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딛지 않는 용기
스텝 바이 스텝.
직역하면 한 걸음 한 걸음이다.
계단을 밟을 때처럼 한 걸음씩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누군가 분주해 보이거나 절차를 무시한 채 나아갈 때 해줄 수 있는 조언이겠지?
나도 그랬다. 인생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하지만
특별히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는 더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인생의 선배들에게 자문도 구하고 나름대로 다양한 계획을 구상한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에게 중대한 고민의 시기가 왔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
사립유치원에 취업을 할 것인지, 임용시험을 준비할지, 다른 진로를 찾아볼 것인지.
분명 임용시험을 경험한 교수님께 상담을 하면 임용을 하라는 권유를 받을 것이니까 그분은 제외한 다른 분을 찾았다. 최대한 열린 답변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교양수업 교수님 중에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임용과 무관하게 외국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대안교육을 경험하고 오신 분이 계셨다. 그분의 수업을 들을 때마다 자유로움과 열정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경의 대상이었다.
학기 마지막 날, 종강 시험을 치르고 교수님과 상담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교수님은 낯선 학생이 두드린 문을 반갑게 열어 주셨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차분히 여쭤봤다. 나의 고민을 충분히 들어보시더니 본인은 자유로워 보이겠지만 한편으론 임용 시험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임용 대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다른 커리어를 쌓는데 힘을 쓴 것 같다고 하셨다. 분명 임용은 가치로운 것이니 도전해보길 추천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큰 그림을 그리고 행동하고 한 걸음씩 천천히 나가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해주셨다. 그 모든 말이 나에겐 반박할 수 없는 진리처럼 들렸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논리 수업 교수님답게 논리적으로 설득하시는구나 생각했다. 그때의 조언이 나의 가치관을 굳어지게 할 줄도 모르고.
시간이 흘렀다. 삼 년. 여전히 그 말을 의지하며 임용에 매달렸고 원하는 결과는 얻지 못했다.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며 그나마 숨통을 틔우고자 하고 싶은 서점 알바를 하고 있었다. 서점에 여러 손님들이 오신 날이었는데 대표님과 우연히 깊은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 매해 연말이 되면 내년을 고민하는 보통의 나와 연륜이 있으신 대표님. 우리의 대화 패턴은 비슷했다. 고민을 나누고 조언으로 덧입고. 그런데 그동안 들었던 조언과 조금은 달랐다.
큰 그림뿐만 아니라 작은 그림도 그려야 한다고. 큰 그림은 너무 멀리 있어서는 안 되고 당장 앞으로의 일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생은 스텝 바이 스텝이 아니라고. 한 걸음 갔다고 다시 한 걸음 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예측 불가능한 일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겠지. 어쩜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말들을 정확히 반대로 뒤집어 주는 말들이었다. 나는 문득 내 앞에 계단이 떠올랐다. 그다음 계단이 사라졌을 수도 있고 구멍이 뻥 뚫려 있어서 점프해야 할 수 도 있으며 더 이상 올라가는 게 아니라 내려가야 할 수도 있는 계단. 오르락내리락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계단.
나는 삼 년 전 그때의 조언을 듣고 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던 걸까. 그동안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그 조언이 우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말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우물 중에 하나의 우물일 뿐이었다. 다른 우물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너무 존경하는 교수님이라 한 우물에만 깊이 빠져있었다. 그 말 외에는 다른 우물을 찾아보려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정한 스텝을 밟아야만 다음 스텝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그 스텝이 큰 그림을 위한 준비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스텝을 밟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도 꾸준히 노력하고 참아 내려고 했다. 아직 그다음 발판을 올라서기에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사실 두 사람이 내게 해 준 조언은 다른 의미로 다 맞는 말이다. 그저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하지 못한 것이지. 나는 늘 시험을 핑계로 다음 스탭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자꾸만 중앙계단 말고 비상계단이 보이면 외면했다. 그러다 올해 아이러니하게 코로나라는 상황이 내게 시간을 선물해줬고, 용기내어 눈 앞에 있는 스텝에서 더 이상 내딛지 않고 멈췄다. 대신 힘껏 스윙을 날렸다. 결과는 어땠냐고? 나에겐 또 다른 성취와 기쁨을 안겨주었고 정말 행복했다. (아참, 내가 날린 스윙은 독립출판이다.)
NO-STEP은 야구 용어라고 한다. 더 이상 발을 내딛지 않고 그 자리에서 스윙을 날리는 것.
야구를 잘 모르지만 항상 느끼는 것이 야구 용어 중에 우리 인생에 빗대기 유의미한 용어들이 많은 것 같다.
노스텝을 하는 이유는 시야가 흔들리지 않고 투구를 오래 보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하체 이동을 하지 못해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타고난 파워로 상쇄시킨다.(출처: blog.naver.com/kingsgolf/140125786075)
우리에겐 발 만 있는 게 아니다. 손도 있고 눈고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다. 발을 내딛지 않는다고 어떤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다. 내가 계획한 다음 스텝이 보이지 않더라도 안정감 있게 앞을 응시하고 손으로 더 큰 힘을 주어 날아오는 공을 날릴 수 있다. 큰 그림은 언제나 작은 그림으로부터 완성된다는 것을.
미래의 나를 위해 자꾸만 현재의 나를 잊을 때가 많았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는 매일 고민하고 염려했다. 어차피 세월이 갈수록 우리는 그 시기마다 새로운 고민을 또 마주하게 된다. 지금 하는 고민은 사라지겠지만 또 다른 고민이 기다리고 있다. 이젠 현재의 내가 가장 소중하다. 현재의 나를 위해 한 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며 나만의 계단을 완성해 가다 보면 미래의 나도 만족스러운 어딘가에 있을 거다.
산 정상을 오른 사람들은 올랐다는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리고 곧장 내려온다. 산을 올랐다는 기쁨 그것이면 되니까. 산 위에서 느끼는 기쁨을 위해 올라갔을 뿐. 산 아래에는 돌아갈 집과 친구들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든 나름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한 순간이라도 빨리 깨달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좋은 것의 기준이 개인마다 달라서 이것도 나의 우물이겠지만 여러 우물을 파보고 나에게 잘 맞는 우물에서 헤엄치길. 그리고 가끔은 다른 우물도 기웃거려 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