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우주의 탄생.
1. 사람이 태어남. 예전에는 성인(聖人) 또는 귀인이 태어남을 높여 이르는 말이었으나, 현재는 주로 이와 같이 쓰고 있다.
2. 조직, 제도, 사업체 따위가 새로 생김.
나는 태어났을 때 매우 하얗고 작고 매끈했다고 한다. 2킬로 남짓되는 아이였고, 의사의 결정에 따라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고 한다. 수일이 지났는데 인큐베이터 안에서 너무 잘 먹고 잘 놀아서 괜찮을 거 같다는 판단 하에 꺼냈다고 한다. 간호사들이 매일 엄마에게 와서 신생아실에서 가장 예쁘다고, 간호사들이 구경 간다고 했다고 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 배가 너무 커서 사내아이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태어난 걸 보니 너무 작았던 것이다. 아마도 작고 귀여운 내가 뱃속에서 편히 놀 수 있도록 공간을 크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닐까 싶다. 크나 큰 엄마의 사랑이지 않을까.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의사, 간호사까지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 속에 안전하게 태어났다.
어릴 때는 잔병치레가 너무 많아 새벽이고 뭐고 시간도 없이 계속 안고 소아병원, 응급실 안 가리고 뛰었다고 했다. 거기에 어린 나는 밤낮이 바뀌어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깨어 있는데 바닥에 두면 하도 세차게 울어대서 엄마가 밤새 업고 있어야 했다고 했다. 행여 다리가 오다리가 될까 봐 어린 아기의 다리를 펴고 엄마가 허리를 숙이는 자세로 수날밤을 지새운 바람에 엄마 허리가 나빠졌다고 했다. 아침에는 세상모르고 너무 천사처럼 자는데 그걸 보면 엄마는 내가 너무 미웠다고 했다.
"밤에 저리 자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릴 적 우리 엄마는 자기 일이 있는 사람이었다. 흔히 커리어가 있는 사람이었다. 처녀 적부터 해왔던 일을 계속하고 계셨다. 그래서 어린 나를 두고 일을 갈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날 온 동네에 이런 소문이 나서 엄마에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ㅇㅇ엄마, 계모야? ㅇㅇ이가 엄마가 계모라고 하고 다녀."
너무 놀란 엄마는 아니라고, 그런 말을 어떻게 알았을까 했다고 했다. 엄마는 어린 내가 이해가 안 되었겠지만, 다 자란 나는 왜 그랬는지 알 거 같다. 엄마는 나를 '버리고' 매일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이니까, 나는 엄마의 관심이 필요했을 테니까. 어린 나는 그릇된 방법으로 엄마의 사랑을 원했던 거 같다. 엄마가 너무 좋으니까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는 말이다.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위다.
어릴 때 유모가 있었는데 (엄마가 일을 하셨으므로), 어느 날 집에 데려왔는데도 계속 울어대서 이유를 몰라 보니 팔을 건드리면 자지러지더란다. 그래서 엄마가 병원에 데려가니 팔이 빠졌다고 했다. 어린 나를 안전하게 맞춰줄 접골원을 찾아 팔을 맞춰주니 그제야 생글생글 웃었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려고 유모한테 이야기를 물어보니 유모네 자녀가 내가 가지고 있던 인형을 뺏으려고 하다가 팔이 빠진 게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상황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고 아프게 만든 일에 엄마는 엄청 화가 났지만, 알겠다고 했고 그 뒤로 일을 잠시 줄이고 쉬었다고 했다.
나는 참 까탈스러운 아이다. 누군가 손을 대는 것도 싫어하고, 친구도 어른도 내 마음에 드는 사람만 허락했다고 한다.
엄마를 따라간 어느 곳에서 앉아있던 예쁜 언니를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먼저 잡지책을 가지고 다가가 이 사진 모델이 언니라면서 폭 안기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말로 '간택'이라고 하나.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 모르는 사람이 손을 대면 나는 그 손을 탁 치고 항상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어디."
"미친 X."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 경악스러운데, 어른들은 그런 말을 하는 내가 너무 웃겨서 웃음이 터졌다고 했다. 도대체 저런 말을 어디서 배웠던 걸까.
어릴 적에는 정말 예뻤는지 어른들이 다 예뻐서 다가왔다가 성질머리가 하도 별나서 손사래를 쳤다고 했다. 오죽하면 선생님들이 학을 뗄 정도였다. 유치원 선생님들도 내 덕에 엄청 고생을 많이 하셨다. 선생님 중에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쁘다, 예쁘다 하는데 어릴 때를 말하는 거니 오해가 없기를.)
"얼굴은 예쁘게 생겨가지고, 성격이 왜 이래! 얼굴값 좀 해라!"
기억에 남을 정도니, 꽤나 인상적이었나 보다. 유치원 선생님이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화딱지가 났으면 그 어린애한테 저랬을까 싶다. 정말로 악마 같은 아이였나 보다.
웃긴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초등학교 입학하고 운동장에서 줄을 맞춰 서지 않나. 그때 나는 일렬로 서는 게 익숙지 않아서 약간 옆으로 빠져나와 있었다. 선생님이 줄을 맞춰 세워주시고, 명찰을 확인하셨다. '아, ㅇㅇㅇ.' 그리고 내 이름을 바로 기억하셨다고 했다. (양갈래로 땋은 머리에 옷도 그렇고 아주 예쁜 얼굴이라서 정말 기억에 남았다고 엄마한테 말씀하셨다고 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 ㅇㅇ이가 오늘 하루 종일 제 무릎에서 공부했어요."
엄마는 무슨 소린지 몰라 자초지종을 묻자 선생님이 그러셨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혼을 내셨다. 그런데 갑자기 고집이 올라온 내가 선생님께서 앉으라는데도 앉지도 않고 그럼 서라는데도 서지도 않고 어정쩡한 자세로 1시간을 버티더란다. 결국 선생님께서 나를 불러 무릎에 앉히고 전 교시를 수업하셨다고 했다. 그 뒤로는 말을 잘 들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너무 죄송해서 어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나를 예뻐하셨고, 나의 성질머리는 점점 나아졌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담임 선생님은 미술 선생님이셨다. 선생님께서는 수업 시간에 놀자면서 항상 농담을 많이 하셨는데, 담임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내가 일명 '말대꾸'를 했다. 근데 그 말이 또 항상 맞아서 선생님이 그러셨다.
"너는 나중에 자리 잡고 나면 정치인 해라. 너는 진짜 직설적이라 말하는 거 들으면 기분이 나쁜데, 또 말하는데 듣고 보면 맞아. 그러니까 국회 가서 정치인들 다 밀어버려."
그러면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또 있다. 나는 날씨가 안 좋거나, 기분이 나빠지면 학교를 늦게 갔다. 그러면 담임 선생님이 그러셨다.
"이제 오셨어요? 너는 진짜 자유롭다, 야."
항상 와하하 하고 웃으며 넘어갔지만, 선생님께서 정말로 유쾌한 분이셨고, 나를 밉게 보시거나 비꼬는 말씀이 아니셨다. 이 아이의 기질, 그 자체를 인정해 주신 분이셨기에 가능하셨던 것이다. (나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셨다.) 졸업 후 몇 년이 지나 찾아뵈니 엄청 좋아하셨다. 찾아온 제자를 향해 짓는 미소란, 정말로 감사했다.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셨다.
또 다른 것도 있다. 나는 수업은 항상 열심히 들었다. (학교에 있을 때 말이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나를 좋아했다. 어느 날 너무 피곤해서 수업시간에 졸았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ㅇㅇ, 너마저 자면 나는 누구보고 수업하니?"
그래서 잠이 깼다. 나머지 수업을 열심히 들었다.
다른 일화도 있다. 항상 숙제를 하다가 어느 날 깜빡했다. 선생님이 숙제 안 해온 애들을 전부 세우고 혼을 내시다가 나를 보시더니 그러셨다.
"어머, 얘가 이럴 애가 아닌데, 넌 앉아라."
교실에 아이들의 아우성이 가득했다. 선생님은 편안히 다른 아이들을 혼내셨다. 나는 조금 우쭐해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나는 항상 숙제를 잘해갔으니, 한 번쯤은 누려도 되지 않았겠는가? (너무 웃기지 않은가? 그 상황과 아이들, 선생님의 표정을 상상해 보자. 정말로 웃긴 상황이니까.)
저렇게 많은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나는 점점 바르게 자랐다. 규율과 자유로움 사이의 그 경계에서 엇나가지 않고 말이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에 수업을 빠지면 안 됩니다. 제 시간이 등교하세요.) 그래서 나는 믿는다. 아이는 가르치면 반드시 배운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한 번은 그런 적이 있다. 어른이 돼서 일어난 일이다. 일을 하러 간 곳에서 나는 이유 모를 배제와 텃세, 그리고 시기를 받았다. (그 여자와 말을 나눈 적이 없었으니 내 탓이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나를 미워하던 그 여자가 나보다 우선순위에 있었으므로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를 배제했다. 그래서 나는 매우 우울해졌지만, '어른이니까' 우선은 참았다. 밥 먹을 시간이 되고, 낯선 곳에서 나는 우왕좌왕할 판이었다. 그때 그곳에 익숙한 분이 먼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겁먹은 아기 고양이를 부를 때처럼 '이리 오렴, 이리 오렴' 하는 모양새였다. 내 얼굴 표정과 상황을 눈치채고 나를 챙기고, 따뜻하게 대해주고, 자기 옆자리에 앉히고 내내 말을 걸어주셨다. 억울한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물론 그 뒤로 다시 일이 생겨 결국 울음보가 터졌지만 말이다. (이때 이십대 중반이었으니, 아직 어른이 덜 되었던 모양이다.)
그분 역시 어른이셨고, 따뜻한 분이셨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그저 어쩌면 한 번뿐인 마주침일지도 모르는, 그 메마른 곳에서 타인을 섬세하게 신경 쓸 만큼 매우.
나는 정말로 별나고, 어렵고, 성질도 더럽고, 이상한 아이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 그렇지만 만일 어른들의 사랑과 도움이 없었다면, 내 작은 우주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다.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배운다. 그래서 모두에게 항상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