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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Oct 25. 2023

어떤 경험은 어떤 깨달음을 준다

글 샐러리





추석 당일 저녁, 눈치 없는 포지션을 도맡는 친척 어른이 잘 지내냐며 은근하게 물어왔다. 안부를 묻는 인사를 부러 곡해할 필요는 없지만 나와 동갑내기 사촌인 그의 아들이 얼마 전 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노동청엘 다 갔다 오네요.“ 괜히 농담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실제로는 대표로 올리브만 다녀왔으니 살짝 구라가 섞였지만 아무도 진실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 다들 한 마디 던진다. 그게 다 경험이라느니, 아직 진행중이냐느니, 대표가 출석을 안 하면 어쩌냐느니. 분위기는 차라리 가벼워지고, 나는 대꾸를 하다가 TV에서 나오고 있는 올림픽 탁구 경기로 주제를 돌린다. 그런데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가? 방으로 후다닥 들어와 이렇게 이르듯 적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럴 리 없다.


노동청에 가보는 경험이 꼭 필요한 경험일까? 경험을 통해서 성장하는 거라면 이런 성장은 별로 안 하고 싶다. 다시 구직을 해야 하므로 예전에 이 회사에 제출하기 위해 썼던 자기소개서를 다시 읽어봤다. 자기 모순이 어쩌구, 자유가 어쩌구, 위로가 어쩌구…. 오랜만에 읽어본 자소서는 끔찍했다. 누가 이런 말을 자소서에 적어? 일단 그런 건 차치하고, 내가 정말로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성장하길 기대하던 면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멋진 삶이라고 생각하는 지향점을 지닌, 모순 없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실제로 그런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 혹은 동료들에게 건강한 자극을 받고 싶었다. 아무리 밥벌이라고 해도 일을 할 때 괴롭지는 않길 바랐다. 사실 회사에서 올린 공고를 보면 정말로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내용을 직접적으로 인용할 수는 없지만, 회사의 방향성에서 환경이나 공존에 대한 태도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는 게 드러났다. 내가 괜히 저런 자소서를 쓴 게 아니다. 당연히 이곳에서 만든 책들을 살펴봐도 꾸준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쓰는 직장이라는 게 좋았다. 나는 어렸을 때 화장실에서 책 읽기를 금지당해 유한락스 사용법을 읽던 부류, 교과서를 받은 새 학기 첫날부터 국어 교과서를 펼쳐 수록된 작품을 모조리 읽어버리는 부류의 아이였다. 이야기를 좋아하니 자연히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아했다. 도대체 뭔가를 꾸준히 하는 법이 없는 나지만, ‘쓰기’라는 행위에는 마르지 않는 욕구가 있었다. 15년 동안 일기장, 블로그, 굿노트, 노션 등 매체만 바꾸어 가면서 일기를 꾸준히 썼고,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어 극작을 하고 에세이를 썼다. 영화나 뮤지컬, 연극을 보고 리뷰를 남겼고,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만두를 먹고 후기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는 뚜렷한 목적성 없이도 텍스트의 형태로 말하는 것 그 자체가 좋아서 썼다. 나를 위해 썼고, 재밌으니까 썼다. 그런 사람이니, 글을 쓰는 일로 돈도 벌 수 있다면 그건 정말 행복한 일일 수밖에 없었다. 작은 회사라는 것도 별로 문제가 안 됐다. 


웃기는 건, 글을 쓰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 지 몇 년 안 됐다는 것이다. 신문 기자는 내 분야가 아니었고, 또 예술 쪽으로는 별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글로 벌어 먹고 살 만큼 돈을 벌 수 있는지도 미지수였다. 내가 쓴 글로 돈을 번다? 그냥 포스타입에 200원 걸고 올린 팬픽 한 30명한테 파는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래서 아예 논외의 진로로 두었다. ‘취미가 일이 되면 그걸 사랑할 수 없게 된대’, 신포도 같은 말을 되뇌면서. 그렇다고 ‘진로’라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선택은 계속해서 유예되었다. 대학교는 수능 성적 맞춰 인서울 끄트머리 사범대에 입학했다. 국어교육과가 아니라 교육학과에 입학한 것도 성적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었다. 한국의 교육 현실과 교육 과정, 제도 등등에 대해 아주 냉혹한 관점을 견지한 교수님들 덕분에 내가 교사 재목이 아니란 걸 깨달았으니까. 사실 재목이고 뭐고 중등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싶지 않았다. 초수, 재수에 딱딱 붙는 선배들을 보면 거의 과탑을 도맡아하던 성실한 언니들이었다. 나처럼 연극하러 학교 다니고, 온갖 요령을 다 피우는 사람이 아니라. 다만 국어와 문학이 좋아서 국어교육 복수전공을 하긴 했다. 


동기들보다 조금 늦게 졸업한 후 나름대로 계산기도 두드려 보고 이래저래 이유도 붙여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또 한 번 선택을 유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부한 내용은 학부 때 배운 내용이 반이라 적당히 할 만했고 재미도 있었다. 문제는 연구였다. 논문이 죽도록 읽기 싫었고 연구가 죽도록 하기 싫었다. 결정적으로는 대학원을 졸업한다고 해도 살 길이 안 보였다. 평생 이치에 맞는 계산기를 두들겨 본 적이 없던 놈이 계산을 잘 했을 리가 없었던 거다. 그제서야 잡코리아나 원티드 따위의 채용 플랫폼을 기웃거렸고, 구직자의 알고리즘이 이 회사의 구인 광고를 보여줬다.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좋아하는 거만 하고 살던 나한테 이런 괜찮아보이는 기회가 오다니! (그러나 희극적이게도 이 글의 존재 자체가 이것이 실제로 괜찮은 기회는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 회사의 번지르르한 가치관이 꽤 좋아 보였는지, 평소의 나답지 않게 후다닥 이 회사에서 출간한 책을 구해 읽고 자소서를 적어 내려갔다. 꽤 말랑하고 별로 자소서답지는 않은 자소서가 완성됐고, 와! 속전속결로 입사가 결정됐다. 그땐 몰랐다. 목요일에 낸 자소서를 보고 금요일 오전에 면접을 봐서 금요일 오후에 입사가 결정되는 회사는 대부분 절박한 이유가 있다는 걸. 


나는 나를 좋아하지만 내 인생을 좋아해 본 지는 좀 오래됐다. 그 두 가지는 또 그렇게까지 별개의 것은 아니라 결국 내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게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하기 싫은 걸 곧 죽어도 하기 싫어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오게 된 거라고, 내 선택을 혹은 ‘선택하지 않음’을 곱씹게 된다. 사리분별을 할 만큼은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다. 대신 포기할 수 없는 내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 것만은 이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굳이 노동청에 가면서까지 깨달음을 얻어야 했을까? 지금은 빨리 내 민원이 처리되어 밀린 월급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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