 없었을뿐더러 대낮이었고 사람들이 많았으니 두려움도 잠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동네를 지나는데 누군가 나를 확 잡아챘다. 나는 매우 놀랐고, 모르는 사람이라서 더 겁이 났다. 그는 자기가 기억나지 않느냐며 그때 헬스장에서 만났다고 했다. 그때서야 기억이 났다. 그 미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거 놓으라며 크게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이 쳐다보자 당황한 그 사람을 보고, 재빨리 손을 뿌리치고 멀리 돌아 도망갔다. 더 따라오면 바로 앞에 경찰서가 있으니 도움을 청할 요량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 일뒤로 한 동안은 동네를 다닐 때도 항상 곤두서있어야 했다.
엄마랑 같이 택시를 탔다. 늦은 시간이었고, 거리에는 차가 많이 지나다니지 않는 한산한 새벽이었다. 카카오택시가 없을 때라 겨우 잡은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처음에는 안 그러더니 어두운 길을 지나가면서 갑자기 아기목소리를 내면서 우리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하도 혀 짧은 소리를 내어 무슨 말인지 몰랐고,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겁에 질린 엄마와 나는 작은 목소리로 빨리 내려야겠다고 얘기했다. 당시 티브이에서 택시를 가장한 범죄 관련해서 뉴스를 몇 번 본 터라 너무도 두려웠다. 그러고는 핸드폰으로 112를 누른 채 여차하면 신고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우리가 날 서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기사는 다시 목소리를 원래대로 바꿨다. 다행히 중간에 멈춰달라는 말에 기사님은 우리를 안전하게 보내주셨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이런 경험은 마치 목격자나 이웃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두려운 경험이다. 평범한 모습을 한 이웃들의 어두운 얼굴을 마주한 경험말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든든한 경찰이 있어 나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언제든지 안전하게 112.)
또 어떤 기억은 가족영화, 로맨스영화, 범죄영화, 공포영화, 코미디 영화의 단편적인 장면이 되어 남아있다. 그렇게 내 인생은 마치 장르가 없는 시리즈물처럼 연결되어 상영 중이다. 그것이 아름다운 기억이건 피하고 싶은 기억이건 상관없다. 상영을 보다 영화롭게 하는 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인생이 아주 힘들 때, 혹은 정말 즐거울 때 문득 갑자기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영화들이 상영될지도 모른다. 만약 당신이 너무 힘들 때 좋은 영화가 상영 중이라면 잠시 피식 웃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만약 당신이 한강 다리라도 찾았다면, 그 순간 눈앞에 어른거리는 장면이 당신을 살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그런 기억들을 많이 가지라고 하고 싶다. 단, 아무래도 범죄나 공포영화는 좀 피하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바라겠다. 오늘 행운처럼 당신의 삶에 드라마 같은, 영화 같은 일이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