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쓰임과 한계.
돈은 중요하고, 나는 돈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한계는 내가 욕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어릴 적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무려 초등학교 4학년부터 20대 중반 정도까지 말이다.
내 개인 자산으로 15억.
그리고 가족의 자산으로 각각 건물 한 채였다. 그 어린 나이에 나는 어째서 심리적 가장의 역할을 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내 꿈은 편안한 미래였다. 저 것들도 꽤나 구체적이었다. 지금도 꽤나 큰돈이지만, 그 당시에는 무지 큰돈이었다. 가족들에게 건물 한 채씩 있다면, 거기에서 부수적으로 수입이 발생할 것이다. 월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럼 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내 명의의 자가와 현금으로 15억을 예상했다. 그 당시 강남의 꼬마빌딩이 10억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꽤나 넉넉한 돈이었다. 저 금액이면 평생 걱정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꽤나 구체적으로 상상을 했다. 그리고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안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저런 상상이 내 행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이다.
나는 어마어마한 짠순이었다. 점심값이 아까워서 도시락을 싸서 다녔고, 교통비가 아까워서 때로는 걸어 다녔다. 유흥지출이 아까워서 친구들이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어렸고, 사회 초년생이었으므로 많은 언니 오빠들에게서 예쁨을 받으며 얻어먹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그런 것을 이해해 준 것이다. 그들은 직설적이고 버릇없어 보이지만, 맑고 거짓 없는 나를 참 예뻐했다.
스스로에게 쓰는 작은 비용조차 아까워서 명품 가방이나 브랜드 옷을 산다거나 비싼 화장품을 사는 것조차 아쉬웠다. 백화점 명품 화장품을 안 써본 건 아니었으나,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그야 그 나이대는 어리고 예쁘니까 안 꾸며도 귀엽지 않은가? (믿기진 않겠지만 나는 꽤나 사랑스러웠다.) 다만, 이십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남들에게 보이는 것에 점점 욕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에게 덜 자극적이었던 베네피트나 입생로랑, 나스 등을 자주 쓰기도 했으나, (그것들도 거의 선물 받은 것, 돈 주고 사는 것은 적었다.) 그럼에도 로드샵 제품을 계속해서 사용했다. 사실 큰 차이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은 아마도 돈의 가치를 하지 못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돈이란 것은 내게 생존과 연결되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예체능 계열로 전공을 준비하고 있었었고,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사정에 포기했다. 사실 아마도, 내가 고집을 부렸다면, 나는 지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눈치채고 말았다. 그 어린 나와 통화하며 이모가 하는 말을 말이다. 집에 전기가 끊겼다는 말. 차마 내게 가족들이 하지 못했던 그 말. 그 말은 마치 비수가 된 것처럼 내게 묵직한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내 탓이 아님에도 말이다. 어쩌면 그리 간절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 때문인지 나는 되려 나보다 내 가족들에게 돈 쓰는 것을 아끼지 않았다. 내 사죄에 따른 보상, 장녀라는 책임감, 무의식의 근간에서 나를 흔드는 이유 없는 죄의식이 있었던 모양이다. 내 동생이 갖고 싶은 것은 보통 내가 사주었고, 엄마가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돈을 못 모았던 것, 차근차근 모은 돈이 소진되었던 것, 돈이 필요했던 것은 가족이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았다. 당연했기 때문이다. 내가 저렇게 많은 돈이 필요했던 이유, 내가 그렇게 자린고비처럼 굴었던 이유는 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15억을 모을 만큼 많이 버는 것은 아니었으니 착각이 없기를 바란다. 그건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내게 쓰는 주소비는 보통 책이었다. 그리고 내가 먹는 음식들이었다. 주로 토마토, 두부, 과일 이런 것들이었다.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먹이는 것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 뒤로 다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될 기회가 몇 번 더 주어졌다. 하지만, 내게는 이미 삶의 무게를 내려놓기에는 꽤나 힘든 상태였다. 이미 나는 큰 기둥 중에 하나가 되어 있었고, 나를 위한다고 나서면 나를 힐난할 분위기였으니까. ( 그렇지만 어찌 그들을 탓하겠는가. 결국 그런 상황을 만든 건 나 스스로였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 당시 주변에서는 항상 내게 하는 말이 있었다.
"제발 너부터 생각해라. 이기적으로 살아라."
"너의 미래를 포기하지 마라, 너는 잘 될 건데 벌써 포기해선 안된다."
"미안해하지 마라. 오히려 네가 잘되야 하는 거다."
주변에서는 마치 나를 타로이야기 속 주인공 타로처럼 바라보았다. 타로는 해맑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부모, 줄줄이 딸린 동생들을 건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알바를 하고 노력을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만화 속 어이없는 설정이 마치 나 같다고 말이다. (물론 상기 타로이야기 설정은 만화 속 설정이고, 단지 비유라는 것을 꼭 유념하시길 바란다.)
어찌 되었든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스스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 말의 뜻을 지금은 알고 있다. 그분들이 나를 얼마나 귀하게 봤는지도 알겠다.
나는 지금 그렇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한 만큼 풍족하지도 않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불만족스럽지도 않다. 그냥 그렇다. 먹고 살만은 하다. (그렇다고 부자는 절대 아니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서민이다.)
돈의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 내게 그 당시 돈의 가치는 가족의 행복이었고, 나의 책임이었다. 가족의 행복이라는 것은 주로 엄마가 바라는 모습이었다. 그걸 위해 나는 나를 기꺼이 희생했고, 내 미래를 버렸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선, 내게 시간과 돈과 자유가 필요했지만 그걸 하기 위해선 내가 나를 우선시해야 했고, 나는 그 당시 판단에 따라 내 미래의 가치가 현재보다 적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의 선택은 틀렸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덕분에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 경험들에서 그 가치만큼의 값어치는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후회를 하냐고 묻는다면,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미래의 가치는 현실과 동등하기 때문이다. 나의 미래를 그렇게 매몰차게 내동댕이 친 스스로에 대한 분노의 값이 꽤나 비싸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미래를 바라본다.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고 주식 투자를 하고, 부동산 투자를 하고, 미래의 가치를 바라보고 직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 미래가 반드시 오냐고 한다면 나는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미래라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위해서 현재를 소비한다. 그렇다면 현재보다 미래가 더 값어치가 있는가?
당신이 투자한 주식과 부동산, 그리고 직업적 선택이 물론 핑크빛 우상향을 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인플레이션과 많은 경제적 상황, 혹은 중간에 생긴 개인적인 상황들로 인해 하락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럼 당신의 예측보다 더 낮은 수익을 얻거나 되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투자 방법, 자산의 증식 방법 역시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코로나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의 갈 곳을 잃은 자산은 유동성이 짙은 주식과 코인으로 몰렸었다. 나는 그 당시에 사람들의 불안감과 두려움이 극도에 처해 있었고, 불길한 앞날에 누구나 뇌가 흥분된 상태였기 때문에 두 분야가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직장을 잃은 사람들도 많았고, 여러 나라의 정부에서 돈을 푼다고 했지만 그 역시 경제를 살리긴 어려웠다. 소비 심리 자체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먼저 자산가들의 투자가 시작되고, 흔히 랠리라고 불리는 자산의 증가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의 불안심리가 크게 작동했을 것이다.
"나는 제자리인데, 저들은 돈을 벌고, 그럼 나는 뒤처지는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부를 자랑할 수 있는 사진들을 인터넷에 올리고, 아주 유명한 기업의 CEO는 하루가 멀다 하고 코인에 대한 뉴스를 개인 SNS에 업로드하니 영향을 안 받으래야 안 받을 수 있을까? 심지어 옆자리 직원까지 주식이네 코인이네 하면서 돈을 얼마 벌었네 한다면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기간 동안 투자를 하지 않았다. 나의 성향과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흐름을 읽어보기 위해 소액을 코인에 넣어두고 기다려보았다. 내 기준에서 주식은 회사 자체의 가치에 따라 변동되므로, 가치가 존재하는 무언의 약속과 같은 형태이지만, 코인은 블록체인을 가지고 거래하는 것으로 사실 그 자체만으로는 큰 가치가 없다는 것이 내 개인 생각이었다.
향후 오랜 기간 동안 지켜본 결과, 나는 나 스스로의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 모두가 알다시피 다시 한번 가상화폐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고, 트럼프 정권의 4년을 나름대로 유추해서 작은 돈으로 다시 한번 흐름을 보고자 금액을 조금 늘려보았다. 물론 그 당시 내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았던 터라 나 역시 맞지 않는 판단임을 알면서도 시도를 해보았던 것도 있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길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다. 그러고 나서 얻은 결론은, 손익을 제하더라도 나는 다소 도박성이 짙은 (제 기준이므로 코인 투자자분들의 성투를 빕니다.) 투자방식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안전자산과 근로소득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불로소득의 자산 증가 방식은 극히 일부여야 내 성향에 맞다. 나는 불안감이 높고, 신중하며 조심스러운 사람이라 변동성이 짙고, 유행을 타며 가십에 따라 활개를 치는 투자는 맞지 않는다. 작은 부자는 노력여하에 따라 가능할지언정, 큰 부자가 되기에는 그릇이 작다.
나는 좀 더 멀더라도 미래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껏 짧은 삶을 살아보니 현재(present)를 왜 선물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좋은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만 기대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항상 후회를 남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당신에게 주어진 선물(gift)인 현재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
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돈에 대한 한계점이 없다. 만일 당신에게 지금 그 당시 내가 꿈꾸던 15억이 있다면 충분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당신은 15억이 있으면, 15억보다 많은 사람들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이건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것을 똑바로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야 한다.
가난과 풍족은 서로 등뒤를 맞대고 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줄 모르고, 타인이 가진 것을 탐내며 살아간다. 만일 내가 부족하게 가졌다면 그 기준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당신이 진짜로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더 벌면 될 것이고, 그것이 아니라 주변과의 비교에서 느끼는 것이라면 그건 당신의 것이 아니다. 반대로 당신은 풍족하다고 느끼지만, 주변에서 부족하다고 한다. 그들이 더 많이 가졌다고 해보자. 그럼 그들의 기준이 당신의 기준이 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 당신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이 되고,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나에게 돈이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인 것은 똑같지만, 조금은 다르다. 그전에는 돈 자체가 주는 안정감과 가치를 더 중시했다면, 이제는 돈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다. 오히려 돈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가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먼저이다. 만약에 내게 100만 원이 있다면, 나는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쓰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유재석 오빠의 말이 있지 않나. 욜로 좋아하다가 골로 갈 수 있다. 그만큼 '나'의 행복이 더 우선순위로 올라왔다는 말이다.
내가 느끼는 물질적 가치와 한계는 스스로가 정하는 것이다. 높은 꿈과 이상향을 정하는 것은 좋다. 나 역시 지금도 꽤나 높은 꿈과 이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현되지 않더라도 꿈이니 크게 가지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 나는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좌절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순간, 당신은 돈에 이용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항상 기억해야 한다.
내 돈에 대한 한계점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반드시 내가 주체가 되어 돈을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