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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사장 Jun 13. 2021

호구 생활을 그만두는 이유

착하게 살자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된다고 부모님에게 귀에 딱지가 생기도록 들으면서 자라왔다. 사필귀정이라는 사자성어를 믿으며 모든 것을 바른 곳으로 돌아갈 것이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어 왔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착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에는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남에게 베풀면서 살고자 했고, 누군가 해야 된다면 그냥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면 이렇게 불리게 된다.


호구

무슨 일을 하던 불평과 불만을 가지지 않고 누군가 힘들고 괴로워할 것이라면 내가 손해를 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살다 보니 어느덧 사람들을 나를 호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내가 조금 귀찮더라도 민폐 끼치지 않고 배려하면서 살았을 뿐이지만 왜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실속을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은 호구라고 생각한다. 착한 사람들이 호구라고 불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 감사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세상


누군가 호의를 베푼다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타인에게서 받게 되는 호의에 대해서 무언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고 의심을 하기 때문에 순수한 호의를 베풀어도 감사의 말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호의가 쌓이고 감사의 마음이 커져 좋은 시너지가 계속 발생해야 하는 것인데 용기 내어 건네 호의가 거절당한다면 굳이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 쓰고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 갈수록 심해지는 개인주의


주변 이웃과 서로 호의를 베풀던 시대는 끝나고 나 혼자 살아남기도 버거운 시대가 되었다. 경제가 불안하고 코로나까지 오고 나니 일단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개인주의가 점점 더 커지게 된 것이다.


거기에 개인주의로 가게 되면서 자기 자신만 신경 쓰게 되어 함께 할 때보다 걱정해야 할 문제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 편해진 생활 속에서 굳이 배려하고 눈치 보던 시절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 배려하면 손해 본다는 착각


개인주의가 심해지면 배려가 사라지게 된다. 배려하기 위해서는 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설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양보할 수 없기에 배려하지 않기 시작했다. 차라리 서로가 손해 보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것이다.


예전에는 어느 정도의 양보가 미덕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소소한 양보마저 손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손해를 조금이라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의 양보도 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은 이용당하기 쉬우며 다 같이 잘살기보다는 나부터 살고 봐야 하는 각박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세상이 바뀌었기에 호구 생활도 이제 그만두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앞으로도 나는 호구의 삶을 살 것 같다. 그래도 언제까지 어리석은 호구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호구가 되기 위해서 어리석은 호구 시절의 반성문을 쓰기로 결심하였다.


단 한 번이라도 호구라고 불린 적이 있다면 부디 이 글을 읽고 타인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인 호구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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