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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의 반대말은

또다시 도전하기

by 하늘


만 60세까지 정년보장이 되는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월급날이면 아주 적은 액수지만 꼬박꼬박 월급이 찍힌다. 나라에서 주는 돈이라 기관이 망하더라도 상관없다. 평가도 없는 직군이라 경쟁도 노력도 불필요하다. 상사가 먼저 퇴근하는 구조라 칼퇴 보장, 복지도 좋다. 보이는 외적인 모습만으로 누군가는 신의 직장 아니냐고 할지 모른다.

글쎄다. 이때부터 나는 멍청하게 퇴근 시간만 바라보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안정이 보장되니 당연하게 나태해져 갔다. 매일 똑같은 하루에 지치고 힘이 쭉쭉 빠졌다. 어떤 일이든 힘이 든다. 하지만 무언가 채워지지 않았다. 마음이 공허했다. 그러다 우울감이 찾아왔다. 목적도 성취도 보람도 없었다. 왜 사는지 모르겠었다. 삶이 무의미하고 공허했다. 10년 후 아니 당장 내년에도 똑같이 이러고 있을 뻔한 내 모습이 못 견디게 괴로웠다. 안정을 소유하게 되니 미치도록 답답했다. 새장에 갇힌 파랑새 같았다. 새장처럼 아늑하고 포근한 내 집이 없더라도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다. 가끔 날씨 탓에 비도 쫄딱 맞고 눈도 맞으며 더욱 단단한 내가 되고 싶었다. 아직은 젊은, 이 시절이 아깝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가장 좋은 것은 , 나를 알아 간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쌓여가는 것이겠지. .

나라는 사람은 안정보단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조금 불안하더라도 도전하고 성취하고 나만의 보람을 만들어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도전하는 그 과정을 즐겼다.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발견하는 게 나였다. 나는 지독히도 자유를 추구한다. 그게 누군가에겐 불안이고 초조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성질같은 것이다. 나를 표현하는 성격과 질감.


내가 생각하기에 안정의 반대말은 불안정이 아니라 도전이다. 새로움에 도전하는 것. 그것은 안락한 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 것이다. 한때 “이불밖은 위험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집돌이 집순이를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그 표현이 모두에게 수긍되는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불 밖을 동경하는 사람도 있더라. 각자의 성향에 따라 이불 밖은 재밌는 곳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안락함을 포기하기로 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정년 보장이 되는 직장을 나왔다. 온전히 나의 결정이었다. 손에 쥐고 있는 걸 놓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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