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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Dec 30. 2023

(무엇)이었던 것

글 올리브

괄호 속의 빈칸은 팝콘 같다. 민둥민둥한 머리가 버터와 기름 두른 팬 위에서 지글지글 간지럽다가 너무 뜨거워서 끝내 폭발하고야 마는 팝콘. 민둥한 머리는 어디로 갔는지, 구름같이 마구 부풀어 오른 형태가 되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다. 무엇이 될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의식하든 아니든 ‘무엇’들로 괄호 안을 채운다. 이것저것 채우다가 때때로 빈칸으로 두고 싶은 날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가끔은 팝콘이 되지 못한 옥수수 알이 그대로 남아있기도 하니까. 괄호는 ‘무엇’에 따라 자유자재로 늘었다 줄어들 테니 걱정 없이 그 자릴 차지하면 좋겠다. 아무것도 아닌 날보다 차라리 무엇이라도 된다면 좀 더 재밌을 테니까. 


누구나 ‘무엇’이었던 적이 있다. 아주 긴 문장일 수도 있고, 짧은 한 단어일 수도 있다. 특별히 무엇이 좋다기보다 그냥 무엇이었다. 여러 무엇 중에 우리들은 ‘책’이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리가 보낸 시간은 정말 ‘책이었던 것’이다. 온전히 책이 좋았고, 책을 따라갔고, 책을 공유했고, 책들에 둘러싸여 책을 만들었다. 


책이라면 사각형의 네모난 종이들을 엮어서 차례차례 넘기는 그것이다. 우리들은 종이에 인쇄된 글자들을 닳고 닳게 읽고 쓰고 다듬어서 손에 쥐게 만드는 일을 했다. 우리에게 책 만드는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었다. 글자 너머에 각각의 삶이 존재했다. 누군가에게는 자부심이었고, 안식처였고, 오랜 책임이었다. 많은 의미를 담기엔 사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을 지독히 사랑하는 이들이 모였고 다른 듯 비슷한 우리들이라 깊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제도 가을장마가 하루 종일 내렸다. 이젠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하다. 시간을 세어보니 연말까지 대략 백일의 시간이 남았다. 올해도 이렇게 가는구나, 쓸쓸함과 동시에 하반기에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백일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연말 선물처럼 귀여운 책이 나오면 좋겠다. 


기본 팝콘도 다양한 시즈닝을 뿌리면 여러 가지 맛으로 변신한다. 달콤했다가 짭조름했다가 매운맛이었다가. 재미난 단편 영화 한 편을 즐긴다는 기분으로 우리의 달콤쌉쌀했던 이야기를 가볍게 즐겨주길.  


팝콘 같은 시답잖은 비유로 시작했지만 어쩌면 삶에서 무엇이 된다는 것은 이전과는 완전히 뒤바뀐 형태의 팝콘만큼 위대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비록 과거형이 되었지만, 한때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했던 ‘책’을 오래도록 아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쓴다. 



2023년 마지막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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