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걱정 없고 나른한 두 분의 따스한 언어 속에서.
만월 이모에 대해서는 내가 좀 더 유려한 글솜씨를 갖췄을 때 다시 적어보고 싶다. 그럼에도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이유는, 얼마 전에 이모를 만나고 난 후 그와의 만남을 일기에 정리하다 문득 이모의 발랄함과 호쾌한 조언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때 글을 쓰는 게 좋을 거 같아서다. 이 신호를 절대 미루거나 무시하고 싶지 않아서, 급한 마음으로 한글 프로그램을 켰다. 우선, 만월 이모는 친이모가 아니다. 그럼에도 친이모만큼, 아니 친이모 이상으로 내 꼬꼬마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그의 존재는 거대한 산맥이었고 굵직한 강줄기였다. 이모는 우리 엄마와 같은 학교, 같은 학과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했다. 이모는 오전 수업이 있을땐 항상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엔 이모네 어머니가 너는 왜 오전에는 학교를 안가냐고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신 적도 있다고 한다. 강의 시작 15분 전까지 수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손끝을 타고 저릿저릿 올라오는 나와 달라서 다소 불성실해 보이는 이모의 행동이 한 편으로 비범해 보였다. 그렇다고 그대로 따라하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이모가 꼭 내 또래일 때, 이모는 우리 엄마의 생후 몇 개월된 아기, 그러니까 나를 조심스레 안아 들었다. 작고 꼬물대는 것을 안았을 때의 따뜻함에 이모는 저절로 퍼지는 미소를 머금고 본인과 아기를 향해 플래시를 터뜨리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말도 못할 때부터 나와 이모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아빠가 먼 서울에 계실 때, 이모는 우리 집에서 종종 자고 가기도 했다. 해가 내리쬐는 아침, 꼬꼬마에 관찰력이 뛰어났던 나는 누워있는 이모의 발에 검은 잉크로 그려진 십자 발찌 타투를 유심히 바라본 기억이 난다. 십자는 마치 바람개비 모양 같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가벼운 화법을 사용하지만 지혜와 지식이 진하게 농축되어 내 마음속에 항상 돌풍 같은 바람(positive)을 일으키고 가는 이모의 언어는 그 십자와 꼭 닮아있었다. 몸과 머리가 엑스(X)를 띄울 때 입은 오(O)라고 말해야 할 무렵 나는 머릿속에 드는 미래, 남녀문제, 장래희망과 싸워야 했다. 그 싸움에 지쳐 기분이 진흙탕 바닥을 뒹굴 때 나는 이모네 집에 가게 되었다. 이모와 양고기를 잔뜩 먹고 어스름이 지는 밤이 되면 이모는 칼과 투구를 입은 후 나를 때리고 찌르고 베어버리는 고민거리들과 같이 싸워주었다. 물론 이모의 영혼의 짝꿍, 안군 삼촌도 함께 칼을 들었다.
시연이는 나중에 뭘하고 싶어?라고 두 분이 운을 떼면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와 같은 대학생들의 기본 멘트로 답을 했다. 글은 어때? 시연이가 쓰는 글은 옛날 웹소설 같아서 좋아,라고 만월 이모가 손뼉을 짝 치며 이야기하면 맞아 맞아, 나는 시연이가 글 쪽으로 가면 좋겠는데. 하고 옆에서 안군 삼촌이 거들었다. 근데.. 제 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안봐요. 조회수도 잘 안나오고, 좋아요도 별로 안찍혀요. 그리고 글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금전적인 문제가 있을까봐.. 쉽게 그 길을 선택하지 못하겠어요. 이 말을 내뱉는 나의 어깨는 조금 움츠러들어 있다. 누가 작가의 자존심은 좋아요와 댓글수라 그랬다, 현실에서는 그리도 자존심을 못 버리면서, 막상 온라인에서 글을 쓰는 작가가 되면 그런 자존심 따위 세울 수도 없었다. 곰곰이 듣고 있던 두 분은 이제까지 들어본 적 없는 반짝거리는 예시와 위로로 나를 감싸 안았다. 시연아, 글은 조회수나 좋아요로 평가되는 게 아니야. 네가 그런 부수적인 것들 때문에 주눅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 내가 아는 시인이 한 분 계시는데, 서점도 운영하시고 강연도 하시면서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게 사시지 않더라고. 너무 겁먹지 마. 포근하고 따뜻한 솜이불이 온몸을 폭 감쌌을 때의 기분을 아는가? 나는 그 안에서 한숨 푹 자고 싶었다. 그 걱정 없고 나른한 두 분의 따스한 언어 속에서.
평범하게 직장에 들어가서 글을 쓸까, 그렇다면 그 직장은 무엇으로 할까, 만월 이모처럼 시민단체에 들어가볼까, 아냐. 엄마와 이모가 정치 이야기할 때 하나도 못 알아듣겠던데. 그럼 어떻게 할까.. 이 수없이 고민해도 풀리지 않는 난제 끝에서 발견한 자아는 글을 쓰고 있었고, 그 글들을 모아 책을 펴내어 출판한 후, 출판한 책을 갖고 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택하지 않는 길이니까. 대부분은 직장에 들어가서 루틴 있는 삶과 임금을 누리길 희망하니까. 그럴 때마다 나는 만월 이모가 말해준 시인 분을 떠올린다. 상상 속에서 그 분과 차를 마시며 고민을 이야기하고 서로 마음을 통한다.
하루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청년취업행사를 개최했다. 이모가 속한 시민단체 또한 그 행사에 참여했고, 우리 학과 교수님까지 단상에 나타나셨다. 비록 나는 그런 행사가 있는지조차 몰랐지만. 행사가 끝난 후 약속되어 있던 대로 나는 이모를 만났다. 이모는 호방한 기색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너희 학교에 청년취업행사를 가게 됐는데, 결론은 이거더라고. 어차피 100세 시대 인생인데, 조급할 게 뭐가 있을까? 우리 모두 천천히 가도 좋다는 거야. 그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해. 나는 순간 이모 같은 어른이 사회 전반에 존재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 그렇다면 우리는 실수에 있어서 곧바로 욕이 날아오는 대신 ‘뭐 그럴 수도 있지’와 같은, 모든 일이 진정되는 마법의 언어를 주로 사용하겠지, 사회초년생인 난 거기에 또 감동을 받고. 언제나처럼 미친 듯이 쏟아지는 고민들에 좀 더 웃으며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책을 출판할 때 옆에서 나를 도와줄 편집자와 교정교열가가 이모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이후 출판될 책은 더 빛날 것이다. 미래를 향한 어렴풋한 기대와 아직은 얼굴 모를 이들을 상상하면서, 나는 이모와의 만남을 떠오르는 생각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나갔다.
만월 이모는 뭐랄까, 이름처럼 달 그 자체이다. 달이라는 존재가 먼 곳에 있어 그 존재를 잠시 잊어버리더라도, 어느 순간 그가 생각나 밤하늘을 내다보면 늘 그곳에 있다. 그곳에 있는 건 이모도 될 수 있고, 이모가 내 마음속에 남긴 여러 가지 이야기도 될 수 있다. 그 달은 속이 꽉 차 상현, 하현보다 더 밝은 빛을 아우른다. 캄캄한 내 앞길을 스스로 한 발씩 디딜 수 있도록, 겁먹지 말라고, 나 여기 있다고. 영원한 보름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