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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경 May 26. 2021

스타벅스와 빽다방 사이

나는 가성비인간이로소이다


우리 회사 사무실은 스타벅스와 빽다방 사이에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다. 그냥 지리적으로 그렇다는 뜻이다. 나는 스타벅스보다는 빽다방에 자주 간다. 싸고 용량도 크고 맛도 괜찮은 편이니까. 얼마 전에 어떤 기사였는지 통계자료를 봤다. 밀레니얼들은 선물을 보낼 땐 주로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보내고 본인 음료를 사 먹을 때는 빽다방을 자주 간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리서치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어어, 맞아. 하고 공감했다. 만약 빽다방이 스타벅스만큼 비싸지거나 스타벅스가 빽다방만큼 싸진다면 그 리서치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나는 물건을 살 때 브랜드보다는 가성비를 본다. 가성비를 따지지 않는 인간이 된다는 건 뭐랄까. 여러모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 인생에 자본을 생각하지 않고 물건을 사게 될 날이 올까?(가능성은 로또뿐이다) 가지고 있는 돈에서 최대의 효율과 만족도를 뽑아낼 수 있는 물건을 찾아 구매하는 일은 내게 귀찮음보다는 일종의 놀이와 같다.  최저가로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거든요. 그런데 같은 제품을 더 싸게 사는 것과 필요한 제품 중 가장 싼 제품을 사는 건 아무래도 다른 영역의 문제인 듯하다. 전자는 굿 쇼퍼의 느낌이 나지만 후자는 자칫하면 구질구질해 보일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여름에 입을 치노 팬츠를 사고 싶은데 S사의 A 제품을 파는 사이트 중 쿠폰과 카드 할인을 적용해 가장 싸게 구매할 수 있는 구매처를 찾는 것과 치노 팬츠 중 가장 싼 걸 사는 건 완전히 다른 의미라는 것. 후자는 가성비의 영역이 아니다. 그건 그보다 훨씬 더 아래 층위의 문제다. 물론 한번 쓰고 버릴 제품이나 소모품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옷이나 신발처럼 좁게는 취향을, 넓게는 가치관까지도 내포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싸다는 것 이상의 메리트가 없는 제품만을 구매한다는 건(물론 여기에는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소득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녹아있다) 내가 느끼기엔 조금 문제가 있다. 그 문제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위에서 말했듯이 구질구질해 보인다. 

이 구질구질함에는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남들에게는 물론 자신에게조차 돈 쓰는 게 아까워 쩔쩔매는 부류는(우리는 이것을 구질인간이라고 부르자) 답이 없다. 구질인간은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의 기분조차 개똥같이 만드는 재주꾼들이다. 열심히 발품 팔아가며 쇼핑에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을 한심하고 어리석게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를 알기 위해선 그 사람의 소비 생활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 그저 열심히 쇼핑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어 안달이 난 구질인간을 보면 어쩔 수 없이 화딱지가 난다.(너어는 평생 초특가로 나온 3개 번들 팬티나 입어라.) 



두 번째는 취향 상실. 

이들은 무색무취의 인간일 가능성이 있다. 아무런 취향이 없는 사람은 대체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한 어떤 사람이 수줍게 이런 말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앱등이야. 이 한 마디로 우리는 그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적어도 그에게 삼성페이 짱이지 않냐는 실언은 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소비성향은 누군가를 파악할 때 많은 정보를 준다. 반대로 취향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이들은 무지인간이라고 부르는 게 좋겠군) 그래서 나는 구질인간과는 좀 다른 의미로 무지인간 또한 불편하게 느낀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절대 영혼들이 부딪혀서 만들어내는 공명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와 빽다방 얘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나는 주로 프리퀀시 아이템이 마음에 들거나 받은 기프티콘을 쓸 때 아니면 데이트를 할 때 스타벅스에 간다. 아, 작업할 게 있을 때도. 그저 어디에나 있어서 접근성이 좋고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를 안 주니 마음이 편해서 가는 식이다. 반면에 빽다방은 아무래도 살기 위해 간다. 아주 강렬한 카페인으로 아침잠을 깨워야 할 때. 혹은 점심을 더부룩하게 먹어서 음료로 소화를 촉진시키고자 할 때. 하필이면 사무실이 딱 스타벅스와 빽다방 사이에 있어서 어디가 더 좋다고 말해버리고 나면 다른 쪽에 미안할 것 같으니 공평하게 쓸모에 따라 모두 사랑한다는 얘길 하고 싶다. 그 사이에, 그러니까 사무실과 아주 가까운 쪽에 제3의 카페가 생긴다면? 그 카페가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곳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곳의 단골이 되겠지. 그렇다면 나는 아무래도 가성비인간인 건가. 



© clemon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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