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살아있는 날 것의 본능.
1. 사람에게 길이 들지 않은 야생의 사나운 짐승.
2. 몹시 거칠고 사나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내 안에는 야수가 있다.
야수는 괴물이 아니다. 굳이 단어로 표현한다면 육감(Sixth sense)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스스로 항상 몸을 숨기고 있지만, 동굴 안에서도 눈빛은 날카롭게 나를 주시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동굴에서 나와 내 곁에서 함께하는 본능이다. 야수는 나를 지키는 힘이며, 나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이고, 나를 지키는 수호자이면서 나를 사랑하는 연인이자 내가 미워하는 원수다.
내가 받는 영감이나 남들과 다른 느낌, 날카로운 시선은 이 친구로부터 온다. 그렇기에 내가 야수를 싫어한다면 나는 보호를 받을 수도 없고, 알아차릴 수도 없으며, 아무런 느낌조차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야수는 겁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억압을 받거나, 스스로 괴로운 상황 속에 몰아두거나, 매우 위협적인 상황에 몰린다면 숨어버린다. 그럼 그의 친구이자 주인인 나는 더 큰 위협에 처하게 된다.
그렇기에 항상 그가 안심할 수 있도록,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그가 매서운 눈빛과 이빨을 드러내어 공격할 수 있도록 잘 다루어주어야 한다.
야수는 항상 나와 줄다리기를 하면서 내가 자신을 끌어당기기를 바란다. 매서운 자신을 부드럽게 잘 다뤄주기를 말이다.
때로 지나친 억압의 상황, 예를 들면 범죄피해라던지(납치나 폭행 같은 물리적 상황) 혹은 엄청난 압박 같은 (극한의 스트레스 환경, 예를 들면 입시압박, 가족의 오랜 간병, 가스라이팅, 투병 생활, 이혼 같은 심리적 혹은 육체적 억압 등) 상태가 오랜 시간 지속되면 여러분의 야수는 자신을 먼저 보호하기 위해 숨어버릴 것이다. 만일 당신을 지키겠다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나섰다가 자신이 먼저 죽음을 당하면 여러분을 지켜줄 수 없기 때문이다. (상기 예시는 극단적인 것으로 실질적 스트레스나 억압 상황은 개인에 따라 다르니 자신의 육감을 믿으면 된다.)
그리고 당신이 그 고통에서 어느 정도 해방이 될 때쯤 얄밉게도 동태를 보고 슬그머니 다시 당신의 곁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자신을 어루만져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어릴 적 내 핑퐁은 크기가 호랑이 같이 거대한 표범 모습을 한 친구였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핑퐁이 아마도 야수를 시각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렴풋이 무언가를 느끼고 있지만, 그걸 표현할 방법이 없던 어린아이는 그걸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비슷한 이미지로 시각화해서 놀았던 것 같다.
내가 편안함을 느낄 때면, 나는 엄청 큰 버들나무 밑에서 쉬고 있고, 나의 핑퐁(야수, 그러니 그 큰 들짐승)은 나뭇가지 위에서 꼬리를 길게 축 늘어뜨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자고 있다. 내가 살짝 움직이려고 하면 그는 곧 잠에서 깨어 나를 바라본다. 때로는 내 곁으로 와서 그 큰 몸으로 나를 감싸고 안는다. 까칠까칠한 털이 어느새 부드러워지고 포근함을 느낄 때면 안정감을 찾는다. 두려움을 잠재워 주는 것이다.
즉, 빗대어 말하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내 본능(Instinct)은 나의 리처드 파커다. (리처드 파커는 파이 이야기 속 벵골호랑이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떠돈다. 리처드 파커와 다른 점은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다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지만, 나는 그렇진 않다는 거다. 나의 리처드 파커는 항상 보트 밑에 숨어 나오지 않고 내가 위험한 상황에서만 밖으로 나온다. (물론 파이처럼 위험한 상황이라면 리처드 파커가 미쳐 날뛸지도 모르겠다.)
나의 핑퐁(Sixth sense), 리처드 파커(Instinct)는 항상 내게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다. 물론 베스트 프렌드이지만, 유일한 친구는 아니다. 나는 그를 먹이고 찌우고 몸집을 더 키워줄 것이다. 내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말이다.
나의 핑퐁은 표범에 가깝다. 맹수지만 제일 사납진 않고 생각보다 날렵하다. 사람에 따라 누구는 호랑이, 고릴라, 오랑우탄, 늑대, 여우, 너구리, 뱀 심지어 고양이일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리처드 파커는 살아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