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유무
흘러가는 것을 동경한다.
어느 날은 하늘이기도 하고, 어느 날은 강이 되고 바람이 된다.
세상에는 소리 없이 그저 흘러가는 게 참 많다.
출퇴근 길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주어진 창문에 고개를 내밀면 다들 어딘가로 열심히 바퀴를 굴리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회사로, 집으로, 약속 장소로 가느라 그리 분주한 것이겠지.
신호에 잠시 멈춰있을 때면 흘러가는 자동차를 사람들을 구경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이쪽에 있던 차는 조금 후에 저쪽으로 가 있겠지 하면서.
흘러가는 건 이렇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거다.
계절도 지구가 도는 방향에 맞춰 천천히 옷을 갈아입는다. 그것은 분명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바람마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
물론 어떤 이유로 그러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흐르는 건 어떤 의지가 반영되지 않는다.
중력이 잡아당기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흐르는 건 어째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
아무리 딴생각을 하며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흐른다.
비염이 있는 사람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간절기마다 찾아오는 비염이란 불청객이 시도 때도 없이 흐른다.
어쩔 수 없는 것에 의지박약이라고 탓할 게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흐르는 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흐르는 것과 흘러가는 것의 경계에 있는 것이 문제다.
시간 같은 게 그것이다. 시간은 의지와 상관없이 흐른다.
누군가 노력 없이 얻는 것은 나이라고 했던가. 지금도 귀중한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
흐르는 것의 속성처럼 멈추지 않는다.
그렇지만 흐르는 것을 흘러가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시간은 속절없이 가지만 그것에 의지를 가지면 된다. 그저 흐르게 두지 않고 시간에 몰입하는 것이다.
매 순간을 몰입할 순 없지만 자주, 조금씩 시간의 주인이 되면 좋겠다.
이를 테면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잘하는 일로 바꿀 수 있도록 말이다.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고.
SNS에 누가 이렇게 올린 글을 본 적이 있다. 너무도 공감한다는 댓글이 많이 보였다.
나도 정말 공감해서 조용히 하트를 눌렀다. 의지가 사라질 때마다 보려고 일기장 구석에도 살짝 적어두었다.
나는 흘러가는 것에 얼마나 의지를 가지고 있을까.
언제까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우연 또는 인연이라고 하지만 그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은 노력이다. 가족이라는 관계도 내 선택과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좋은 부모-자녀, 형제 관계를 위해 노력을 한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는 어떨까. 어쩌면 가족보다도 부단히 노력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결국 이별의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의지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을 때 우리는 끝을 맞이한다.
이제라도 남은 시간들을 흐르게 두지 않고 함께 흘러가야겠다.
마치 리듬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것처럼 시간을 즐길 거다. 더 이상 소중한 것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음악이 흐르는데 어색하게 서 있지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