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부터 비어있는 당신의 공간.
1. 아무것도 없이 텅 빔.
2. 실속이 없이 헛됨.
우리는 많은 것들을 기대고 살아간다. 그렇지만 삶은 그야말로 공허한 공간과 같다.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패닉룸, 누군가에게는 망망대해,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사막,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높은 에베레스트처럼 말이다.
그 형태와 크기는 다양할지언정, 우리의 본래 공간은 비어있다. 우리는 태어나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을 그 공간에 밀어 넣는다. 그 공간을 채우면 채울수록 원래 공간은 보이지 않고, 길을 잃게 된다.
비워내기 시작하면 구석에 쌓여있던 쓰레기와 먼지, 벌레들까지 아주 더러운 것들을 발견하면서 그만해야 할까 고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본래 자신의 공간은 비어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찾도록 해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만 새로운 것들이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 집에 있는 묵은 짐은 돈이 있으면 사람을 불러 치워 버리면 그만이지만, 당신이란 집에 있는 방은 누구를 부를 수 없으니 스스로 치워내야 한다. 게다가 그 공간이 온전히 당신의 것이 아니었다면, 반드시 비워야 한다. 실제 집도 그렇고, 마음의 집도 마찬가지다.
비워내면 비워낼수록 명료하게 형태가 나타난다. 본래의 공간, 바로 '나'다. 내가 드러나면, 그때는 나를 돌볼 수 있다. 집도 처음에는 깨끗하다가 쓰면 쓸수록 닳는다. 오래된 건물은 계속에서 손길을 필요로 한다. 자잘한 관리와 수리는 필수다. 사람의 마음도 그러하다.
아주 오래된 집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의 남겨진 짐을 보다 보면 답답함이 몰려오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사람을 불러 한번에 치워버리면 되지만, 마음에 남겨진 다른 사람들의 짐은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 곤란해진다. 먼지가 뽀얗게 쌓이고, 뒤로 밀어두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속에 있는 답답한 짐들은 대부분 욕망으로부터 온다. 끝없는 욕심은 얼마나 사람을 허무하게 만드는가.
총몽을 보았다면 아마도 일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갈리는 하늘 위 도시 자렘으로부터 떨어진 사이보그지만, 쓰레기장에서 발견된다. 그녀는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 사이보그의 몸을 다시 얻고 살아간다. 인간 소년 유고를 만나 사랑을 하고, 그의 꿈을 응원한다. 유고는 돈을 많이 모아 하늘 위 도시 자렘에 가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그건 불가능하고, 일어나지 못할 일이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계속해서 돈을 모으고, 결국 살해당한다. 유고는 갈리의 도움을 받아 사이보그로의 삶을 다시 얻지만, 끝없는 유토피아를 향한 열망은 사람을 얼마나 허무하게 만드는가. 그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도 다시 한번 하늘 위 도시 자렘과 연결된 파이프 위로 몸을 싣는다. 그는 파이프 위에서 다시 한번 죽음을 당하고, 그를 사랑하던 갈리는 그가 눈앞에서 몸이 갈리는 것을 보며 고통스럽게 그를 보내고 만다.
총몽은 어둡고 선악이 불분명하며 인간의 욕망이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왜 마음속에 이루지 못한, 이루지 못할, 이루지 않을 것들을 품고 사는가. 결국 그것들은 치우지도 못할 무거운 짐이 되어 자신을 짓누를 텐데 말이다.
그뿐인가. 우리는 버려야 할 많은 쓰레기들을 버리지 않고 안고 산다. 마치 쓰레기집처럼 마음속에는 쓰레기가 가득하다.
비워야만 할 것들, 떠나보내야만 할 것들.
우리는 마치 보내야 할 것들은 꽉 쥐고, 쥐어야 할 것들은 놓쳐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하면서 살고 있다. 정말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 말이다.
옛 기억을 놓지 못하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수 없고, 옛 물건을 버리지 못하면, 새 물건을 둘 공간이 없다.
나는 물건은 잘만 버리면서도 기억은 잘 놓지 못한다. 특히 나 스스로에 대한 후회는 더 그렇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그건 내 죄책감을 자극하거나 수치심을 자극하는 매우 안 좋은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내게 나 스스로에게 상처받도록 허락한 기억. 나를 지켜주지 못한 일들. 벗어나지 못한 아픈 일들. 그러나 그런 쓰레기들이 차곡차곡 내 감정의 방을 채우고 있으면 새로운 것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물론 누군가 도와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그렇게 따뜻한 이들을 만나보는가. 그런 일이 있다는 건 매우 행운이다. 힘들더라도 스스로 조금씩이라도 치우다 보면 어느샌가 바닥이 드러나고, 벽이 드러나고, 그 온전한 형태가 드러난다.
그러니 조금씩이라도 비워보자. 오늘 하루도, 좋은 것들이 더 많이 몰려올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