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감사합니다.

by MissP

토가시 : 세상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몇 가지 직업이 있지.

교사, 의사, 자네들 같은 변호사.

그리고 정치인이지.

왜 사람들은 우리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를까?

사람들은 말이네, 자신들에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을 낮추네.

코미카도 : 교사들은 지식을 주고, 의사는 병을 낫게 해 주고, 변호사는 법으로 도움을 주죠.

토가시 : 그렇지, 그럼 정치인은 무엇을 해주는가? 돈을 벌게 해 주지.

_ 리갈하이.


사회에는 룰이란 것이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 룰이라는 건, 전부 머리 좋은 녀석들이 만들어내는 거다.
그건 다시 말해 무슨 뜻이냐, 전부 머리 좋은 녀석들이 지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내었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머리 나쁜 녀석들에게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너희들처럼 머리 쓰기 싫어하는 녀석들은 평생 속아서 불리하게 살아가라는 뜻이다.

똑똑한 것들은 승자로 유리하게 살아가고, 바보는 속아 패자로 불리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바보로 살지 않으려면, 불리하게 살지 않으려면 공부해!

_ 드래곤 사쿠라


3명이 함께하면 그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_ 논어.


날이 매우 춥다.

매서운 칼바람에도 다행히 햇살이 비춰주는 어느 추운 겨울날. 나는 외출을 하다가 문득 선생님이 뵙고 싶어졌다.


살아는 계실까. 건강은 하실까.

참 많은 스승을 거쳐 어른이 되고, 지금도 역시 살아가는 과정 중에도 여러 스승을 만났으나, 역시 내게 스승이라고 하면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돌이켜보면 말도 안 듣고, 예민하고, 조용하고, 까칠하고, 날카로운 남다른 아이를 참으로 많이들 사랑해 주셨다.


제멋대로 학교 오는 나를 그렇게 좋아하신 우리 선생님..


담임 선생님들뿐 아니다. 유치원 때 말 안 듣는 아이를 매번 혼내면서도 사랑해 주신 우리 선생님, 대화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조용하고 실험 안 하려는 아이를 따로 챙겨주신 과학 선생님, 노래조차 부끄러워 뒤돌아 부르는 아이를 칭찬해 주시는 음악 선생님, 발음이 좋다고 칭찬해 주시던 영어, 프랑스어 선생님, 나만 보고 수업한다고 하신 한국사 선생님, 부끄럽기도 하고 하기 싫어 도망 다니는 나를 찾아다닌 체육 선생님, 매번 오는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책을 추천해 주시는 사서 선생님까지. (와, 진짜 말 안 듣고 어떡하지.. 죄송합니다 선생님들)


모든 선생님들이 그리운 것은 아니다. 스승이라고 부르기에 참 상처를 많이 준 분들도 계셨다.


추운 날, 갑자기 모교에 전화를 걸었다. 담임 선생님의 성함을 말하고, 아직 계시는지 여쭈었지만 아쉽게도 퇴직을 하신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럴 거라 예상했지만, 혹여나하는 작은 기대감이 눈꽃처럼 녹으면서 아쉬움이 커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몇 년쯤 지나 예고도 없이 그냥 무작정 찾아가서 잘 계시냐고 인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이 너무 좋아하시면서 반겼다. 친구들 중에 찾아온 사람이 나뿐이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말 안 듣는 청개구리가 꼭 끝에는 말 듣더라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말이다.) 그 잠깐 세월 사이에 선생님의 머리는 어느새 희끗희끗 하얗게 세고 얼굴에는 주름이 느셨다. 연민이 아니라 참 서글펐다. 그렇게 웃기고 어린 학생들과 격 없이 지내시던 선생님의 세월은 우리보다 빨랐다.


정년퇴임을 생각하니 선생님 한 분이 더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시던 멋쟁이 선생님이셨다. 다음 해 퇴임으로 마지막 담임을 하셨던 우리 선생님. 항상 멋지게 옷을 입으셨던 선생님. 터프하고 무섭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진심이셨던 선생님. 우리 반 양아치 친구를 사람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수차례 혼내셨던 선생님. (친구야, 부디 선생님 가르침대로 똑바로 살고 있어 주렴.) 애정이 없다면, 바르게 살라고 그렇게 하실 수 있으려나.


돌아가지 않으셨을까, 아직 건강은 하실까.

작은 변명처럼 만나 뵐 수 없지만, 자신의 손을 수없이 지나간 많은 제자들에게 나눠주신 사랑만큼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얼마 전 티브이를 보다가 시사 교양 프로그램에 어떤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 이야기에 가슴이 아팠다. 그렇지만 공감만이 능사는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훌륭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학교가 나의 자녀만 신경을 쓸 수 있는 기관도 아니고, 그러기에도 상황이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학교란 사회에 적응하고, 인간관계를 맺고, 나아가 배움을 알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면, 홈스쿨링이라는 훌륭한 방법도 존재한다.


집안의 영향이라는 것이 무시할 순 없겠지만, 우리 엄마가 한 멋진 말씀이 있다. 나는 자녀 2명을 키우는데도 이렇게 힘든데, 선생님은 수많은 아이들을 돌보며 어떻게 화가 안 나겠냐, 걱정 말고 혼내세요. 바른 길로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나는 지금도 저 말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하고 엄마의 이런 면을 존경한다. 교사는 서비스업이 아니니까, 교사는 지식을 나눠주고, 사회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직업이다.


우리는 토가시의 말처럼 많은 배움을 나눠주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요즘 현대 사회에서는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를 판단하지 못한, 뒤바뀐 상황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상처를 준 선생님들 조차 그분들에게 인간으로 하지 말아라 할 것을 배웠다. 논어 속 3명의 스승은 모두 잘난 것, 못난 것 할 것 없이 배울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라.


학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자, 그리고 여러 가지를 알려준 선생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노고를 잊지 말자. 또한, 선생님도 사람임을 기억하자.


교권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지금, 부디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께 교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인지 존경을 담아 전한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일원이 되어 바르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물론 항상 논외는 있기 마련이다.)


추운 겨울, 부디 그리운 나의 선생님들과 세상 모든 선생님들께 사랑의 인사가 무사히 닿기를. 따뜻하세요,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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