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Harry

by 연하

스타벅스에서 주문한 케이크를 본다. Happy Birthday Harry


이제 모든 사고가 막혀서 이것 말고는 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간은 돈을 벌 때만 의미가 있는 듯하다. 돈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란 존재가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건 뭘까. 돈이 없는 것의 문제점은 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활기마저 앗아간다는 점인 듯하다. 지금도 앉아서 전기나 종이 따위의 자원을 닳게만 하고, 정작 배출해 내는 것이란 이런 유해한 말들이란 말인가.

아름다운 언어를 뱉어내기엔 아름다운 삶을 살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글을 못쓴다. 안타깝게 생각해야 하는 지점일까. 어쨌든 오늘은 나의 스물네 번째 생일. 대학을 졸업한 지 3년이 지났고, 아무도 내 생일을 축하해주지 않는다. 카톡의 생일알람은 꺼놓았다. 오늘 내가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직장도 없으니 내일 아침에 날 찾을 사람도 없다. 아르바이트 사장은 결국 튀었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뽑겠지. 이 현대사회라는 건 카톡 프로필을 바꾸지 않으면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업데이트란에 빨간불이 깜빡깜빡. 생존신고를 한다. sos신호 같다는 생각을 하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나는 지금 회기역 바로 앞의 스타벅스에 왔다. 이곳에서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다.


케이크 문구는 happy birthday harry다. 그래서 방금 정했다. 이 글은 해리라는 필명으로 출간할 것이다.

한 달 설렁설렁 일하고 월급으로 받은 44만 원 중 30만 원으로 애쉬 바이올렛으로 염색을 했다. “개성 있다고 다 예쁜 건 아니야.” 그 목소리가 맴돌았다. 10년이나 넘은 이야기인데, 아직도 그건 매일 밤마다 나를 괴롭힌다.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항상 혼자였다. 처음부터 내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공부였으니, 결국 공부만 하게 되는 거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세상과는 항상 뭔가 어긋나 있었다. 아니면 애초에 세상이라는 것은 무언가 어긋남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속성이 있는 건가? 하긴 그 많은 옷들도 안 맞는 게 많은데 한 가지 종류밖에 없는 세상이 나에게 맞는 게 이상하다. 어쨌든 지난 삼 년 동안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아무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 갑자기 분노에 차올랐다. 그래서 이 글을 마치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쏟아내기로 했다. 나는 지금부터 남들에게 목격되지 않은 발견되지 않은, 폭력으로 점철되었지만 가해자는 찾을 수 없는, 나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내가 글재주가 있었다면 이렇게 삼 년씩이나 교육과정을 외우고 있을 것이 아니라, 애초에 누군가에게 발탁되어 키워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문학이론이니, 구조라느니 그런 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최대한 내가 느꼈던 것을 손상 없이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할 뿐이다.


정치인들은 자살하기 전에 진실을 말한다.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너무 과도하게 수치심을 느끼고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는 듯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없는 자는 그 어떤 죄책감도, 수치심도 느끼지 못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갑자기 이게 떠올랐다. 쓰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이 수험생활의 좋았던 점은 어떤 색깔로 머리를 염색하든, 어떤 옷을 입고 공부를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나에게 뭐라고 할 자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끔 사람들은 나를 두려워한다. 정신질환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무슨 일을 당할까 봐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 생활로 얻는 것은 외면당해도 상처받지 않는 것 정도다. 물고기는 아가미로 숨을 쉬고 사람은 코로 숨을 쉰다. 나를 숨 쉬게 하는 건 뭘까 생각해 봤다. 이 세상은 바로 그 지점을 막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사인은 질식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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