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함.

당신의 빛과 그늘.

by MissP

1.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데가 있다.


"그러니까 착한 아들 노릇은 착하게 태어난 형이나 해."


"착하게 태어난 사람이 어딨어.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지."

_ 드라마 굿보이 중 대사


'너 참 착하다.'

'우리 딸이 얼마나 착한 줄 알아? 부탁하면 그건 일도 아니야!'

'(뭐야) 생각보다 더 순하네.'

'착한 사람은 바보야.'

'착하기만 해서 어디에 써. 좀 더 이기적으로 살아. 안 그러면 바보 돼.'


착하다, 순하다 하는 말들은 좋은 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아이들을 제외하곤 (사실 아이들에게도 일부는) 좋은 뜻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 말을 하면서 듣는 상대방을 옥죄고 묶어둔다.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진다.


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에게 거슬림 없이 행동하는 것, 무조건적인 복종이 착한 것일까? 나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친구와 다툰 적이 있었다. 무슨 놀이를 하다가 그 친구가 자기가 불리해지자 룰을 바꿨다. 나는 매우 부당한 상황이라고 생각했고, 나와 다툰 친구의 무리가 내게 우르르 몰려와 단체로 싸웠다. 나는 꽤나 잘 싸우는 편이므로 지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있던 다른 친구가 내가 혼자 맞서 싸우는 것을 보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맞지 않는 부당한 것을 맞다고 우기는 아이들에게 통하지 않는 논리에 서러워져 눈물이 났다. 그때 다가왔던 다른 친구가 나를 달래주려고 했다. 나는 자존심에 괜찮다고 했다. 그러자 도움을 거절당한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


"우는 거 보고 착한 줄 알았는데, 못됐네."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이야 어린 친구들이 표현할 방법이 모자라기 때문에 단어 선택의 잘못이라고도 생각한다. 난 지금도 우는 것과 착한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범죄자가 우는 것은 착한 것인가?


착하다는 말은 국어사전에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

라고 되어 있다.

곱다 = 상냥하고 순하다.

바르다 = 말이나 행동 따위가 사회적인 규범이나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들어맞다.

상냥하다 = 성질이 싹싹하고 부드럽다.

라는 것으로 보아 결국 사회 규범에 어긋나지 않고 부드럽고 유순하다는 뜻이다. 이건 좋은 뜻이지 바보라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말을 하는 이도, 듣는 이도 뜻을 왜곡하여 이용하고, 곡해하여 듣는다. 당신은 정말 착한 것을 보고 착하다고 하는가? 아니면 쉽게 이용하기 위해서 저 말을 사용하는가?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착하다는 말에 사로잡혀있지는 않은가?


부당한 것을 거절하거나 말하는 것은 못된 것이 아니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착한 것과는 상관이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정말로 착한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아 이용하는 횟수보다 그저 이용하고자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 딸은 착하니까 이런 건 필요 없을 거야.'

'우리 아들은 착하니까 이런 건 양보할 수 있을 거야.'

'ㅇㅇ씨는 착하니까 이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ㅇㅇ씨는 착하니까 우리 사정을 좀 봐줘.'

'자기는 착하니까 내가 이러이러한 행동을 해도 이해해 줄 거지?'

'내 애인은 너무 착해서 내가 이러는 것도 몰라. 알아도 그냥 넘어갈걸?'


부드럽고 유순한 상대라는 것이 마음대로 조물딱거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다. 강단 있고 단단하지만 부드럽고 유순할 수 있다. 대나무는 탄탄하지만 바람에 잘 흔들리고, 바람에 잘 흔들리지만 부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한 나무일수록 태풍에 쉽게 뿌리까지 뽑혀버린다.


그렇지만 우리는 정말로 선하고 착하면서도 단단하고 깊은 사람에게는 감탄을 하면서도 착하다고 하지 않는다. 착하다는 말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하도 아줌마처럼 입어서 나이에 안 맞게 왜 그러고 입냐고 사람들이 물어본 적이 있다. 물론 회사 다닐 때였다. 나의 대답을 간단했다.

"그냥요. (엄마가 바라셔서요.)"

굳이 싸우지 않고 입었다. 나의 스타일이 왜 없었겠냐만은 그냥 부모의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거적데기 같은 거나 정말 휘황찬란한 꽃무늬를 입혀도 그런가 보다 했다. 출근하려는데 엄마가 이걸 입는 게 좋겠다 하면 입었다. 엄마가 좋아하시니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내 스타일이 바뀌자 사람들이 그랬다.


"이렇게 잘 입을 수 있으면서 그동안은 왜 그렇게 입었어?"

"이제 제 나이로 보이네."

"예뻐졌네."


나는 그냥 웃었다. 동생이 나에게 물었을 땐, 말해줬다. 나라고 뭐 없었겠냐, 그냥 엄마가 하라니까 한 거다라고. 동생은 내게 딱 한 마디만 했다.


"착하네. 누나, 정말로 착했네."


동생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고, 나는 그걸 느꼈다. 물론 그 안에는 나를 나름 잘 알기도 했고, 그 순간의 감정이었겠지만 말이다.


나는 착하진 않다. 그렇지만 선하다. 선량하고 바르다. 그리고 유약하다. 스스로 곱씹고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되새김질한다. 상처받지 않고자 까칠하게 남을 대해봤으나, 결국 돌아오는 것은 어떠한 반응에도 타인은 그들대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까칠한 자신에게 상처받는 것은 나다.


무조건 부드럽게 대할 필요는 없지만, 자상할 필요는 있다. 투영되는 자신의 모습은 결국 가장 가까운 나에게 제일 많은 영향을 미친다.


타인,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제일 약했던 나의 이유는 스스로가 사랑받기를 원하는 이기심에 나온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러면 좋아하겠지 하는 마음, 이기심에서 비롯된 선함은 착한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


나는 타인의 선함과 착함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동일한 기준으로 적용하는가를 보면 나에게 유독 까다롭다.


누구나 그렇지만 나는 착한 사람을 좋아한다. 나는 진짜로 그 말을 사용하고 싶다. 물론 나 스스로에게도. 착한 사람에게 착하다고 하는 것이 정말로 감탄하고 감화돼서 하는 말이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인정되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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