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낯선 이와의 조우
오래간만에 이른 약속을 위해 나왔다가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아쉬워 집 근처 카페를 찾았다.
집에 가깝지만 그렇기에 막상 이사를 갈 때까지 가지지 않는 것이 집에서 약 15분 정도 떨어진 카페나 식당이다. 차를 이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오늘도 오피스텔에 딸린 스타벅스나 아주 다른 동네로 넘어가는 카페를 갔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굳이 또 다른 동네를 찾고 싶지 않았고 혼자 있어도 크게 눈치 보이지 않는 작은 카페에서 책 몇 페이지 읽고 들어가면 좋겠다 Daytrip앱을 켜서 카페를 찾았다. 마침 작지만 그 카페만의 특이한 메뉴가 있는 카페를 찾았다. 딱히 주차하기 좋은 동네가 아니지만 주말이었기에 문을 닫은 다른 가게 앞에 주차를 할 수도 있었으니 참으로 안성맞춤인 카페였다.
그렇게 들어간 카페는 예상보다도 더 작아 약간 당황스러웠고 내 커다란 16인치 맥북이 아닌 책 하나 들고 온 것이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창밖에 훤히 보이는 창가 바자리에 앉아 책을 편지 몇 분이 지났을까. 등 뒤로 엄청나게 진한 향수냄새가 지나갔고 내 바로 왼쪽 바좌석에서 머물렀다. 이 정도 강렬한 농도의 향수는 며칠 전에도 맡은 적이 있었으니 영화관을 가려 탄 엘리베이터에 중동지역에서 온 것 같은 외국인의 순간 헉하고 숨이 막힐 듯한 강렬한 향수 냄새와 비슷한 짙음이었다. 그렇다고 기분 나쁜 냄새는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향기의 원천이 어디인지 고개를 돌려 쳐다보거나 다른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다시 책을 1,2페이지 읽고 나자 그 진한 향수냄새에도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까이에서 영어로 말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 고개를 드니 향수 냄새의 주인인 외국인이 혹시 여기 카페가 몇 시에 닫는지 아느냐고 물었던 것이었다. 순간 들려오는 영어에 한 2초 정도는 빤히 쳐다보다가 나도 이 카페에 오기 전에 카페 영업시간을 확인했던지라 아마 9시에 닫을 거라고 대답해 줬다. 그렇게 자연스레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얼마 전에 일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을 그것도 평택으로 온 40대 모로코계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강남이냐 물었다. 난 여기는 용산이라는 곳이라고 알려줬다. 오지랖이 넓어 여긴 한강의 북쪽인 강북에 속해있으며 강남은 한강의 남쪽에 있다는 말까지 해주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강남은 한강의 남쪽보다는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몇 개 구 아니면 특정 일대만 일컫는 용도로 많이 쓰니 괜히 외국인에게 혼동되는 지식만 전달한 것 같아 멋쩍스럽다. 나중에 그와 더 많은 대화를 해보니 이 동네를 걸어 다닐 때 '강남 성형외과'를 여러 군데 봐서 이곳이 강남이라고 생각했더란다.
얘기를 하다가 그는 이 건물 위층에 가봐야 할 일이 있다며 혹시 한 시간 후정도에도 카페에 있냐고 물어봤다. 내가 '음.. 글쎄..'라고 대답하려는 찰나 그는 별일 없으면 나랑 같이 자기가 갈 곳에 따라가겠냐고 제안했다. 속으로 무슨 일이길래 만난 지 몇 분도 안된 사람을 데려간다는 것인지 의뭉스럽다가도 그간 정말 심심했나 보다는 안쓰러움과 친구를 만나는 편한 자리인가 보다 싶어 '그래도 되는 거야?'라고 대답해 버렸다. 어쩌면 내가 정말 심심했던 건 아닐까. 그러자 그는 활짝 웃으며 Of course를 연신 내뱉으며 얘기하느라 거의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커피를 두고 나를 데리고 건물 윗위층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갔더니 세상에나 퍼스널 컬러진단을 해주는 업체였다. 평택에서 일하는 40대 모로코계 남성이 용산에 퍼스널 컬러진단을 받으러 온다라. 정말 이례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엉겁결에 그가 대략 한 시간 정도 퍼스널 컬러진단을 받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었는데 그는 정말 적극적으로 그 시간에 임했더랬다. 직원이 이런 색조합이 좋고 옷은 이렇게 입는 게 좋다고 말하자 휴대폰 사진첩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을 보여주며 이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 직원이 안경색에 대해서 얘기하면 '컬러'진단 시간이건만 어떤 모양의 안경이 좋을지 물어보고 신발은 어떤 게 좋을지 총체적인 스타일링 진단을 받는 과정이었다 할 만큼 떠오르는 모든 질문들은 다 내뱉는 것 같았다. 진단시간이 끝나갈 즈음 그는 To be Korean을 하기 위해선 옷도 잘 입어야 하고 몸도 날씬해야 하고 피부도 빛나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어렵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도 직원분도 우리 한국인들도 쉽진 않다라며 덩달아 웃었는데 한 번씩 곱씹게 되는 말이었다.
진단이 끝날 때쯤엔 나도 약간은 지쳐 멍해졌는데 드디어 집에 가는군! 생각하는 순간 그는 배고 고프다고 했다. 내가 정말 귀찮아하고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음식메뉴를 고르고 식당을 고르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를 만나면 거의 친구가 원하는 곳을 따라가는데 차마 외국인에게 그 일을 시킬 수는 없었다. 어쩌다 무슬림인을 위해 적당한 식당을 골라야 했는데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먹을 만한 곳이 있었다. 그렇게 밥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자기 인생이 흘렀으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각자 얘기하는데 그는 한국에 살아보니 이곳이 너무 competitve 한 게 느껴진다며 이곳 생활이 꽤나 재밌지만 한국인으로 사는 것도, 영어로 진행한다는 이유로 거의 2배의 비용을 청구한 서비스를 예를 들며 한국에서 외국인이 산다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연거푸 얘기했다.
어쩌다 보니 나도 삶에 대한 하소연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고개를 끄덕 끄덕였다.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나는 책 읽으려 카페 왔을 텐데 오랜 시간 그의 일정에 따라오게 한 게 미안했는지 한사코 자기가 밥값을 내겠다고 했다. 나는 오래간만에 영어연습한 기분이라 꽤나 생산적인 시간이었다 생각했는데 밥까지 얻어먹으니 감사한 마음이었다. 그는 평택에 돌아가는 게 정말 싫었는지 또 한 번 카페를 가자고 했고 그렇게 그렇게 다시 한번 따뜻한 Tea를 마시고 나서야 서로 각자 집에 가게 되었다.
몇 페이지 읽지 못한 책을 들고 다시 내 차로 돌아오니 참으로 희한한 하루라는 것이 훅하고 느껴졌다. 우리는 처음 보는 사람 절대 따라가면 안 된다고 교육받지만 인생은 아주 작은 용기를 내는 것, 그저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일들이 찾아오고 재밌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택 어딘가에서 또 하루하루 낯선 타국의 생활을 이어갈 그가 언젠가 자신이 하고 싶다는 일들을 꼭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