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테오라
* 16년의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번 편은 2004년에 간 그리스 메테오라 여행 이야기입니다 *
원래 델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메테오라를 가게 된 건 순전히 버스 창구에 있던 잘생긴 청년 때문이었다. 버스터미널을 찾느라 10분 정도 늦어 델피가는 버스를 놓쳤다. 난감해져 고민을 하고 있으니 창구에 있던 잘생기고 친절한 청년이 싱긋 웃으며 메테오라를 권유해주었다. 그 웃음을 보는 순간 ‘그래. 어차피 가려고 했던 곳이니까 가자’ 하며 버스표를 구매했다. 이래서 잘생긴 남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메테오라는 그리스 중부 테살리아 지방에 있다.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바위 산 꼭대기에 수도원이 여러 채 지어져 있는 곳으로 메테오라(Meteora)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다’는 뜻이다.
11세기부터 수도사들이 은둔해 살다가 14세기부터 수도원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커다란 바위 위에 커다란 수도원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너무 궁금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아테네에서 5~6시간을 가야 해 당일치기는 힘들고 2박을 하기로 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눈보라가 어찌나 치던지 시간이 지체되어 7시간이나 걸렸다. 이런 상황인데, 이상하게도 일기엔 이렇게 적어 놓았다. “델피 안가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눈보라 때문에 무려 7시간이나 걸렸다!” 이게 무슨 말인지. 7시간이나 걸렸는데 메테오라를 가길 잘 했다는 건가? 24살의 초긍정모드를 이길 것은 아무 것도 없다.
7시간동안 졸다 깨다 반복하며 창 밖의 그리스 풍경을 보노라니, 산이 구릉처럼 낮고 나무들의 키가 매우 작다. 우리나라 산은 높은데다 땅이 안 보일 정도로 키 큰 나무들이 촘촘히 있는데, 그리스의 산은 마치 십자수를 띄엄띄엄 놓듯 동글동글한 나무들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그게 모두 올리브 나무였다. 척박한 땅에 아테네 여신이 올리브를 선물로 주고 갔다는 신화답게, 그리스의 땅에서 자라는 올리브 나무는 그야말로 그리스의 상징이자, 생존을 위한 영양분이라는 게 실감났다.
칼람바카는 메테오라 바로 아래에 있는 작은 도시의 이름이다. 메테오라에 가는 관광객은 이 마을에서 숙박을 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코가 빨갛고 베레모를 쓴 할아버지가 방을 찾냐고 물어봤다. 그리스의 겨울은 관광 비수기라 소위 ‘삐끼’도 많이 없다. 유일하게 나에게 말을 건 할아버지를 따라 나서 방을 보고 흥정을 했다. 동행이 없지만 비수기라 2인실을 받았다. 가격이 살짝 비싼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잽싸게 다시 나를 숙소 아래 작은 가게에 데려간다.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가게였다.
이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그리스 시골 사람이라 그런지 과장되게 친절했다. 그리스식으로 인사하고 가게에서 콜라도 사주었다. 아무래도 방값으로 이득을 본 게 아닌가 싶은데 사람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날 뭘 보고 믿는지 퇴근 시간이 되자 숙소를 아예 나에게 맡기고 집으로 갔다. 골 때리는 할아버지다.
아침에 일어나니 장이 서 있었다. 시골의 풍성한 장을 보니 절로 기분이 활기차졌다. 아테네에선 1유로에 오렌지 6개밖에 안 줬는데 여기는 1kg를 준다.
메테오라에 등반해 올라갈 예정이라 먹을 것과 물을 사고 어디로 올라가면 되는지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친절한 시골 사람들은 “저기 저 길로 올라가면 되요.”라며 작은 오솔길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상하다. 천천히 등반하듯 길을 올라가는데 나 말고 아무도 오르는 사람이 없다. 시골 관광지라 사람이 적은 건 가보다 했는데 갈수록 길이 험해진다. 아직도 메테오라는 까마득해 보이는데 경사는 가팔라지고 심지어 땅이 얼기까지 했다. 한 번 미끄러지자 안되겠다 싶어 거의 네 발로 기어 등반을 했다. 이게 웬 사서 고생인가.
아침에 산 오렌지 봉지 그대로 손에 들고 땅을 짚으며 오르다 보니 위에 큰 길이 보인다. 저기까지만 가면 어떻게든 될 거라 믿고 다시 열심히 등반했다. 겨우 헥헥 대며 큰 길까지 올라와보니 그냥 길이 아니고 찻길이다.
‘여기까지 차가 올라올 수 있나? 에이, 아니겠지. 차도 한대도 없잖아.’
우선 가장 가까운 수도원으로 갔더니 문이 닫혀있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 메테오라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라는 그레이트 메테오라(Great Meteora)에 먼저 가기로 했다. 길을 따라 걷고 있으니 차 한 대가 앞에 섰다. 차가 올 수 있는 길이었다니…… 생고생하며 올라온 게 허무한 생각이 들어 잠시 멍해 있는데 안에서 한국말을 하며 사람들이 내렸다. 가족으로 보이는 몇 명이 내가 방금 갔다 온 수도원으로 가려는 것 같았다. 이 넓은 그리스에서, 게다가 메테오라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이 한국인이라니 안 알려줄 수 없지.
“거기 문 닫혔어요.”
“어머, 한국분이세요?”
가족들은 너무 반가워하며 자기들은 차 한 대 빌려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 터키까지 넘어갈 계획이라며 재잘대는 모습이 가족 여행에 매우 설레고 신나는 모습이었다. 나는 한 번도 가족과 운전을 하며 유럽 여행하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너무 부러웠다. 그레이트 메테오라까지 걷기엔 멀다며 흔쾌히 태워주셔서 편히 도착할 수 있었다. 차를 타고도 한참을 가는 걸 보고, 걸었으면 더 고생했을 텐데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인 가족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그레이트 메테오라 앞에 서자 아쉬움도 곧 사라졌다. 거대한 절벽 위 거대한 수도원의 위용이란! 그레이트 메테오라는 차에서 내린 산에서 맞은편으로 보이는 절벽 위에 지어져 있었다. 그냥 봐도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바로 보면 맞은 편 산에 수도원이 있어서 저기를 어떻게 가나 싶은데, 조금 더 가까이 가보니 산과 산 아래 쪽으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내리막길을 내려가 길을 건넌 후에 그레이트 메테오라로 향하는 높은 계단을 오르면 수도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레이트 메테오라 쪽으로 가려고 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절벽과 절벽 사이에 웬 줄이 이어져 있었다. 전선인가 싶었는데 좀 있으니 수도원에서 사람이 탄 수레가 줄을 타고 내려와 맞은 편 절벽으로 오는 게 아닌가! 수레는 사람 한 명이 겨우 타고 짐을 좀 실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무엇보다도 500m 넘는 깎아지르는 절벽 위에서 줄에만 의지한 수레가 공중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오줌이 지릴 지경이었다. 짐을 실어 나으려는 용도 같았다. 책에서만 보던 도르레를 이용해 물건을 나르는 모습이었다. 새삼 옛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레이트 메테오라로 올라가는 계단은 얼어서 미끄러웠다. 넘어지지 않게 거북이처럼 걸어 오르니 입장하는 곳에서 치마를 입어야 한다는 규정을 알려줬다. 수도사들이 수도를 하는 신성한 곳이므로 바지를 입은 여자나 짧은 바지를 입은 남자는 치마를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입구에 놓여 있는, 옷이라 하기엔 헝겊 쪼가리 같은 긴 치마를 옷 위에 덧대어 입고 있으니 꼴이 재밌어 웃음이 나왔다. 엉거주춤 옷 위에 허름한 치마 하나를 겹쳐 입으며 옆에 역시 치마 입느라 분주한 스페인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깔깔대고 웃었다.
수도원은 오래된 역사만큼 신비로웠다. 순교자들을 기리며 그린 벽화, 옛 수도사들이 쓰던 식탁, 숟가락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방 한 가득 놓여 있는 해골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그 시절 땅에 내려가지 못하고 하늘 가까이에서 일생을 마무리한 수도사들의 유골이 아닐까. 수도원은 생각보다 사람이 없고 조용했다. 경건한 곳이니만큼 나도 함께 숙연해졌다. 수도원에는 수도사들이 순교자들을 기리며 그린 성화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매우 섬세한 손길로 그려진 순교자의 그림이 한 장 갖고 싶어 구매했다. 여행 내내 그림이 망가지면 안되니 조심하며 다녀야지! 수도원을 나오기 전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어 아까 만난 스페인 가족들에게 부탁을 했다. 매우 착해 보이는 가족은 순순히 사진을 찍어 주었다.
다른 수도원도 가볼까 했지만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은데다 그레이트 메테오라만으로도 충분한 감상이 되어 다시 칼람바카로 돌아가기로 했다. 오후가 되어 날이 좀 따뜻해졌으니 슬슬 걸어가기로 하고 길을 나서는데 옆에 웬 차가 한 대 섰다. 아까 그 스페인 가족이다. 칼람바카까지 가면 태워주겠단다. 와우!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아까 그 한국인 가족도 그렇고, 스페인 사람들도 그렇고,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세상엔 이렇게 좋은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어떻게 걸어서 저 돌산을 올라갔다 싶을 정도로 차를 타고도 한참을 내려왔다. 따뜻한 스페인 가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져 숙소로 돌아오니 아직 이른 오후시간이었다. 가만히 앉아 다시 생각해도 돌산을 걸어 올라갔다는 게 기가 막혔다. ‘내가 저기를?’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걸어 다녀오니, 꼭 메테오라가 있는 돌산 전부가 내 것이 된 것 같았다. 저곳을 샅샅이 경험하고 즐겼다는 뿌듯함. 단체 투어로 수도원을 돌아보고 ‘다 찍고 왔다!’ 하는 그런 여행이 아닌, 내가 직접 선택한 나만의 여정으로 메테오라를 본 것이다.
그렇게 힘든 여정 속에서도 도와준 은인들이 있었다는 데에 감사했다. 며칠 전만해도 호텔에서 사기 당하고, 싸우느라 주눅들었었는데, 역시 사람은 죽으란 법은 없다. 칼람바카의 정겨운 시골 사람들은 눈 마주칠 때마다 나에게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이곳의 다정함이 나를 치유해주는 것 같았다. 내일은 다시 아테네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고생한 아테네인데 돌아간다 생각하니 마치 집에 가는 것 같았다. ‘아테네가면 플라카에서 수블라키 삐따를 먹어야지. 숙소는 반드시 다른 곳을 잡을 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칼람바카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