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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하 Sep 19. 2024

검정치마를 입은 그녀

Flying Bobs

어쨌든 다시 돌아가 올해 9월 초 내게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한 그 여자는 파츕스 포도맛을 입에 물고 흰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다. 단추를 위에서부터 정확히 3개 풀고 있었고,  허벅지가 드러나는 검정색 데님 치마를 입고 있었다.


사실 나 또한 그녀의 존재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맥북 하나만 올려둔 채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노트북 하나만 가져온 채 카페에 몇 시간 내내 자판만 두드리고 있는 사람은 대개 블로거이다.


해가 저물 때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는 듯하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저녁 같이 드실래요?"

"하실 거 남으셨으면 하셔도 돼요"

밖으로 나오니 달력의 무게만 가벼워졌지 여전히 여름이라 아직 해가 떠있었다.


"오늘도 혼자 먹으면 일주일째 혼자 먹는 건데 다행이네요."

그녀는 계절마다 꽃을 가는 것이 취미라고 하였다.

"그 취미는 자취하면서부터 생기신 거예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겐 자신만의 의식이 필요한 법이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

그녀는 카페보다 공원을 좋아한다. 한여름에 카페에 들어가기 위해선 긴팔, 긴바지를 필요로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데 그 차림으로는 너무 덥기 때문에 가기 전에 지친다고 했다.


"동양화에서 여백의 미 아시죠

전 저에게도 여백의 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백자 아시죠. 그런 느낌. 입지 않음으로써 입는다."


"친구 없어요? 잘 안 만드는 편?"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같은데. 가족들도 멀리 있잖아요."


"혼자 못 있는 사람들은 자취하면 안 돼요. 못해요"


"사탕은 원래 자주 드세요?"


"사연이 있어요."

"아니 계기가 있어요."


"꽃을 가는 것도?"


"뭐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중요한 의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나라에도 의식이 있잖아요. 기념하는 날이 있고, 기억하는 날이 있잖아요. 새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런 거 있으세요?"


"당연히 있죠" 나는 이해한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근데 이름이 뭐예요?" 그녀가 물었다.


"그러네요. 이름을 모르는구나"


"이름을 꼭 알아야 할까요"

"굳이 몰라도 되지 않을까요"

"이름은 제가 정한 게 아니잖아요. 태어날 때 부모님이 붙여주신 건데.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근데 신기하지 않아요? 사람들 보면 이름이랑 어울린단 말이지"


"코코넛 향수  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이제부터 코코넛 보이라고 할게요"


"검정치마를 좋아하는......"

"안산 어떤 곳인 것 같아요"


"코코넛이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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