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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Mar 13. 2022

내 방 창 밖은 진회색

어두운 오피스텔 체류기

나는 전용면적 6.8평대의 작은 오피스텔에 산다.

퀸사이즈 침대와 120cm짜리 책상을 두고 나면 크게 남는 공간이 없다.

친구들이 2~3명 오는 날엔 그 얼마 안 되는 공간에 배달시킨 음식들을 깔아놓고 먹어야 한다.


그래도 딱히 주방 살림이나 옷가지, 신발이 많은 편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없었다.


감안하고 들어왔지만,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 건 전망이다.

내 방에는 동향으로 큰 창이 나 있지만 바로 맞은편 오피스텔 가까이 붙어있어 빛이라곤 기대할 수 없다.

옷장을 여닫을 때마다 창 쪽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맞은편 오피스텔로 눈이 가게 된다.

그 쪽 오피스텔에서 날 볼까 봐 겁난다기보다 의도치 않았는데 관음증 환자인냥 자기를 힐끗거리는 줄 알 까봐 걱정되었다.

그쪽도 나를 의식한 것 같긴 하다. 어느 날부터 그 방 블라인드가 내려갔다.


눈을 뜨고 시계를 확인하지 않으면 지금이 몇 시인지 오늘 날씨가 어떤지 가늠할 수 없다.

억수같이 비가 오지 않는 이상 창문을 열어도 건물 간 그림자가 서로 비춰 창밖은 언제나 진회색이다.


날이 흐린가 싶어 나갔다가 너무나 화창한 날씨에 왜 이제야 집 밖을 나왔을까 싶던 날도,

아무 생각 없이 집 밖을 나섰다 비가 와서 우산을 챙기러 다시 집으로 돌아간 일도 있다.

그 후부턴 집 밖을 나가기 전 '하이, 빅스비'로 날씨를 확인하는 게 생활화가 되었다.


푸르른 녹음과 먼 지평선을 바랄 수 있는 뷰는 바라지도 않지만 내 집과 주위 건물 간 공간이 필요함을 다시금 절감케 하는 지난 11개월이었다.

물론 여러 다른 조건들을 따져보고 감안하고 들어온 곳이었기에 후회되진 않았다.


그래도 다음 집을 고를 땐 맘 놓고 창을 열 수 있는 곳을 가야겠다 다짐했다.

그런데 진짜 이사 갈 집을 고를 시기가 되어 집들을 보다 보니 하... 이번도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인근 오피스텔들은 외다 싶을 싶을 만큼 검색해보고 직접 찾아가도 봤지만

애초에 남향, 남동향 매물이 잘 없을뿐더라 막상 그렇다고 해서 가보면 그 향이 아니거나 맞은 편에 다른 건물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론 더 많은 자금을 조달하면 더 좋은 조건의 집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 생각이 아니라면 여유자금과 저축 비율을 생각해야 했고 그러면 언제나 Trade-Off가 발생한다.


집을 볼 때 따져야 할 조건들은 대충 아래와 같다.

평수, 방 컨디션(보통 몇 연도에 지어졌다는 것에서 판가름 난다), 교통/인프라, 직장과의 거리, 전망, 향(向), 소음, 가격, 전입 가능 여부, 주차장

이 중 포기하기 만만한 게 전망, 향이다. 어차피 대부분 시간은 회사에서 보내니 내가 얼마나 밖을 보겠어 싶은 생각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밀리는 조건이다.


살아보니 어느 정도 포기해도 치명적이지 않은 조건인 건 맞다 싶다.

하지만 기분이 가라앉는 날엔 짙은 회색에 그나마도 혹여 밖에서 비칠까 봐 시트지를 덧대놓은 창문이 을씨년스럽고 처량하기까지 하다.


애초에 집에 있을 때도 불들을 많이 켜두지 않지만,

그래도 따사로운 자연광은 그 어떤 조명보다 따뜻하고 아름답고 내게는 소중하고 그립기까지 하다.


어두운 창을 보다 보니 마음이 어두워지는 걸까.

내 마음이 어두워 어두운 창을 멍하니 보게 되는 걸까.

이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월 돈 몇십 더 주고라도 빛이 들어오는 곳을 가야 하나 싶다.


언젠가부터 카페에 가서 마시자면 한 숨에 들이켤 양의 커피를 야금야금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습관도 뻥 뚫린 창밖으로 사람 구경하며 그 유리를 관통하는 빛을 쪼이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어두운 밤을 지나 보내고

내일은 조금 더 밝은 마음으로 일어나고 싶다.


내일은 이 퀴퀴한 마음까지도 날려버릴 만큼 밝은 해를 바라보며 출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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