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반에 어떤 남자애가 그 여자애한테 "남자 꼬실라고 저런 옷 입고 다니네"라고 했다며 나한테 왔다.
기분 나빠하니까 사과하라고는 했는데
문득 옷 하나로 남자가 꼬셔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번따룩'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우연히 인스타에 추천 떠서 재미있어서 보는데 딱 달라붙는 티처럼 여성성을 강조하는 옷을 입으면 길거리에서 번호를 따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일단 그 '번따룩'이라는 것을 보아하니 내가 20~22살쯤 여리여리했을 때, 즉 캐주얼과 페미닌을 오갔을 때 입었던 옷 같았다. 그때까지는 노출 있는 옷 부끄러워서 못 입었다. 그냥 좀 그랬다. (순수함으로 이름 꽤 날렸던 시절) 그런데 어느 순간 관능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흑화한 것일 수도.
그래서 이제는 남자 만날 때는.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겠다.
일단 20대 중반에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는 바로 가죽자켓을 샀다. 원래 있었던 게 촌스러운 바람막이랑 대학교 1학년 때 부평 지하상가에서 샀던 낡은 코치자켓밖에 없어서 추위를 막아줄 무언가를 사야 했는데, 당시 나에게 화살을 날려대는 직장상사들에 방패가 되어줄 수 있는 가죽자켓을 선택했다.
너 때문에 내 마음은 갑옷 입고 이젠 내가 맞서줄게 네 화살은 trouble trouble trouble 나를 노렸어 너는 shoot shoot shoot
어쨌든 나는 번따룩을 입고 번호를 따이는 것보다 가죽자켓을 입고 번호를 따는 길을 택하겠다. 번따룩 입고 직장생활 못하겠다. 발가벗고 전장에 나가는 기분이다.
아 물론 주말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근데 확실한 건 그 인스타 주인장도 말해주지만, 변태들이 많이 꼬인다는 거. 그냥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대로 입고 다니는데, 짧은 치마 입고 위에도 딱 달라붙은 거 입고 화장도 힘 좀 준 날에는 평소엔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뜬금없이 말 거는 사람들이 있다. 거리에 잠깐 서서 네이버 지도 보고 있는데 나보다 20살은 많아 보이는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일본 분이세요?"
"아니요~(건성)"
"혹시 뭐 찾아드릴까요?"
"아니요 바로 앞이에요~(건성)"
말을 거는 분위기와 태도에서 불순한 의도가 느껴졌다.
섹슈얼한 매력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니면 확실히 갑자기 존재감이 생기는 기분이 들긴 한다.
오랫동안 독서실에 박혀 햇빛을 보지 못한 수험생이 하루 날 잡고 기분 전환용으로 입고 다닌다면 해방감이 들 것 같긴 하다. 추천한다.
아냐, 아냐 사실은 때려 치고 싶어요 아 알겠어요 나는 사랑이 하고 싶어
그러나 나는 그런 옷을 입었을 때 뭔가 위협을 느끼는지정색하고 다니게 되는 것 같다. (특히 다른 사람과 약속은 없고, 혼자 돌아다닐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