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도쿄 여행

2025.1.10~2025.6.11

by 연하

고독이라는 막다른 골목 끝에서 더는 뒷걸음질 칠 수 없어 택했던 도쿄행. 겨울방학이 시작하자마자, 비행기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 황급히 내 몸을 실어 날랐다. 차가운 공기에 금방이라도 균형을 잃을 것 같은 불안한 몸을 이끌고, 효능이 의심되는 인후통약을 벗 삼아 나흘 동안 최소한의 말만 하며 홀로 걸었다. 압도당할 만큼 거대한 회색빛 고층 건물로 이루어진 서울과 다를 것 없었던 도쿄 시부야와 신주쿠. 비행기에서 지하철로, 지하철에서 지하철로. 그런 것이 답답해 오모테산도에 다다를 때까지 계속 걸었다. 명품가게들이 즐비한 거리를 걸었다. 그러나 이런 거리들은 서울을 그대로 찍어낸 판화인 듯 보일 뿐, 차례대로 다 둘러본 후,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들은 결국 시부야 201에서 봤던 십 대 여자애들을 타깃으로 한 일본풍 옷들 뿐이다.


그 복잡한 거리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파스텔톤의 연분홍, 연노랑의 낮은 주택이 있는 교외지역으로 눈을 돌리니 비로소 호흡을 내뱉을 수 있었다. 가와구치코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아직 눈이 채 녹지 않은 한라산은 아무리 걸어도 닿지 않는다. 로손편의점은 보고 있으면 하늘색과 하얀색, 우유병모양의 어우러짐이 마음을 환하게 해 주니, 나에게 잘 맞는 듯하다. 최소한의 생각과 최소한의 목적만 가지며 계속 걷는다.


마지막 날, 하코네에서는 산악 열차를 타며 기관사가 운전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안내 방송이 나오면, 그 안에 담긴 감정이나 호흡에 귀 기울인다. 열린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기관사를 관찰한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몇 분 후 그다음 여정에 대해 물어봐야 해서 바로 그 기관사에게 길을 물어본다. 그날 밤은 달궈진 온천에서 내 안에 쌓여 세상과 나 사이를 막고 있는 피로와 불순물들을 녹이기로 한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필요 없는 것들이 서서히 빠져나간다. 여행 내내 나를 괴롭혔던 목의 통증이 사라진다. 야외로 나와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깊게 들이쉰다. 어떤 순간을, 무엇을 거쳐왔든 현재만은 온전하게 나의 것이다. 이 장면이 내 눈을, 코를, 피부 안을 완전히 통과하기를 원한다. 나는 평화에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다. 과거는 완전히 분리되어 다른 공간에 존재하고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의 나는 그런 것들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음을 나를 에워싸는 차가운 공기막로 알 수 있다. 몸은 따뜻하고 몸 밖의 공기는 본연의 차가움 그대로이나, 서로의 적당한 거리감이 각자를 치유해 준다. 내 안의 감각들 - 공허함과 절박함 속 가늘게 피어나는 애틋함을 무슨 수로 다시 되풀이할 수 있을까. 마음의 모양은 지금도 꿈틀대며 변화하고 있으니, 먼 훗날 또다시 이곳의 장면을 마주한다 해도, 지금 이 뜨끈한 온천물로 달궈진 몸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겨울밤의 공기가, 내 안에 만들어낸 파동을 한번 더 되풀이하는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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