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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Aug 22. 2021

야한 시

경고 : 홍보성 글일 수 있습니다

대화를 할 때의 나는 글을 쓸 때의 나와 사뭇 다르다. 글 속의 나는 훨씬 감정적이면서 단호하다. 개인적으로 마음을 담아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때 공통으로 받은 피드백 중 하나는 너무 감정적이란 것이었다. 이는 읽는 이로 하여금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나도 시차를 두고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왜 이리 화가 나 있지?' 아니면 '알았어, 알았으니까 천천히 얘기해봐'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쩌면 하고 싶은 말도 몇 번을 삼켜야 하는 현실과는 다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드러나는 모양이다.


글을 쓸 때도 항상 같은 마음가짐도 아니다. 긴 글을 쓸 때와 시를 쓸 때는 또 한 번 다르다. 나는 '씀'이라는 시쓰기 어플리케이션의 사용자다.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후 아무 말이라도 쓰고 싶지만 긴 글을 쓸 부지런함이 없을 때 자주 이용한다. 오늘 자로 어느덧 100편의 시를 썼다. 내 계정은 지인 그 누구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서만큼은 정말 내 맘대로 시를 쓴다. 정기적으로 쓰지도 않고 주제도 내 멋대로다.


그런 날이 있다. 평생 끝까지 읽어본 시집 하나도 없지만, 지금 내 기분은 어느 유명한 시인이 시 한 줄 써낸 밤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그래서 내가 써낸 한 문장도 누구도 쓰기 힘든 아찔한 문장일 거라는 착각이 온몸을 휘감는 날.


'씀'은 '담아가기'라는 기능이 있어 누군가 내 시를 담아가면 알람이 온다. '좋아요'와도 같은 이 알람을 받을 때 묘한 쾌감이 있다. 본인의 시를 모아 모음집을 만들고 다른 이의 모음집에 감상평을 남길 수도 있다. 100편의 나의 시 중 몇 편 모아 시 모음을 만들었는데, 감상평으로 '최고...'라는 짧은 댓글이 달린 것 본 날은 형언하기 어려운 짜릿함이 느껴졌다. 해당 감상평이 달린 모음집 제목은 '야한 시'다. 이별에 대한 시를 쓰고 모음집도 만들어봤지만, 알람과 감상평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야한 시' 모음집에 담긴 시들은 감사하게도 몇몇 사람들이 시를 담아가서 알람도 왔다. 내가 야한 내용을 시로 잘 쓰거나 이런 내용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일 테다. 아래 시는 몇 번 받아보지 못한 알람 속에서 중복적으로 담아가진 시다.



제목 : 잠


나랑 한번 잘래?

지난날 다음 날 미리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오늘 하루는

각자 살짝 상처 날 거 각오하고

침대 위에서 뒹굴어 볼래?


그러고서 별로면 다신 같이 자지 말고

좋으면 내일도 자고

한 번 그래 볼래?



특정 대상을 생각하기 보다 살면서 어떤 충동을 느낀 날 나의 기분을 생각하며 썼다. 써놓고 보니 딱히 야하지도 않지만, 누군가 담아간 걸 보면 공감 가는 구석이 있었나보다 싶다.


나의 가장 본능적인 감정에 대해 표현하는 조심스러우면서 스릴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긴 민망한 욕망이지만 누군가를 흥분시킬 만큼 자극적인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공존한다. 한동안은 내 계정을 숨겨야겠다. 그리고 또 잠 못 드는 밤이 오면 솔직한 마음으로 시를 쓸 것이다. 메타버스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안에 이미 여러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공존시키는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한동안은 적정거리를 유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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