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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Sep 20. 2021

아버지의 장례식 - 1

사람이 나는 것도 가는 것도 쉽지 않더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발인을 마친 지 6일이 지났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었고 앞으로도 한 며칠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닥뜨린 아버지의 장례식은 슬픔이라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복합적인 심상을 일으키는 사건이었다.


이미 올해 간암 진단 시 말기 판정을 받으셨기에 일가족은 항상 소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했다. 주말을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는 연락에 부리나케 병원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타지에서 일하고 있다는 변명을 구실삼아 병간호는 어머니와 남동생 몫이 되었다.


그 와중에 병문을 갈 때면 어머니는 나에게 아버지 보고 놀라지 말라는 말을 연거푸 하셨다. 건장한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죽음의 그림자가 터럭 하나 남지 않은 정수리부터 움푹 팬 눈두덩이, 단단하지만 가늘게 느껴지는 어깨뼈에 드리워져 있었다. 이제 더 빠질 살이 없으시겠다 싶어도 방문할 때마다 더 살이 빠져 계신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아사(死)하는 사람은 대체 어떤 몰골이란 말인가 궁금하기까지 했다. 목소리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셨다. 올해 환갑이신 아버지가 목소리는 8-90대 노인이라 해도 믿을 만큼 맥아리가 없고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입을 떼시려 할 때면 목주름부터 앙상한 가슴팍까지 소리를 만들기 위해 들썩거렸기에 얼마나 기력을 모아 쓰시는 건지 생경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면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그래 성정은 그대로 남아 계셔 자기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르게 행동하는 게 보이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병실에 다른 사람이 있든, 지금 본인을 위해 가족의 수면시간과 체력과 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쓰이든 개의치 않고 소리를 치셨다. 여전히 나는 타지에 있었기에 그 수고로움은 온전히 어머니와 동생의 몫이었지만 아버지 성격을 알기에 어떤 상황이 펼쳐졌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어머니는 자기가 곧 죽는다는 거 아는 사람이 제정신일 수가 있겠느냐며 동생을 아니 본인을 타이르셨다. 마누라가 뭐길래 그런 말을 듣고도 이리 담담해야 하나 나는 그저 아버지가 야속했다.


만나는 의료진마다 언제든 갑자기 의식을 잃으실 수 있다는 말했다. 병간호를 하는 사람입장에서 미치는 일은 이 모든 상황이 언제 종료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막말로 'O월 O째 주쯤이 마지막이 되실 겁니다'라고 알 수 있다면 그 어떤 모진 순간도 넘기겠지만 한 달이 될지 1년이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불이 아닌 이상 환자에게도 독한 마음을 품게 된다. 세상 착한 동생이 병실을 뛰쳐나가 버렸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땐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잠을 자듯 의식을 놓으시는 순간이 부쩍 늘어났다. 혼자 힘으로 침대도 내려오지 못하셨기에 몸에 소변줄을 꽂고 손끝으로 전달되는 바이탈 지수로 생사를 가늠해야 했다. 딸 입장에서 온전히 바지도 입지 않으신 채 담요로 하반신을 덮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있기 쉽지 않았다. 손을 꼬옥 잡아드려도 어느 순간 손가락을 흔들며 손을 뿌리치는 천상 경상도 아버지가 그런 모습이 되시기까지 본인은 얼마나 아프고 힘드셨을까. 죽음과 병환은 그만큼 잔인하고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전날 잠을 설치다 새벽 4시에 겨우 잠들었다 갑작스레 오전 8시쯤 깨고 나서 조금 더 있다 어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지금 내려와라.


내가 다시 올 땐 아버지 장례식이겠구나 예상은 했지만, 그 순간이 되니 뭐부터 해야 할지 몰라 오히려 행동이 굼떠졌다. 그렇게 나는 며칠간 본가에 있을 수 있도록 짐을 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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