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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Dec 12. 2021

혼밥 영상보면서 혼밥하는 인간

제 이야기입니다

나는 자취생이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첫 한 학기 정도만 친척네에 살고 그다음부터 쭉 자취했다. 중간중간 친구와 같이 산 적도 있고 교환학생을 간 곳에서 기숙사 생활도 했지만 대부분 혼자 자취를 하며 살았다. 그렇게 어느덧 자취경력 10년이 넘어가는 시간이 흘렀다. 무슨 일이든 10년을 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데 나는 자취 전문가인가? 글쎄 그건 모르겠지만 나름의 버릇이랄까 룰들은 있다.


난 이부자리는 항상 바로바로 정리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아니면 집을 나서기 전에는 꼭 침대를 매만지고 집을 나선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왔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 이불이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뭉쳐있는 걸 보면 앞으로의 내 인생도 저렇게 뒤틀릴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냉장고에 물이나 생수병을 넣을 땐 비닐을 다 벗긴 채로 넣어둔다. 환경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살던 청소년기에 대한 향수랄까. 배달주문을 하고 나오는 쓰레기를 볼 때마다 내 존재 자체가 환경파괴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분리수거만큼은 철저히 하려 한다. 그래서 플라스틱 생수병을 감싼 비닐도 꼭 철저히 벗겨 분리시키는데, 막상 쓰레기를 치울 때 다 먹은 생수병을 다시 만지작거린다는 게 귀찮고 불쾌하다. 그래서 생수병을 냉장고에 넣기 전에 다 분리해 깔끔하게 알몸만 남은 생수병을 냉장고에 넣는다. 투명한 몸체와 색색의 뚜껑만 남은 생수병들이 나란히 냉장고에 누워있는 것을 보면 그대로의 조형미도 있다.


유튜브를 보기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 중 하나는 혼자 밥을 먹을 때 먹는 영상을 보는 것이다. 본가에서도 밥을 먹을 때 TV를 틀어놓고 먹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의 공기를 채워줄 화이트 노이즈를 찾다 생긴 습관인 듯 하다. 요즘에는 유튜브에 워낙 먹방영상도 많아서 밥먹으면서 보다보면 식욕이 돋기도 하고 혼자 먹어도 심심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말이 많거나 여러 사람들이 밥먹는 영상보다 혼자서 조용히 밥먹는 영상을 좋아한다. 원체 시끄럽고 분다운(분답다 : '분잡하다'의 방언)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시선을 너무 빼앗는 영상을 보다 보면 밥맛을 오롯이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요새는 무슨 알고리즘이 동작한 건지 비혼 자취 여성들이 밥 차려 먹는 브이로그 영상들이 추천되어 밥 먹을 때 몇 번 보곤 했다. 나는 결혼주의도, 비혼주의도 아니지만 그런 삶을 보다 보면 자신만의 재미를 찾아가며 사는 모습에 괜스레 그 삶을 더욱 응원해주고픈 마음이 든다.


평소에 거의 배달로 끼니를 때우다가 오늘은 쿠팡에서 로켓프레시로 밑반찬 몇 가지를 사서 햇반에 밥을 먹었다. 배달온 밑반찬 용기를 뜯어 그대로 밥상에 올려 먹는 건 또 너무 대충인 밥상 같아 길쭉한 접시 하나를 꺼내 반찬을 덜어내 먹었다. 양배추도 1/4통 전자레인지에 삶아 쌈장과 곁들여 먹을 수 있게 준비했다. 이렇게 밥상을 차려놓고 보니 꽤나 그럴듯한 한 상이 되었다. 배가 고파 되는 대로 입속에 반찬을 집어넣고 싶은 마음을 잠시 누르고 유튜브에서 적당한 영상을 찾는다. 그리고 영상 재생과 함께 식사시간이 시작된다.


따뜻한 발아 현미 햇반을 먹을 때마다 맛은 좋다만 플라스틱 용기의 위해성이 걱정된다. 다음엔 밥그릇에 밥을 옮겨 담고 전자레인지에 데워먹어야지 생각한다. 주문한 호두 멸치조림은 호두가 몇 개 없어 아쉽지만 제법 달짝찌근하다. 톳 나물 두부 무침은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음에 또 한번 먹고 싶었다. 케첩 두부 조림은 케첩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역시나 매력적이지 못한 반찬이었다. 그리고 믿고 먹는 미역줄기무침은 이번에도 밥도둑 역할을 했다. 짧은 영상 두어 개를 볼 때쯤 내 식사도 끝났다.


혼자 먹는 밥의 편안함과 함께 먹는 밥의 따스함이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채워진 식사였다. 왠지 더 맛있는 반찬들이 사고 싶어졌다. 식사는 중요하다. 나를 위한 선물은 꼭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어도 된다. 다음 주 주말에는 좀 더 잘 차린 밥상, 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가득한 한 끼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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