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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Jan 22. 2022

나는 언제쯤 편하게 먹을 수 있을까

과거 어느 날의 생각, 그리고 변하지 않은 현재

가끔 이전에 내가 써놓은 글을 본다.

어릴 적 일기를 다시 보는 기분으로 예전의 글을 볼 때면 자못 여러 생각이 든다.

오늘은 한 달에 한번 꼭 글을 쓰던 그때 일부 휘갈겨놓고 완성 짓지 못한 글을 마무리 지어보았다.



Date : 10월 어느 날


10월 한 달간은 단 한자의 글도 쓰지 못했다. 글은 내 안에 흐르는 피고, 책은 다른 사람의 가슴에서 박동하는 심장이라는데 나는 핏기없는 시체였다.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욕구와 의무감을 담아 글을 쓰려 한다. 한 달간의 우울함을 활자로 쏟아내고 이달도 글을 썼다는 만족감을 느끼고자 한다.


나의 주말은 평일보다 느리게 시작된다. 눈을 떴다가 감고 30분을 더 뒤척이다 다시 잠들기를 반복한다. 빈둥대기를 한참이다 보면 어느덧 점심때가 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주말 점심이지만 배달음식은 쉬이 선택하지 못한다. 배달음식을 고르다 고르다 고르다 거의 1시가 다 되어 식사를 시키는 경우도 더러 있다. 메뉴를 고르기가 너무 힘들다.


한평생 그놈의 '자기관리'하라는 말을 들으며 살고 있다. 여기에서 관리란 고상한 내면의 아름다움을 말하지 않는다. 피부는 푸석거리지 않고, 살이 찌지 않게 아니 정확히는 살을 조금 더 빼서 배가 나오지 않게 날씬한 몸을 만들어 보라는 의미이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밥 먹는 게 귀찮았던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저체중이었다가 사춘기 시절 먹는 재미를 느끼면서 몸무게는 정상 범위에 들어왔다. 지금도 그때 먹는 재미를 몰랐으면 인생의 숙제 하나가 덜 한 채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내 인생에서 체중을 가장 많이, 빠르게 감량한 시절이 있었다. 난 하루 세끼 각 끼니를 사과와 고구마 1개씩을 먹으며 저녁엔 줄넘기했다. 배고프지만 빨리 살을 빼고 싶다는 조급함에 힘들다 생각을 못 했다. 듣기만 해도 근 손실 오는 식단이지만 그 땐 그런 거 따질때가 아니었다. 물론 그런 식단을 평생 유지할 순 없어 야금야금 체중은 돌아왔다.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으로 미국을 갔을 때 난 다른 세상을 보았다. 미국도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나라지만 우리나라만큼 모든 체형이 획일화되어 있지도 않고, 모든 여자들이 마른 몸을 위해 맹신적으로 먹는 걸 참아가며 다이어트를 하지도 않았다. 체육관은 항상 사람들이 많았지만, 남녀 대다수는 체지방도 근육도 많은  사람이었다. 체지방은 표준 이하, 근육량은 표준이상의 비정상적 몸을 바라는 어디의 체육관 모습과는 판이하였다.


나는 그곳에 머물고 싶었다. 한평생 나를 따라다닐 숙제가 어딘가에선 아니었구나. 이곳에서라면 나도 내 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푸른 잔디에 앉아 책가방을 등받이 삼으며 가을바람을 만끽하던 그때의 나에게 대한민국은 잔뜩 화가 나서 나를 혼낼 준비를 하는 어르신이었다.


친구들과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었고, 운동도 많이 했지만 몸은 날이 갈수록 불어갔다. 학기가 끝날 즈음 코트가 재킷마냥 붙도록 살이 쪘다. 한국에 돌아오니 만나는 인간마다 살이 왜 이리 쪘냐, 운동해라, 그럼 건강에 안 좋다 등등 한마디씩 꼭 던져줬다. 내 건강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물론 속으론 '건강 같은 소리하시네'라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한 식단도 잘 먹는 식성 덕에 정상 체중 범위로 돌아오게 되었으나 언제든지 그렇게 찔 수 있는 몸임을 확인했다. 마른 사람, 퉁퉁한 사람 어느 쪽이든 듣는 핀잔은 뭐 같지만, 둘 다 경험해본 바론 최소한 여자에게는 후자가 더 지랄맞다. 살이 안 찌는 체질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있지만, 살이 잘 찌는 체질을 부러워하는 사람은 없다.


한 날, 남동생과 소고기를 먹으며 외모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동생은 다들 좋아하는 등심, 안심보단 특수부위 같은 사람이 좋지 않냐며 개인이 가진 내면의 매력의 중요성을 얘기했다. 나는 그 말에 동조하면서도 외모가 얼마나 큰 매력이며 무기인지를 얘기했다. 끄덕이는 동생을 보면서도 기분이 마냥 좋지 않았다. 마음 한켠엔 내가 한 말에 끝없이 반박해주길 바랬다. 사실 이 논쟁은 시작부터 동생이 한 수 접을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여긴 '대한민국'이니까.

우리나라가 가진 'XX주의'에서 둘째가면 서러운 게 '외모지상주의'다. 영상물에 나오는 모든 인간은 카메라발을 위해 저체중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고, 이를 보는 일반인들은 생리불순에 탈모가 오도록 다이어트를 하며 이를 쫓는다.


내면을 강조하는 말에는 코웃음이 나오고,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은 이제 지겹다. 둘 다 중요한 거 모르는 사람 있나. 아무리 정신력 강한 사람도 몸이 무겁고 아프면 게을러지는 건 순식간이다. 반대로 얼굴로 밥벌이를 할 정도의 사람이라도 마음에 병이 있으면 인생이 무용해지기 마련이다.


남자 잘 만나 인생 고쳐보겠단 생각도 없고, 홀로 살아도 고독할지언정 불행하지 않을 자신 있다 말해도 소용없다. 일단 예뻐라. 나이야 먹을 수밖에 없고 노화를 막을 수 없다면 살이라도 찌지 말아라. 그런 뉘앙스의 말은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또 시작이네라는 생각이 들며 심연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한다. 기도가 시작되는 지점을 반으로 줄여놓은 듯 숨을 작게 내쉬게 되고, 몸은 먹지도 않았는데 초 단위로 살이 찌는 듯 무거워진다.


나는 공들여 화장하고 꾸미는 것도 축 늘어진 편한 복장도 좋아한다. 하지만 가끔 이런 말에 휘몰아 쳐진 날이면 괜스레 타협 당한 기분에 집안에 화장품들을 모조리 버려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물론 절대 버리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버린다면 그거야말로 타협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허해야 한다. 그를 허하는 것은 나를 갉아먹는 타협이다.


그런 말들에 굴복하지 말라 말하고 싶다면 이 또한 너무 가혹한 말이다. 그건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그 물을 다 들이켜 버리라는 것. 물에 빠진 건 알겠으나 익사하지 말아달란 부탁이다.

아무리 자유로이 살아 보려해도 절대 잘리지 않는 족쇄가 차진 기분이 드는 날이 있다. 한 발 내딯을 때마다 나도 데려가라며 약 올리듯 철거덩 존재감을 내보이는 족쇄.


그런 생각이 들면 일단 눕는다. 온몸을 바닥에 기댔지만 마음은 남극의 크레바스에 빠진 것처럼 끝도 없이 가라앉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원인이 뭔가 생각한다. 그러다 모든 원인이 바꿀 수도 없는 과거와 몇 가지 환경으로 귀결되려 하면 생각을 멈춘다.


바꾸지 못할 것들을 원인으로 삼기 시작하면 결국 첫 단추부터 그른 거였다는 허무함에 빠지기에 십상이다. 어떻게든 내가 제어 가능한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도록 나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려면 크레바스에 빠져도 올라올 수 있는 안전장치가 필수다. 위태로이 눈밭을 걸으면서 나름의 안전장치들을 만들어두며 살려 한다. 단순히 키와 체중같은 외적 특성만으로 나를 설명하지 않도록 추가적인 그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나에게 살을 빼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나도 내 주위 사람들도 그런 말이 무례하다는 것 정도는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티비나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을 보며 '말랐다, 날씬하다, 예쁘다', '살쪘네, 뚱뚱하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악의 없이 남녀 모두 무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한다.

한 줌의 허리와 도드라진 쇄골, 야리야리한 손발목이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디폴트가 되어버린 이 사회에 무얼 바라겠는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 나를 보면서도 여기가 어떻고 저기는 어떻네라고 생각하겠지' 싶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딱히 화를 낼 마음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저 나는 진심으로 마음 편히 먹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싶은 때에 맘껏 먹고 싶다.

머릿속으로 공복 시간과 칼로리와 이를 상쇄시키기 위해 필요한 운동 시간 따위 다 제쳐두고 즐기고 싶다.

내가 살이 찌고 빠지는 것에 그만 스트레스받고 싶다.

건강하게 먹다 보니 살이 빠지더라고요. 전 식단 관리 안 해요. 전 대식가에요. 라고 말하며 1일 성인 권장칼로리의 반도 먹지 않으며 앙상한 몸을 유지하는 거짓말쟁이들이 미디어에서 그만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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