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광화문 교보문고를 갔다. 밀란 쿤데라 서거 1주년이라고 하며 쿤데라의 마지막 작품 <무의미의 축제>가 진열되어 있었다.
작가들은 책을 남긴다. 그들은 죽어도 영원히 산다.
수백 년이 흘러도 독자들에 의해 다시 태어난다.
그들은 불멸의 존재다.
내 삶은 기록해 주는 사람이 없다.
예전엔 아이돌이 부러웠다. 사람들이 계속 사진을 찍어주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혼자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는다.
쓰고 보니, 쉴 새 없이 찍히는 삶보다 원할 때 스스로 찍는 삶이 나에게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앨범을 내는 래퍼들도 부러웠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삶이라도 기록하면 비로소 의미 있어진다.
공무원 준비생이 시험공부를 하며 짤막 짤막하게 쓴 글을 모은 <새벽 세시, 공시생 일기>라는 책도 있다.
모든 삶은 예술이 될 수 있다.단, 기록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쓰지 않으면 오늘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은 채 그대로 소멸한다.
그렇기에 써야 한다.
우주 속의 먼지라면, 우리는 계속 먼지를 내야 한다.
취업을 하기 위한 수험생활을 2년 정도 했다. 감정이 북받쳐 오를 때마다 블로그나 휴대폰 메모장에 남겨놓긴 했지만, 사사로운 감정들 보다는 시험을 위한 지식을 조금이라도 더 머릿속에 욱여넣기 위해 터질 듯한 마음을 분출하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일기를 쓰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요즘 나는 불안해졌다.
아무리 생생했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휘발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빗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기록해보려고 한다. 일상이라는 빗물들을 글이라는 유리병에 담아놓고 싶다. 지금은 다시 보고 싶지 않고, 언제 또 필요할까 생각되더라도, 혹여 그리울 때면 언제든지 그 유리병을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요즘은 서울 북카페나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은 추석 당일로, 본가에 가지 않고 아침 10시쯤 일어나 방울토마토와 사과를 먹고, 혼자 집 앞 투썸플레이스에서 하루종일 글을 쓴 후, 집에 돌아와 두부와 밥, 채소샐러드와 방울토마토를 먹고 샤워를 했다. 오늘은 하나도 외롭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잘생긴 남자를 봤는데 내 스타일로 잘생긴 건 아니라서 말을 걸지 않았다.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진짜 인연은 10년 후에 만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그러기에 막무가내로 소개팅을 하거나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나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나가고 싶다. 지금의 바람으로서는 내 책이 출판이 되고, 나의 책을 좋아해 주는 사람과 일과 관련된 곳에서 만나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상대방의 직업은 작가나 일러스트 작가 같은 예술계통, 혹은 직업이 예술계가 아니어도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