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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경 Aug 17. 2023

2023년아르코문학창작기금선정작: 자라는 자라서

              

   윤하나


   윤하나는 올 초 급성심근경색으로 에크모 시술을 받았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심장 때문에 고생하다 가셨으니 따지고 볼 것도 없이 내력이었다. 심장질환 유병률이 높다는 소견을 받은 건 20여 년 전. 그땐 고작 30대 초반이었으나 윤하나는 의사의 말을 새겨듣고 일 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건강검진을 받고, 쌀 대신 보리와 잡곡을 먹고, 매일 만 보 이상 걸었으며 취미로 수영과 라이딩을 하며 몸소 건강한 삶을 실천했다. 물론 예배도 빠지지 않았다. 독실한 가풍 덕에 윤하나는 태어날 때부터 신앙과 가까웠다. 그녀는 매주 교회에서 한 주간 주의 어린양으로 참되게 살았음을 양심껏 고백했고, 때론 그러지 못했음을 회개했다. 만나는 누구에게나 선한 사람이고자 했으며 침대에 누워 하루 동안 내뱉었던 말들을 복기하며 누군가에게 상처 주진 않았는지, 좀 더 현명하게 굴 순 없었는지 반성한 뒤에야 눈을 감았다. 그녀의 부모가 그러했듯 몸의 안과 밖 모두 건강하고 자애로운 주의 종으로 살아가고자 했다. 그녀를 오래 봐왔던 신도들은 입을 모아 윤하나의 신실함을 높이 칭찬했다. 그녀의 신실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단 하나, 윤하나 자신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윤하나는 자신이 행하는 믿음이 피부색이나 모질, 눈동자의 색처럼 날 때부터 정해지는 어떤 형질과 다름없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자의식을 인식한 순간부터 삶의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있었던 신의 존재에 의구심을 품게 된 건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삶이 지나치게 평온했기 때문이었다. 평균 이상의 안락한 삶. 정서적으로 안정된 가족과 배우자. 건실한 직장과 건강한 육체. 물론 그 모든 것이 신의 귀애를 받아서 누리게 된 것이라 믿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떠오른 질문 하나가 믿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이 풍요의 반석 위에 세워진 믿음이라면?

   윤하나는 궁금했다. 단 한 번의 시련도 거치지 않은, 무결한 믿음이란 과연 진짜일까? 삶이 파탄이 난 뒤에도 여전히 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당신의 뜻에 의심 없이 복종할 수 있을까? ‘이후’의 믿음이야말로 당신이 바라는 진실성 있는 믿음이 아닐까?

   윤하나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 즉, 시련을 은밀히 열망했다. 거대하고 파괴적이며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시련을. 진실로 울며 애원하고 붙들고 마침내 일어서는 경험을 통해 기꺼이 자신의 신실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기만의 냄새를 씻을 수 없는 열망이었고, 그래서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외로운 자기 비애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마침내’라고 해야 좋을까.

   윤하나의 심장이 20여 년 전 예견된 일을 기어코 해내고 말았다. 제 기능을 중지함으로써 그녀의 남모를 열망을 이루어내고 만 것이다.

   윤하나는 커다란 두 손이 가슴을 잡아 벌려 찢어발기는 듯한 격심한 통증을 경험했다. 식사 준비 도중이었다. 버섯을 다듬느라 쥐고 있던 칼을 놓친 윤하나는 도마와 냄비를 요란하게 쓰러뜨리며 바닥에 쓰러지듯이 주저앉았다. 남편 오정규가 소란에 놀라 욕실에서 뛰쳐나왔다가 하얗게 질린 채 엎어져 있는 윤하나를 보고 곧장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는 5분 만에 도착했으나 윤하나는 그사이 의식을 잃었고 병원 앞에서 호흡이 멎었다. 구급대원이 다급히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지만 수술실로 옮겨지는 동안 윤하나의 심장은 요동 없이 잠잠했다.

   그러나 두 시간에 걸친 에크모 시술 끝에 윤하나는 기적처럼 다시 깨어났다. 뭉근한 의식 속에서 윤하나는 빛의 장막을 따라 걸었다. 장막에 손을 뻗어 빛의 결을 만졌다. 따뜻한 물에 손을 담근 듯 나른한 감각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건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운 감각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세상에 나올 때 느꼈던 태초의 감각. 빛의 장막 너머에서 누군가 윤하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부드럽지만 거역할 수 없이 완강한 힘이었다. 윤하나의 몸이 장막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그 순간, 장막이 걷히며 시야가 트였다.

   깨어난 윤하나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두 손을 맞잡은 채로 침대맡에 서서 기도하는 오정규의 모습이었다. 윤하나는 오정규의 얼굴에 방금 자신이 걷어 올린 환희의 빛이 스미는 순간을 보았다. 앞으로 생이 얼마나 남았든지 간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당신 심장이 멈췄었어.

   오정규의 목소리는 완전히 쉬어 있었다. 윤하나는 오정규를 안심시키기 위해 미소를 지으려 애썼다. 뜨거운 것이 눈시울과 목구멍에 차올랐다.

   잠시 뒤 수술을 집도한 백 교수가 윤하나의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내려왔다. 그는 에크모의 역할을 설명한 뒤 다 좋네요, 하고 병실을 나서려다가 몸을 돌려 유난히 까다로운 수술이었다고 덧붙였다. 현역으로 그런 수술을 또 하라고 하면 정중히 사양하고 싶다고도 했다. 알아 달라기보단 알고 있으라는 투에 가까웠다. 오정규는 거듭 감사하며 병실 밖까지 그를 배웅했다. 병실에 홀로 남겨진 윤하나는 대퇴부에 박힌 거대한 관을 통해 순환하는 검붉은 피와 심장 대신 피를 데우고 산소를 주입하는 에크모를 경이로운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그 투명한 큐브 형태의 기계를 보는 순간 마른 입술 사이로 절로 아멘이 새어 나왔다. 신성(神性)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전능한 신의 또 다른 형상이었다. 윤하나는 그걸 알아볼 수 있었다.

   오, 하느님 아버지…….

   오정규가 다시 병실로 돌아왔을 때 윤하나는 울고 있었다. 뜨겁게, 뜨겁게. 오정규는 그 눈물이 생리적인 눈물이 아님을 알아차리고는 윤하나의 손을 붙잡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두 달 뒤 윤하나는 에크모를 떼고 퇴원 절차를 밟았다. 심장이 멈춘 채로 실려 들어온 병원 문턱을 제 발로 걸어 나가게 된 것이다. 퇴원 당일 윤하나와 오정규 부부는 감사의 뜻을 담아 백 교수에게 아이스박스를 건넸다. 그런 걸 함부로 주고받는 시대가 지났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래야만 했다. 아이스박스에 든 것은 오정규가 키운 것 중 가장 크고 좋은 것이었다. 매일 새벽 양어장을 뒤지고 또 뒤져서 고른 놈이었다. 거듭 손사래 치는 백 교수에게 반강제로 아이스박스를 떠넘기고서야 그들 부부는 후련한 얼굴로 병원을 나섰다.

   윤하나는 청명한 가을 햇살을 온몸으로 담뿍 받으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녀는 이제 세상의 이치에 그 어떤 의구심도 느끼지 않았다. 모든 것은 그분의 뜻이자 그분의 의지였다. 윤하나는 창세기의 유명한 구절을 속으로 되뇌며 힘차게 발을 뻗었다.


   아브라함아,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백종환


   가끔 그런 이들이 있다. 마음이랍시고 처치 곤란한 현물을 덥석 안겨주는 이들이. 그들이 내미는 것들은 대체로 상대의 필요는 고려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이 얼마나 무례하고 이기적인지. 그들은 그러한 행위가 때에 따라서는 폭력이 될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는 거겠지. 그들에게 상식이란 뭘까. 백종환은 아이스박스를 든 채 솟구치는 짜증을 애써 억눌렀다. 와중에 아이스박스는 꽤 묵직하기까지 했다.

   요즘 기술이 좋아서 자연산이나 별반 다를 게 없어요.

   에크모 시술을 한 여자의 남편. 그 덩치 크고 거무죽죽한 남자는 끝내 무례했다.

   에크모, 그놈의 에크모. 기술이 너무 좋아졌어.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급성심근경색의 초기 사망률은 40%를 웃돌았다. 병원에 오지도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3분의 1정도였는데 에크모 도입 이후 생존율이 60%까지 높아졌다. 폐와 심장이 망가진 환자들이 에크모를 마지막 생명줄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에크모는 과학과 기술의 산물이었으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운 좋게 생의 문고리를 잡은 이들은 백종환의 그림자만 보여도 눈가가 젖어 들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떤 보호자들은 무릎을 꿇고 엎드려 흐느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백종환은 자신의 표정을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입을 가리곤 했으나, 언젠가부터는 그런 노력도 하지 않게 되었다. 환자들은 구원에 취해 엎드릴 신상이 필요할 뿐이었다. 신상의 표정 따윈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발치에 엎드린 등이 쌓일 때마다 그는 다른 감정보다 고귀하다고 추앙되는 감정들. 이를테면 이타심, 자애심조차 짜증이나 슬픔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타성에 젖을 수 있는 영역의 감정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감정 따위. 보이지 않는 것들은 과대평가되기 마련이니까. 실체 없음과 허무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들을 백종환은 믿지 않았다.

   결국 살 사람은 살고 죽을 사람은 죽는다. 인간의 기대수명이라는 건 90세가 채 안 된다. 건강수명은 65세 정도. 그러니까 일생의 약 20년 정도는 질병으로 고생하다 간다는 얘기인 셈이다. 거기다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성 질환은 한국인 사망원인의 48%에 육박하고… 특히 심근경색은 재발 위험이 크다. 절반 이상의 환자가 빠르면 6개월 안에 심장 때문에 다시 백종환을 찾아왔다. 가족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탈모가 유전인 것처럼, 약한 심장도 유전된다. 백종환은 얼마간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시간을 벌어줄 때마다 이런 걸 받게 된다면 조만간 창고를 하나 임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백종환은 연구실 한쪽에 아이스박스를 두고 몇 개의 콜을 처리하는 동안 그것의 존재를 완전히 잊었다. 그러다 퇴근할 때가 돼서야 다시금 그것을 떠올렸다. 그것이 생물이라는 사실이 그 존재를 완전히 잊지 못하게 했다. 살아있는 것은 죽기 마련이고, 백종환에게 죽음이란 부패를 의미했다. 그 이상의 의미를 찾는 건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대체 죽음 이후에 뭐가 더 있단 말인가? 사후가 정말 존재한다면 왜들 그렇게 살려고 아등바등 기를 쓸까? 무엇이 두려워서? 사람의 심부를 가르고 다시 덮을 때마다 생의 뒤편엔 아무것도 없다는 확신은 더해졌다. 그 뒤엔 완전한 무(無)의 영역이 펼쳐져 있을 뿐이다.

   백종환은 윤하나의 병실 한편 작은 서랍장 위에 놓여 있던 성경을 떠올렸고 윤하나의 신앙이 통증에 의한 공포로부터 발원했을 거라고 멋대로 추측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된 통증의 역사. 핏속에 각인된 죽음의 공포와 무력감이 신을 부르고 끝내 순종하게 만들었을 거라고. 허나… 그들의 표현에 따라 전능에 가까운 건, 죽은 몸에 다시 피를 돌게 한 건 역시 과학이 아닌가? 백종환은 불확실한 믿음과 소망에 기원한 종교는 복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기적을 행할 수 있는가? Yes. 실존하는가? Yes. 그렇다면 에크모야말로 신이라 불려야 마땅했다.

   백종환은 아이스박스 뚜껑을 열어 보았다. 연구실에서 생물이 썩어가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백종환은 불결을 견디지 못했다. 깔끔하다고 정평이 난 그의 수술 역시 불결한 것―종양, 고름, 혈전 같은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온전함에 대한 거의 병적일 정도의 집착으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코끝에 뭉근한 물비린내가 스쳤다. 백종환은 행여 비린내가 몸에 달라붙을세라 머리를 살짝 뒤로 젖혔다. 그 안에는 30cm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거대한 자라가 머리를 껍질에 숨긴 채 바짝 웅크리고 있었다.

   아하. 자기랑 꼭 닮은 걸 주고 가셨군.

   전역 후 보신을 해준답시고 모친이 달여온 용봉탕을 먹고 밤낮으로 신트림과 구역질에 시달렸던 그는 오래 잊고 있던 불쾌감을 떠올리고는 인상을 구겼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창문을 열고 박스째 집어 던져버리고 싶었다. 자라라니. 그것은 차라리 삶을 향한 괴이한 집착의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급격한 피로감에 백종환은 눈 앞머리를 꾸욱 눌렀다. 그는 서성이며 박스 처리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내 휴게실로 향했다. 그곳엔 늘 두엇의 레지던트들이 모여 있었다. 백종환이 휴게실에 들어서자 늘어져 있던 레지던트들이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백종환은 테이블 위에 박스를 내려놨다.

   제일 필요한 놈이 가져가라.

   그 말을 남기고 백종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털었다. 속이 다 후련했다. 백종환은 손을 코에 가져다 대고 킁킁거린 뒤 개수대에서 오래도록 손을 씻었다.      



   김두리


   휴게실에 남아 있던 3명의 레지던트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씩 번갈아 본 뒤 조심스레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예상치 못한 놈의 위용을 확인하고선 저마다 탄성을 지른 뒤 그것을 예의껏 서로에게 양보했다. 몸에 좋은 건 알겠는데, 어쨌든 생물은 껄끄럽다는 데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커도 너무 컸으므로. 결국 백 교수의 말대로 제일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자는데 의견이 모였다. 자라는 결혼을 3개월 앞둔 김두리에게 낙점되었다.

   정력에 그렇게 좋다더라.

   동기가 상스럽게 손을 움직였고 모두가 기력 없이 웃었다.

   근데 정력이 뭐야?

   있어 그런 게, 이 불쌍한 마법사 새끼야.

   동기들이 시시덕거리는 사이 김두리는 손가락 끝으로 자라 껍데기를 톡, 톡 건드렸다.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죽었나? 이걸 어떻게 하나. 건강원에 갖다주면 알아서 달여주나? 백 교수 이 사이코 같은 새끼. 줘도 꼭 처치 곤란한걸.

   일단은 퇴근이 우선이었다. 당번을 바꾼 덕분에 갑자기 생긴 꿀 같은 휴식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특히나 약혼자인 이현정이 모르는 휴무는 귀했다. 김두리는 박유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가도 돼?

   빠르게 답신이 왔다.

   마침 오늘 집 청소함. 밀린 빨래도 함. 입고 있던 속옷까지 죄다.      


   현관이 열리자마자 두 사람은 뒤엉켰다.

   자기한테서 소독약 냄새나. 박유나가 말했다. 김두리는 박유나의 헐렁한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작고 말캉한 가슴이 저항 없이 손에 착 감겨 들어왔다. 방문 너머로 맹렬하게 덜그럭거리며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가 들렸다.

   진짜 다 빨았어? 싹 다?

   박유나가 그 질문이 우습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 두 사람은 세탁기 앞에 나란히 앉아 요플레를 까먹었다.

   먹고 또 먹어. 그거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야.

   뭐야. 폐기 처리하려고 불렀구만.

   많이 사놨는데 안 오니까 그렇지.

   안 오니까, 라는 말은 아무리 씩씩하게 발음해도 쓸쓸해지는 감이 있었다. 그것을 둘 다 느꼈다. 박유나는 계속 요플레를 먹는 척했고 김두리는 서둘러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을 씻어 재활용 박스에 던져 넣었다. 다시 옆에 앉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있는 것을 없는 척할 때마다 찾아오는 어떤 낭패감은 아무래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종류의 것이었다. 김두리는 냉장고에 머리를 기대고 삐뚤게 서서 집 안을 둘러봤다. 방 하나, 부엌 겸 거실, 세탁기가 겨우 들어가는 다용도실과 욕조 없는 욕실. 이 정도면 둘이 살기 딱 좋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준비는 잘 돼가?

   이쪽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세탁기에게 거는 말인 양 박유나가 말했다. 그래서 김두리는 기꺼이 세탁기가 되기로 했다. 눈을 감고 몸 안에서 몰아치는 거센 진동을 느꼈다. 웅웅. 웅…. 그러다 불쑥 도출된 세탁기다운 말.

   잘될 것도, 안될 것도 없지.

   가끔 요플레 먹으러 와.

   넌 더 좋은 데로 가.

   한때 함께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에 대해 얘기하던 사람에게 해선 안 될 말이었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박유나는 고개를 숙였고 김두리는 옷을 꿰입었다. 인사도 없이 집을 나섰다.

   김두리도 한때는 몸과 마음을 합체시킬 대상을 찾아 결혼하고야 마는 사람들을, 그들의 삶을 동경한 적도 있었다. 삶을 두 번쯤 살 수 있다면 한 번은 그렇게 살아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김두리는 거울 앞에서 그러게 왜 진심이고 그래, 따위의 말을 연습하는 남자였다. 고작 사랑 때문에 지난하게 살기엔 가고 싶은 곳이 멀었다. 그런 점에서 이현정과는 대화가 잘 통했다. 맞선을 본 그날, 이현정은 연애를 전제로 결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개원 얘길 꺼낸 것은 두 번째 만남 때였다. 이현정은 김두리가 의사인 것보다, 김두리의 집안이 의사 집안인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솔직한 여자였다. 멀리 갈 수 있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김두리는 결국 연습한 말을 꺼내야 했다. 그러나 박유나는 왜 진심이고 그래, 따위의 말을 듣고도 김두리 곁에 남았다. 그의 곁에 남는 게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라고 믿기로 한 사람처럼.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너는 대체 어디까지 감당할 작정일까. 김두리는 가끔 박유나가 두려웠다.

   집까지 어떻게 운전해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와중에도 자라가 죽을까 봐 김두리는 아이스박스를 자주 돌아봤다. 뒷좌석에서 이따금 뽀드득하고 스티로폼을 긁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꼭 나 아직 여기 있다고, 잊지 말아 달라고 하는 것처럼 들렸다.


   김두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욕조에 자라를 풀었다. 놈은 여전히 얼굴을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정이라도 들면 그게 더 곤란하니까. 김두리는 차마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겨우 요플레나 먹으러 오라고 하던 박유나의 등을, 정다우나 척박한 옛 연인의 집을 떠올렸다. 조금 전의 일인데도 한참 전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다음 대사를 연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다 김두리는 소파에서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리고 얼마 뒤 연락도 없이 찾아온 이현정이 욕실에 갔다가 자라를 보고 기함을 토하는 바람에 토막잠에서 깨어났다. 김두리는 비몽사몽간에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했다.

   우리 엄마나 고아줄까?

   그새 자라의 효능을 검색해 본 이현정이 말했다.

   혈행 개선에 좋다네. 칼슘도 많고.

   김두리는 고민할 여지도 없이 동의했다. 과연 자라 같은 걸 먹을까 싶은 그 여자. 어딘가 맹금류를 닮은 장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김두리의 표정을 읽었는지 이현정이 우리 엄마 그런 거 잘 먹어, 하고 말을 덧붙였다. 이현정은 핸드폰을 빠르게 두드리며 집 앞에서 저녁 장을 봐왔다는 투로 말했다.

   오늘 신혼집으로 세탁기 시켰어. 건조기랑 세트로. 그냥 내 맘에 드는 걸로 샀는데 괜찮지?

   김두리는 끄덕였다.

   세탁기는 그냥 세탁기니까.      



   이현정


   여태까지 살면서 감이 좋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그러니까 이건 감이 없는 사람조차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질질 흘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알기 쉬워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알기 쉬운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언제까지 모른 척해야 할까.

   하늘은 맑고 눈은 부시고 기분은 형언할 수 없이 뒤틀린 채로 이현정은 지하 주차장 입구 앞에 서서 김두리의 오피스텔을 올려다봤다. 카메라라도 달아야 하나.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다. 이현정은 손등으로 뺨의 열기를 눌러가며 천천히 담배를 피운 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혼테크라 불러도 할 말 없지만, 결혼은 결혼이었다. 남편과 아내가 될 사람으로서 서로 맡은 바 책무를 이행할 의무가 있었다. 여차하면 계약서를 무기로 쓸 수도 있다. 결혼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각도에 따라서는 계약 관계라 볼 수도 있는 것은 바로 그 계약서 때문이었다. 이현정과 김두리 사이엔 일반적인 혼전계약서와는 조금 다른 양식의 계약서가 존재했다. 이현정은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문의 짧은 구절처럼 자신이 지불해야 할 금액을 떠올렸다. 물건에 정해진 값을 지불하면 정당하게 소유권을 갖게 되듯 관계에서도 그 룰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마땅했다. 그 당연한 사실을 구태여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런데 말을 하지 않으면 도통 알아듣질 못하는 것 같으니 이를 어쩐다. 이현정은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핸들을 두드렸다. 유책 사유 만들지 않기. 김두리가 벌써 조항을 잊어버린 걸까. 아니면 애초에 지킬 마음 따윈 없었나. 감히?

   조만간 뭔 일이 터질 것 같아. 그런 예감이 들어. 넌 뭘 좀 아니?

   헐겁게 닫아둔 아이스박스는 조수석의 안전띠에 단단히 매인 채 묵묵했다. 이현정은 혼자 있을 때면 말을 참기가 어려웠다. 연극을 하던 때의 습관이었다. 사물에 말을 거는 것. 그리고 답하는 것.

   그 새끼 바람피워요. 내가 다 봤어.

   이현정은 고개를 작게 까닥거리며 불안에 질린 새된 아이의 목소리를 냈다.

   의사들은 다 그래?

   그렇게 말하고 이현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도리질을 친 뒤 빠르게 표정을 수습했다. 너무 공격적이었어. 이해를 갈급하는 톤으로 다시.

   의사들은, 다 그래?

   이제야 만족스러웠다.

   이현정이 진짜 부자들 사이에서 격차를 느낀 건 다름아닌 언어와 어감이었다. 그건 숫자와 달리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타고난 헤리티지니까.


   아빠가 차근차근 말아먹은 사업을 엄마가 단숨에 일으킨 건 고작 십 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다. 처박혔던 삶의 질이 고공 상승했다. 좋은 집, 좋은 차. 하지만 명품 옷과 가방이 모든 걸 가려주진 못했다. 싸구려 섬유유연제가 익숙한, 코로 맡을 수 있는 세계의 지층이란 얼마나 좁고 얕은지. 다행히 이현정은 습득이 빠른 편이었다. 역시 연극이 도움이 되었다. 이현정은 사교모임이라면 규모에 상관없이 참석해서 그들의 관심사를 시작으로 정계와 연예계의 추잡한 뒷소문을 익혔다. 사교계는 전혀 다른 어법과 문법이 존재하는 세계였다. 그들은 추잡한 이야길 추잡하지 않게 했고 불쾌한 상황에서조차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감정을 음미하는가 하면, 손가락 하나로 누군가의 인생을 갱생 불가의 나락으로 밀어 넣기도 했다. 힘으로부터 파생된 애티튜드였다. 이현정은 그것을 훔칠 순 없었으나 간신히 따라 할 수는 있었다. 근래에 와서는 무신경한 성골 몇을 속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이현정은 그 이상의 것을 원했다. 가능하다면 자신조차 속이고 싶었다. 그러려면 진짜가 필요했다.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 가지고 태어나 쥘 필요조차 없는 것. 헤리티지에 가까운 것. 그래, 예를 들면 의사 남편 같은. 하지만 진짜여야 했다. 운 좋게 타고난 공부 머리로 가난한 집안의 기대주로 부상하는,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닌 ‘의사 집안에서 나고 자란 진짜 의사’. 그게 이현정이 생각하는 헤리티지에 부합했다. ‘의사 남편’은 이현정이 가장 가지고 싶어 한 관형사였다.


   김두리는 조건에 딱 맞는 남자였다.

   이현정은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쉽게 김두리를 찾아냈다. 김두리2, 김두리3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거였다. 이현정은 가벼운 마음으로 김두리에게 접근했다. 말이 안 통하면 어쩌나 했는데 김두리의 모친 쪽이 감사하게도 비즈니스에 눈이 밝았다. 골프 클럽에서 김두리의 모친과 안면을 튼 이현정의 모친이 직접 선을 주선했다.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김두리의 모친이 단도직입적으로 수도권 내 개원을 요구했을 때 이현정은 눈꺼풀이 떨릴 만큼 강렬한 짜릿함을 느꼈다. 원하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란 얼마나 건강하고 이상적인가. 이현정은 욕망을 감추지 않는 이들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동시에 경멸감도 느꼈지만. 그건 동류에게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오래전부터 이해했다. 한 꺼풀 벗겨내면 결국 거기에 있는 건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 한 꺼풀이 더럽게 비싸서 문제지만.

   이현정이 미처 계산하지 못했던 건 김두리의 마음에 자신의 자리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수록 그를 갖고 싶다는 기이한 욕망이었다. 사랑은 아니다. 이름을 붙인다면 차라리 완전한 쟁취에 가까웠다.

   이현정은 김두리의 마음과 몸이 어디를 떠다니든 약속된 제자리로 찾아와 주기만 한다면 뭐가 어찌 됐든 상관없었다. 아직은 용서할, 아니 모른 척해줄 용의가 있었다. 신분에 따라 짊어져야 하는 불안과 고통의 수위와 성격이 정해져 있는 거라면, 그쯤이야 기꺼이 감내할 수 있었다.

   오기만 해, 길 잃어버리지 말고. 그래야 개원하지. 자기야, 그래야 개원하지.

   김두리의 몸에서 나던 냄새. 싸구려 섬유유연제 냄새. 이현정은 의심보다 아직도 그 옅은 냄새를 감지하는 자신의 코에 신물이 났다.

   아직 멀었어. 액셀을 밟는 이현정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육영아


   육영아는 딸이 가져온 자라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토록 큰 자라는, 아니 생물 자라는 생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네 다리와 눈,코,입이 달려있는 걸 보니 붕어랑은 달리 껄끄러웠다. 진짜 동물이잖아. 괜히 살아있는 걸 봤다고 생각했고, 무턱대고 이런 걸 넙죽 받아온 딸이 낯설었다.

   저 애는 내가 낳았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아니, 저 애가 나를 모르는 거겠지.

   육영아는 무지를 자처하는 딸의 무신경함이 때론 야속하기도 때론 편하기도 했다. 가족이라도 적당히 덮어놓고 모른 채 살아야 원만하게 아껴줄 수 있는 법이었다.

   이걸 어디서 받았다고?

   병원에서. 교수가 보호자한테 받은 걸 줬다나 봐.

   김 서방 어지간히 미움 사는 거 아니니? 이렇게 번거로운걸.

   이현정은 현관에서 더 들어오지도 않고 그럼 뭐, 다시 갖다줘? 하고 물었다. 육영아는 손사래를 쳤다.

   거기 그냥 놔둬. 너희 할머니나 고아 드리게.

   번거롭긴 해도 뭐가 들어갔는지도 모르는 시판 즙이나 한약보다야 낫겠지 싶었다. 마침 사무실에 나가려던 참이었고, 오며 가며 건강원을 하나쯤 본 것도 같았다.      


   육영아는 자라를 들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조수석에 아이스박스를 고정시킨 뒤 시동을 걸었다. 전조등이 켜지며 맞은편을 비췄을 때, 육영아는 갑자기 나타난 실루엣에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여자였다. 소송을 건 여자. 여자는 잊을만하면 나타나 유령처럼 육영아의 주변을 서성이곤 했다. 주로 사무실 주변에서 작은 피켓을 들고 몇 시간씩 서 있다가 사라지곤 했는데 사적인 영역까지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육영아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빠르게 여자의 행색을 살폈다. 여태 피켓에 쓰인 글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쳐 두 손을 살폈지만 하필 오늘은 빈손이었다. 아니, 빈손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었다. 여자가 두 손을 후드 주머니에 푹 찔러 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거기서 무엇을 꺼내 든다고 해도 육영아는 겁먹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육영아는 경고의 뜻으로 클랙슨을 길게 눌렀다. 여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거기 일부러 세워둔 허수아비 같았다.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걸까. 사무실에서부터 미행을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뒤늦게 소름이 돋았다. 외부인이 이렇게 쉽게 들어오다니. 관리사무실에 따져 물어 마땅했다. 입주민이 외부인으로부터 안전할 권리를 지나치게 요구해도 좋을 만큼 말도 안 되는 금액이 다달이 관리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육영아는 끈질기게 마주쳐 오는 시선을 무시하며 여자를 지나쳐 갔다.


   소송이 들어온 건 8개월 전쯤이었다.

   벌금과 합의금을 배상하는 것으로 변호사가 알아서 처리한 일이었다. 육영아는 재판 동안 여자를 딱 한 번 봤다. 작고 시들한 여자였다. 돈이 시급했는지 합의는 원만했으나 여자는 육영아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했다. 잡음이 나오기 시작한 브랜드를 계속 안고 갈 순 없는 노릇이어서 정리를 결행하기로 한 이상 이쪽도 손해가 막심했다. 배상은 그만하면 충분했다. 새로운 프랜차이즈 아이템을 기획하고 브랜딩을 준비하는 동안, 육영아의 머릿속에서 소송이라는 두 글자와 여자는 금세 잊혔다.

   론칭한 브랜드는 초반부터 성과가 좋았다. 하루에도 수십 건 입점 문의가 쏟아졌다. 예상된 일이었다. 육영아에겐 시장을 읽는 눈이 있었다. 남편에겐 없는 눈이었다. 육영아는 성공은 절대 정직의 보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남편을 통해 배웠다. 성공은 정직한 사람에게 오는 게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 기회라는 이름을 빌려 쟁취하는 거였다. 남편은 망할 때까지 그걸 몰랐다. 사업을 한다는 사람이 자신의 몫에 순응했다. 육영아는 망해가는 남편의 사업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자신의 몫에 순응한다는 것은 교묘한 방식의 자기 조롱이 아닐까 하고. 남편은 잘살고 싶다고 했고 육영아는 한국에서 잘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자신이 아는 의미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지 반문해보아야 했다. 육영아도 다만 잘살아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남편과 정확히 반대로 행동했다.

   ‘대박 아이템’, ‘매출 고공 행진’, ‘입점 문의 마감’과 같은 카피들은 언제나 잘 먹혔다. 한 번도 사업을 해본 적 없는, 은퇴자금을 싸매고 다니는 욕심 많은 쫄보들이 제일 상대하기 쉬웠다. 그들을 혹하게 하는 건 기존 매장들의 실매출이었다. 소형 매장에서 월 1억 매출이 가능하다고 선전하는 것보다 실매출 영수증을 보여주는 게 훨씬 잘 먹혔다. 그러니까, 매출을 살짝 뻥튀기하는 건 마케팅 요소인 셈이었다. 1억짜리 영수증을 믿고 대박 신화의 꿈을 품은 신규 가맹점이 줄줄이 오픈했다. 점주들은 오픈빨로 몇 개월 단꿈에 젖어있다가 천천히 쇠락해갔다. 비슷한 가게들이 생겨나면 그때부터 본 싸움이었으나 애초에 본사는 간판갈이 하느라 타이틀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 3년 어르고 달래다가 브랜드 단물이 빠질 즈음 새 브랜드를 론칭하면서 발을 빼면 그만이었다. 그래도 공식은 언제나 먹혔다.

   재판 이후로 잠잠했던 여자가 나타난 것은 두 달 전 새 브랜드를 론칭한 무렵이었다. 어떻게 알고 오는지 창업박람회며 팝업 컨설팅 행사마다 다 따라붙었다. 행사가 없을 땐 사무실 앞에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육영아는 여자가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신호가 끝나는 길에 시장이 보였다. 건강원의 간판도 보였다. 짧은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육영아는 문득 자라를 풀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아직도 그런 충동에 시달리는 자신이 충분히 젊다고 느껴졌다. 기분이 나아진 육영아는 흥얼거리며 박스의 뚜껑을 열었다. 자라는 문진처럼 박스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얘, 좀 나와 봐.

   등껍질을 툭툭 건드려도 미동이 없었다. 자라라는 생물이 원체 겁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면 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자라에 눈을 팔고 있는 사이 신호가 바뀌었다. 육영아는 다급히 액셀을 밟았다. 그 바람에 박스가 엎어졌고, 툭 하고 묵직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육영아는 초조한 마음으로 공용주차장을 찾아 시장 근처를 선회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발끝에서 끔찍한 통증이 전해졌다. 육영아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흘러나왔다. 자라가 엄지발가락을 물고 있었다. 몸통에서 빠져나온 자라의 머리는 웬만한 개불만 했다. 뾰족한 코와 옹이 같은 눈. 그 작은 눈과 시선이 뒤엉켰다. 육영아는 발가락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자라를 떼어내느라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사투를 벌였다. 차가 들썩일 정도였다. 안 되겠다 싶어 결국 도망치듯 차에서 내리자 딸려 나온 자라가 그제야 발가락을 뱉어냈다. 육영아는 자라가 육지에서도 그렇게 빠른 생물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자라는 네 발로 땅을 밀며 접으며 가르며 달렸고 빠르게 육영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자라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육영아는 쪼그리고 앉아 발을 감싸 쥐며 흐느꼈다. 깨진 발톱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정규


   양어장에 앉아 눈을 감고 있으면 자박자박 물장구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오정규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새벽잠에서 깨는 시간이 좋았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양어장 근방 2km 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버려진 농장과 지붕이 날아간 헛간, 이름도 없는 실개천이 전부였다.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이는 자라를 사러 오는 업자들뿐이었다. 오정규는 값을 흥정하지 않는 업자들에게만 자라를 팔았다. kg당 오만 원. 트럭째 사가도 한 푼 깎아주지 않았다. 덤도 없었다. kg당 딱 오만 원을 받았다. 업자들은 지독하다고 혀를 내두르면서도 거래를 끊지 못했다. 오정규의 자라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다른 양식장의 자라와 비교해보면 누구나 한눈에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양어장을 인수하기 전까지 오정규는 자동차 휠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오래 일했다. 일은 할 만했고 보람도 있었지만, 사람의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소리 내어 웃고, 사람의 눈에서 기대를 읽고 읽히는 게 점차 힘들다고 여겨졌다. 모아둔 돈을 헤아리며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할 무렵 오정규는 사촌으로부터 연락 한 통을 받았다. 여덟 살 위의 그와는 종종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는 사이였다. 사촌은 미국지사로 발령 난 아들을 따라 이주를 가게 되었으니 가기 전에 밥이나 먹자며 날을 잡았다.

   사촌은 벌써 미국물을 먹은 사람처럼 오정규를 보자마자 헬로, 하고 혀를 꼬았다. 두 사람은 횟집에서 전복이 들어간 미역국을 먹었다. 소주도 한 병 시켰다. 사촌은 술잔을 빠르게 비우며 미국 생활에 대한 기대와 염려를 두서없이 털어놓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돌이라도 씹은 사람처럼 인상을 구기더니 운영하던 양어장을 정리해야 하는데 팔기도 맡기기도 어려워 대단히 골치를 앓고 있다고 했다. 사촌은 혹시 주변에 맡아줄 만한 사람이 없는지 물었다.

   일은 좀 힘들어. 손도 많이 가고. 근데 할 만해. 돈도 되고, 자라 새끼들도 귀엽고.

   오정규는 잠시 고민하다가 제가 해봐도 될까요, 했다. 사촌은 놀란 듯 잠시 눈썹을 치켜떴다가 자라를 먹어봤느냐고 물었다. 오정규는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도 먹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양어장을 하려면 자라를 꼭 먹어야 됩니까?

   사촌은 오정규의 어깨를 때리며 껄껄 웃다가 사레가 들려 피를 토할 것 같은 기침을 했다.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사촌이 말했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말투가 어째 그때랑 똑같냐. 하고 싶지 않습니다! 먹고 싶지 않습니다! 너 군 생활 어디서 했었지?

   GOP요.

   사촌이 알만하다는 듯이 끄덕였다.

   뭐어, 잘해봐. 너라면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사촌을 따라간 양어장은 허허벌판 사이에 겁 많은 동물의 등갑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다. 자라의 숨이 기포가 되어 터지는 소리와 절벅거림, 사촌과 오정규의 발소리만이 그곳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리였다. 사촌이 흐뭇한 얼굴로 그를 돌아봤다.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오정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정규는 비로소 있어야 할 곳에 당도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양어장은 이미 완벽한 생육 환경을 갖춘 하나의 생태계였다. 이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자신의 무지밖에 없다는 사실은 오정규에게 긴장감과 고양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오정규는 사촌이 모은 자료들과 일지를 보며 밤낮없이 공부에 매달렸다. 생물을, 그것도 대량으로 키우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손이 안 가는 일이 없었다. 어떤 앎은 삶 그 자체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걸 오정규는 자라를 키우며 알게 되었다. 작업복은 언제나 땀과 비린내에 절어있었지만 뜨거운 물로 샤워할 때면 오정규는 이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노을이 질 무렵이면 수면 위에 고여있는 황금빛 햇살과 자라가 햇살을 문지르며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면 자신이 얼마나 사람과 도시를 떠나고 싶어 했는지 매 순간 느낄 수 있었다.     

   양어장에 향어를 풀자 손바닥만한 자라들이 먹잇감을 향해 우글우글 몰려들었다. 격렬한 첨벙거림이 한동안 이어졌다. 토종자라는 순한 외모와 달리 포악한 성정과 강인한 턱힘을 지닌 스내퍼였다. 재빠른 소형어부터 사나운 육식어종까지 자라 앞에선 한낱 간식거리에 불과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잔혹한 습성과 끈질긴 생명력. 본래는 겁이 많아 천적이 나타나면 물속으로 숨어버리곤 한다지만 천적이 없는 양어장에서 오정규의 자라들은 한계를 모르는 사냥꾼으로 자라났다. 오정규는 누구에게든 자라에 대해 설명할 기회가 생기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 녀석들 굉장히 끈질겨요. 생명력 말입니다. 1, 2년쯤은 아무것도 안 먹고도 버텨요. 빙하기에서도 살아남은 녀석들이거든요. 그대로 자라게 두면 100년도 산답니다. 사람들이 뭐에 좋다, 뭐에 좋다, 하면서 자꾸 잡아먹어서 그렇지 자라는 사실 자라는 걸 제일 잘하는 놈들이에요.

   그건 자라의 원초적인 생명력에 대한 놀라움으로부터 비롯된 말이었으나 사람들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등갑류는 원래 다 그렇잖아요, 하는 식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100년이나요, 하기도 했지만 놀라움은 곧 보신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장수의 상징인 거북이와 달리 보양식이라는 인식이 큰 탓에 먹히는 것 외에 다른 결말을 생각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자라는 그냥 자라인데.

   그럼 100년 후엔 어떻게 돼요? 계속 자라요?

   그렇게 물어온 건 윤하나가 처음이었다.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방생할 자라를 구입하기 위해 양어장을 찾은 그녀는 오정규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 순간 오정규는 오래전 양어장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안도감과는 또 다른 친숙한 감각이 물결처럼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이후 오정규는 그때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여러 번 상기해 보려 노력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저 100년 후 자라의 생을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그녀의 얼굴만이 낙인처럼 선명히 남았다.

   윤하나와 살을 맞대고 산 20여 년은 넘볼 수 없는 시간을 자꾸만 욕심내게 만드는 세월이었다. 100년이란 어떤 시간일까. 앞으로 딱 40년만 더 버티면 닿을 수 있는 시간. 마음먹는다고 해도 누구나 당도할 수는 없는 시간. 오정규는 그 시간을 버티고 버텨서 윤하나를 만나면 알려주고 싶었다. 자라는 정말로 계속 자라더라고. 지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고 여전히 강한 채로 그렇게, 한 세기를 다 살아내더라고. 그리고 자신 있다는 듯이 다음 세기를 살아갈 기세였노라고.


   오정규는 부화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울고 싶을 때마다 오정규는 부화장에 갔다. 어떤 날은 하루에도 여러 번 부화장을 찾았다. 문을 열자 후텁지근한 열기가 거대한 품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윤하나가 퇴원한 지 4개월 만에 심정지로 다시 병원에 실려 갔을 때도 오정규는 부화장에 있었다. 온도와 습도를 확인하고 막 인큐베이터를 열려던 참에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죄송하지만, 하고 어렵게 운을 떼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오정규는 마침내 그분이 윤하나의 영혼을 거두어 갔음을 짐작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노라고 덧붙은 말에 오정규는 보일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주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따금 어디서부터 그렇게 거대한 감정이 굽이치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이 거기서 행복하다는 걸 알아. 오정규는 이를 악물고 곱씹듯 말했다. 오정규는 신보다도 신에 대한 윤하나의 믿음을 믿었다. 어떤 믿음은 사랑의 형태로 시작되기도 하는 거였다. 오정규는 몸을 떨며 울었다. 얼굴을 감싼 채 막힌 숨을 끊어가며 들이마셨다. 실컷 울고 나면 그래도 얼마간은 나아질 것이다. 그때 부화기 안에서 톡, 하는 소리가 났다. 예정대로라면 이틀 뒤부터 부화가 시작되어야 했다. 톡. 톡톡. 오정규는 고개를 들었다. 성질이 급한 녀석은 언제나 있었다. 예정일보다 빠르게 세상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녀석들이. 오정규는 한쪽 무릎을, 곧 반대쪽 무릎을 세웠다. 인큐베이터 안을 보니 이미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자라 한 마리가 뒤집힌 채로 바둥거리고 있었다.

   힘내. 힘내라.

오정규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녀석은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몸을 뒤집었다. 까맣고 작은 눈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오정규는 젖은 뺨을 문질러 닦았다. 인큐베이터 앞에 붙여둔 달력에 그려진 커다란 동그라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엔 빨간 글씨로 ‘부화’라고 힘주어 적혀 있었다. 오정규는 그걸 다른 단어로 잘못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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