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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Dec 28. 2021

서운할 때는 어찌할까요

저도 잘은 모릅니다만

요 며칠 참으로 바빴다. 보통 연말이면 한가한 회사도 일이 크게 줄지 않았고, 그 와중에 면접 제의가 들어와 이에 대응해야 했다. (언젠가 경력 개발자의 이직기를 한번 정리해볼 것이다)

솔직히 둘 다 내게 숙제 같은 느낌이 강했다. 현재 회사 일에 대해서도 약간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이기도 하고, 면접은 통과되지 않으면 그간 수고가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것이니 큰 실망을 피하고자 기대를 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렇다고 준비가 소홀해선 안되니 내 마음을 섬세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 와중에 친한 사람들과의 대화나 술자리는 한숨 돌릴 수 있는 숨구멍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그렇다고 이에 많은 의지를 할 수도 없다. 인간관계란 소중하면서 연약하지만, 때론 약삭빠른 구석까지 있어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낸 카톡을 읽씹당하는 일에도, 비아냥대는 말투로 내게 훈수하는 사람에게도, 내 속도 모르고 본인 할 말만 하는 사람 앞에서도 덤덤히 웃어넘겨야 한다. 이런 일은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임을 알지만 그래도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상한다.


나는 대답이 느리다. 누군가 내게 질문을 하면 한참을 곱씹어 생각한다. 때론 그 시간이 길어져 아예 대답을 못 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혹여 상대가 자기의 질문을 무시한 건 아닐까 고민하는 사이 시간이 더 흘러 사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은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 중이다. 이렇다 보니 서운함을 표현하는 것도 느리다. 내 감정은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다. 서운하면 그저 서운하다가 아니라, '이런 일이 어떻게 느껴져서 지금 내가 어떠하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상대와 모종의 합의든 개선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그런데 매 순간을 이렇게 살 수가 없다. 나도 상대도 그 정도의 여유가 없다. 어느 정도는 타협점을 찾게 한다. 자연스레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길 바랄 순 없지만 자잘한 모든 일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내 감정을 공감해줄 수 있고 나도 공감 가능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만났다고 쳐도 만나보니 조금씩 그 간극이 있음을 발견하거나 서로 상황이 달라지면서 간극이 생기게 되는 때가 있다. 예전엔 그 간극을 참을 수가 없었다. 상대와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 타인에게 실망하고 타인이 나에게 실망할 것 같은 그 순간을 그냥 보내줄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관계는 쉬이 보내줄 수 없어 자르게 되었다. 이별을 고하든 연락을 끊든 내 마음을 짜게 식게 만들어버려 상대에게 무감각한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하지만 나도 인간이기에 모든 관계를 자르고서 혈혈단신 행복하게 살 수 없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건강하고 느긋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왜 그렇지 못할까 고민하는 때가 많다.


우리는 자연과 집과 나의 경계를 모호히 하는 건축양식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민족이다. 나는 이런 호젓한 정신이 마음에 든다. 경계의 불분명함 안에서 더불어 사는 삶, 타인이나 세상과의 관계를 통해 나를 설명하는 방식은 DNA에 새겨진 코드와 같다.


하지만 요즘처럼 관계의 홍수에 휩쓸리기 좋은 시대에는 그에 맞는 코드를 추가하는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내 마음 같지 않게 나를 대하는 순간을 좀 더 초연히 바라봐야 한다. 마음이 가는 인연일수록, 내 모든 걸 주고 싶고 상대의 모든 걸 갖고 싶은 관계일수록 헤어짐을 고려해둘 필요가 있다.


나는 오래 만난 연인과 헤어진 적이 있다. 이렇게나 나를 잘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은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그 사랑에 답했다고 생각했지만, 관계는 끝났다. 충분히 마음을 정리했다 생각하고 서로를 위해 좋은 방향이라 생각할때쯤 관계를 끝냈지만 그 무기력함은 식욕을 앗아가기도, 물컹한 침대에 눕는것 조차 싫어 종일 바닥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날도 있었다.


그 경험은 내게 큰 교훈이 되었다. 만남은 필연적으로 이별을 불러온다는 것. 이별은 힘들지만, 반드시 치유되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날이 온다는 것. 그리고 혼자 있는 시간은 나를 생각보다 훨씬 성장시킨다는 것.


서운한 일이 있었는가? 사실 서운함은 내가 만든 일이다. 대부분  상대가 나를 서운하게 느끼게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단, 상대가 내가 어떻게 느끼든 상관없이 내뱉는 말과 행동에 내가 서운함이란 감정을 덧붙여서 생기는 것이다. 나를 그렇게 대하는 상대에게는 나도 아무렇지 않게 느끼면 된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나를 두 번, 세 번 상처 내는 자해는 그만둬야 한다.


그 과정에서 내 마음이, 아니면 상대의 마음이 식고 나아가 서로에게 상처만 남을 관계가 될 것 같으면 끊어내야 한다. 우리는(나 포함) 헤어짐에 미숙하다. 두 인격체인 나와 너의 경계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방식임을 조금 더 깊숙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경계가 벌어지면 그 관성을 따라 멀어지자. 때론 그 힘이 다른 이에게로 끌려가는 인력이 된다.


오늘 누군가로 인해 서운했는가? 이미 서운함에 상처받았다면 이는 돌릴 수 없다. 하지만 재차 상처를 헤집어 보진 말자. 그리고 내 마음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조금 더 면밀히 지켜보자. 아직 그 상대를 향해있다면 내 마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보고, 이를 공감하지 못하고 나를 튕겨낸다면 그 힘을 발돋움으로 삼아 멀어지자. 괜찮다. 분명 새로운 인연은 있다. 그 인연은 연인으로 친구으로 지인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니면 나 자신일수도 있다. 최소한 나라는 인연은 언제나 있으니 너무 두려워 말고 관계들을 흘려보내 주자.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이라지만 연애도 우정도 모든 건 '나의 선택'이다.


이 세상을 나홀로 살 수 없지만, 수 많은 사람들과 정의할 수 없는 관계일때도 오롯한 나일 때 나의 행복과 성장을 만들어갈 수 있다. 모든 스쳐가는 인연에 힘을 쏟아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기를, 그래서 나의 진정한 인연을 만나게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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