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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가 없는 나로 산다는 것

다른 직업은 잘 모르겠고 일단 나는 그렇다.

by 연하

1. 누가 2024년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가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소통 없이 일 년의 4번의 내신 시험에서 거의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대학생 때 아무 생각 없이 교육대학교 4년을 졸업하고 2년 간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으며 이기심으로 점철된 채 임용고시를 통과하면 선생님이 된다.


2. 선생님의 자격


말 그대로 임용고시를 통과하면 선생님이 될 수 있다. 인격은 딱히 모르겠는데 훌륭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동학대를 하지 않고 학생들 사이의 또는 학생들과의 갈등을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룰 수 있으면 신분 상의 문제는 없는 것 같다.


3. 자아의 상실


학교에서 하라고 하는 교과목을 하나씩 가르친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르치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 공립 초등학교 교사의 목표가 아니다.


수행평가는 해야 할 것이 정해져 있다. 전년도 수행평가를 거의 그대로 한다.


바꿀 수도 있긴 한데, 나는 1년 차이기 때문에 그냥 이 학교 분위기 파악하려고 올해는 기존에 이 학교는 어떤 분위기로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가만히 있었다.


학교 운동장에서도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 안된다고 학년 초에 협의를 했다. 나는 그걸 잊고 있었는데, 우리 반애가 2학기 들어와서 운동장에서 공 가지고 놀면 안 되냐고, 공 가지고 놀고 있었는데 다른 반 애가 안된다고 했다고 했다. 그래서 옆 반에 물어보니 애들이 공 가지고 놀면 싸워서 금지시켰다고 했다. 그거 외에도 안 치우는 애들 있으면 치우라고 하고, 그냥 교과서에 있는 거 가르친다. 옷도 내가 평소에 입는 거 말고 매일 똑같은 거 입고 다니고, 반바지 같은 것도 뭐라고 한다.


그리고 그냥 학부모 상대하는 것도 싫고 애들이랑 같이 있는 것도 싫다. 그냥 계속 갈등 해결하는 거, 싸움 나는 거 보는 것도 지치고 계속 시끄럽게 떠드는 것도 싫고(안 그래도 시끄러운 공간 싫어하는데) 하루의 좋은 시간대를 모두 직장에 쓴다는 것 자체가 싫다.


그리고 내가 얻는 것은 돈이다.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만드는데(행사) 그게 있어야 학교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은 맞다.

근데 너무 귀찮은 것은 맞다.


4. 교사의 사명감


직장인에게 사명감 운운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게

노예들한테, 노동자들에게 우리 공장을 위해 우리 마을을 위해

가치 주입시키고 열심히 일하라고 하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다.


당연히 노예라면 노동자라면

어떻게 하면 주인 눈 피해서 덜 일할까

농땡이 피울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리고 사명감도 선택적인 거라

상대 학생이 누군가에 따라서

학부모가 누군가에 따라서 없던 것도 생기고

있던 것도 없어지는 것이다.


아직도 세뇌하려고 하는 작자들에게는 쌍욕을 박아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세뇌당했던 것도 그 선생님들의 탓도 있겠지만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어느 정도는 멍청하고 선생님 말이라고 다 그대로 따랐던 나의 멍청함도 한몫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반 애들은 그때의 나보다 똑똑한지 자기가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산다. 학교장 허가 체험학습도 20일 다 쓰는 애들도 있고.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올해 안에 연가를 다 쓰도록 하겠다. 그런데 선생님 중에서는 연가 다 안 쓰는 선생님도 있는 게 신기하다. 교사는 연가보상비도 없는데.


5.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정말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경영을 잘하는 관리자라면 사람들의 윤리에 배려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가 노동자로 하여금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노동자 자신의 이득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결론: 자산도 얼마 있지 않은 이상, 유튜브와 인스타의 주제도 제한되고 수익 창출, 겸직도 못하는 이 직업에 안정성과 업무강도가 (타 고수익 직종에 비해) 아주 높은 편이 아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stay 할 이유는 없음. 안정성이라는 것 대신에 자유가 저당 잡힌다는 것으로 보아 딱히 끌리는 조건도 아님. 그러나 육아휴직이 가장 큰 복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듦. but, 이런 직업 환경, 지역 환경에서 결혼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살짝 있긴 함. 어쨌든 육아휴직이 가장 큰 장점이며, (여자 직업으로서는) 업무 강도가 낮은 편도 아니니(계속 말하고 움직여야 하는 귀찮은 직종) 출산메리트를 제외하자면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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