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없는 순댓국

다음에는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기를

by 미스트

오래간만에 지인 둘과 점심을 먹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친구보다도 살갑게 지내던 지인들이었다.

둘은 서로도 친해서 둘이 시시콜콜한 농담도 많이 주고받았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웃음이 터져 그냥 가까이서 보고만 있어서 재밌는 사람들이었다.


어쩌다 알게 되어 어쩌다 작게 일도 해보고 그러면서 알게 모르고 속정이 많이 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와도 더 많은 일을 함께하길 원했지만 더 이상 내가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이 말을 전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지인들의 배려로 우리 집 근처에까지 와서 순댓국을 먹는데 배가 고파 따뜻한 국물이 기분 좋으면서도 머릿속은 언제 어떻게 무슨 말을 할까 부산스러웠다. 지인들도 내게 할 말이 있었으리라. 크리스마스에도 그리 춥지 않더니 이 날은 어찌나 추운지 식당에 손님이 들어왔다 나가느라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에 들어오는 바람조차 신경을 날카롭게 했다.


밥을 몇 술 뜨고 불편한 얘기가 오갔다. 그들도 나도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말이 필요가 없었다. 서로 어느 정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를 때려눕혀 끌고 갈 것이 아니라면 내 결정을 어찌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리나케 밥을 먹고 식당을 나왔다. 조만간 술이나 한잔 하자 말하고 헤어졌다.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았다. 뭔가 온전히 깔끔하게 끝나지 않았다.


하늘이 너무 맑았고 운전 내내 찜찜하고 약간은 홀가분한 기분에 집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내 집이 꽤나 맘에 들었지만 하나 불만이 있다면 집에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이 침침한 날은 특히나 해가 하늘 높이 떠 있을 때는 집안에 있고 싶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아무도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나는 떠나겠다고 말했고 어쩌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이제 정말 다 내려두고 떠나는 것뿐인 것만 같다. 떠나겠다 말한 이상 떠나야만 한다. 짧게든 길게든. 어쩌면 그 무언가가 날 잡아주길 바랐다. 내가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쯤 있어서 아무리 흐르는 대로 떠돌며 사는 게 내 삶이라도 어딘가 정박해있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제 더 멀리 떠나야 할 이유가 생겨버렸다.


마음이 끝도 없이 공허해지는데 참으로 좋아한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내 속을 알 리 없는 친구는 나의 떠남 계획을 듣고는 여행지에 관한 몇 가지 팁을 말해주었다. 나는 아주 건조하게 고마워라고 남겼다. 어쩐지 이 친구에게서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좋아했고 어쩌면 지금도 아끼는 친구지만 말 한번 오갈 때마다 텀이 길어질 때마다 마음이 뚝뚝 끊어졌다. 그런 얘기가 듣고 싶었던 게 아니야. 그런 얘기가 궁금한 게 아니야라는 말이 목젖에서 찰랑거렸지만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왜일까. 왜 그럴까. 다 삼키고 내가 남긴 문자에 서운함만 그득히 남겨두고 메신저를 꺼버렸다. 정말 맛있는 순댓국이 먹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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