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과 신의 굴레.
당신은 운명을 믿는가?
나는 운명을 믿는다.
물론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명을 믿는 것이지 운명론을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에 따른 결과는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올바르지 않은 상황과 선택은 그릇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신은 나뭇가지에도 앉는다는 말 말이다.
결국 신이란 믿는 자가 있어야 존재하는 것으로, 믿는 자가 없다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신은 항상 친절했다. 물론 모든 것에 친절하진 않았다. 신은 항상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고통을 준다지만, 그렇다기에는 나를 시험하는 일이 너무 잦고, 고통스러웠다. 무엇이 나의 무게이기에 이리도 고통스러워야 하는 것인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꽤나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다. 조금 이상하지만 웃기는 예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 고객이 달려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해서 잡아주려다가 엘리베이터 문에 손가락이 끼었다. 고객은 문에 끼인 내 손가락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문 사이에 끼인 손가락을 보며 나는, 고통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이 먼저 앞섰다. 다행히(?) 곧 엘리베이터가 당도하여 문이 열리면서 문에 낀 손가락은 해결이 되었다.
이쯤에서 당신은 이상한 생각이 들것이다. 어떻게 육체의 고통에 그리도 침착할 수 있었을까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매우 아팠다. 손가락이 얼얼해서 잘 움직이지 않으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나는 고통의 강도를 잘 참는다. 그것도 꽤나 많이. 어쩌면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너무나도 참아내서 스스로를 학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았다. 신이 항상 곁에 있었을 때마저도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엄마의 역할이 컸다. 내가 느끼기엔 우리 엄마는 강압적인 사람이었다. (이건 물론 내 주관적인 생각이다.) 나의 의지나 생각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자신의 생각과 위치,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엄마 역시 예술적 기질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오히려 나보다 더 뛰어났거나, 어쩌면 더 평범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자신을 빼다 박았으면서도 자신의 성향과 극명하게 다른, 나처럼 예민한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아이로 예술적 감각과 영감이 발달했다. 거기에 까탈스럽고, 고집도 세며 자기 멋대로다. 영민하고 예민하지만 순진하고 어리석은 면도 많다. 촉이 좋아 작은 것도 잘 알아채고, 신기하게도 운도 좋았다고 한다. 타고난 것이 다소 남다른 아이는 부모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된다. 잘 키워야 한다는 압박감과 두려움, 그리고 거부함도 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또한 미워했다. 나 역시 나 같은 아이는 버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영민해서가 아니라 어릴 적에는 유독 예민하고 까탈스러웠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엄마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고, 존경하지만 가엾다.
엄마는 신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가 느끼기에는 때로는 신을 이용하여 나를 조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 이면에는 본인이 엄마를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두려움이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부정했다. 신이 있다면 내게, 그리고 당신을 그렇게 믿고 있는 저 가여운 여자에게 고통을 안겨줄 리가 없다는 것에서였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가 사이비를 믿는 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무신론적 관점은 많았지만, 논외로 하겠다.
그러다가 나는 신을 믿게 되었다. 엄마가 많이 아팠다. 그렇게 되니 신에게 매달리게 되더란 말이다. 내 건강 역시 그 당시 갑작스럽게 나빠졌다가 회복되던 중이었는데, 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 타파해나가야 할지 몰랐다. 소변색이 하루 만에 샛노랗다 못해 갈색처럼 변하고, 어지러움증이 심해서 졸도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인간은 스스로 어찌 헤쳐나갈 수 없는 극렬한 무력감 앞에 자신보다 거대한 존재의 무한한 사랑이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정말로 신기하게도 신은 내게 유예 기간을 주셨다.
신기하기 그지없는 일화는 하나 더 있다. 중학교 때였다. 학교 운동장에 위치한 연단 옆에 국기게양대가 달려있지 않은가? 그 게양대에 어찌 된 일인지 깃대가 잘못 꽂혀있던 모양이다. 튼튼하게 매달려 있었고, 분명히 각도마저 그렇게 떨어질 수 없었다. 내가 그 밑을 지나갈 때, 게양대에서 깃대가 떨어졌고, 그대로 떨어졌다면 내 머리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그 깃대는 마치 마법처럼 내 어깨를 스치고 떨어졌다. 마치 누가 나를 구하기 위해 깃대를 친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 일직선으로 떨어지다가 갑자기 방향이 틀어졌다.)
물론 모두가 잘 알다시피 기억은 미화되고, 이야기는 틀어지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나는 믿는다. 신은 분명히 나를 위해 사랑을 보내주셨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에 미친, 미치광이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길 바란다.)
신을 자세히 관찰해 본 결과, 내가 얻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신은 생각보다 인간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택은 스스로 자유 의지에 의해 진행되며, 운명을 거스르거나 운명을 택하는 것 역시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연이 닿는 사람과 닿지 말아야 할 사람 역시 인간 스스로의 선택으로 보신다. 다만, 모든 것을 지켜보실 뿐이다. 또한, 잘못된 길을 간다고 해서 그 인간을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볼 땐, 분명 틀린 길인데 신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가여워하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순전히 내 느낌이다.) 그건 우리 인간사의 모든 일이 신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 나를 예뻐하시고, 내게 무언가 해를 가한 인간은 언젠가 그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알게 하신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가도 분명 어느샌가 내게 말씀하신다. 괜찮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차갑고, 불친절하시다. 오만한 태도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신다 정도이다.
종합해 본 결과, 나는 운이 좋다. 그것도 매우 말이다. 신은 믿는 대로 보인다.
나는 고통을 겪을 때마다 알 수 있다. 이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말이다. 내가 겪은 아픔은 모두 내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다만, 도대체 어떤 것이 내 몫이기에 이리도 힘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든다. 사랑을 하시더라도 조금만 덜 아프게 사랑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이것도 어찌 보면 그저 인간의 바람이다.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보면 그렇다. 오온이 공하지 못해 그런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든 고통을 짊어지신 것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