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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Sep 01. 2017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었으니까.

타이베이, 대만 - 미숙함에 대한 단상

 따지고 보면 처음이 아닌 하루가 어디 있으며, 능숙하기만 한 여행이 어디 있겠어. 같은 도시를 몇 번이고 다시 찾아도 이야기는 매번 새로운데. 장소에 익숙해지고, 시간에 능숙해지면 그것을 더 이상 여행이라 부르지 않잖아. 일상이라고 하지. 적어도 여행 그리고 인생에선 미숙함의 반대말이 익숙함 혹은 능숙함은 아닐 거야.


 주말 외식 그리고 가족 여행. 두 단어는 우리 식구에겐 남 이야기였다. 사정이 좋지 않았던 부모님은 사 먹는 밥은 비싸고 맛이 없다며 먼 길을 오더라도 집에서 식사를 하는 쪽을 택하셨다. 일 년에 한두 번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동네 돼지갈빗집 원통 테이블이 유일한 외식 장소였는데, 식구는 넷이었지만 엄마는 언제나 갈비 삼인분을 주문했다. 나는 늘 그 이유가 궁금했다.

 휴일 없이 작은 가게일에 매달린 부모님께 한여름 피서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여름 방학 중 지리산 자락에 있는 외가에서 사나흘 지내다 온 것이 기억 속 가족 여행의 전부다. 그마저도 내가 육 학년 되던 해, 밭일을 하시던 외할아버지가 쓰러지신 후로는 더 이상 없었다. 개학을 반기는 학생이 어디 있겠냐만, 나는 특히나 여름방학 후의 개학식 날을 싫어했다. 까맣게 탄 얼굴로 늘어놓는 친구들의 여름휴가 이야기가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하면서도, 그 끝엔 결국 심통만 한가득 떠안게 됐으니까.


 요즘엔 그래도 두세 달에 한 번 가족 모임이 가지니 그사이 제법 큰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퇴근길에 모여 바깥 밥이나 간식거리를 먹고 귀가하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일인데도 여전히 이런 모임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늘 생일이나 눈먼 돈 같은 핑계를 대며 일정을 통보한다. 그 날은 생일 선물로 받은 아이스크림 쿠폰의 유효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엄마와 여동생, 그리고 내가 모였다.

 색색의 아이스크림이 반쯤 녹아 뒤엉켜 무슨 맛인지 알 수 없게 된 아이스크림 통을 앞에 두고 지난해 결혼한 동생과 엄마는 반찬 걱정과 손주 욕심 등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가만히 그 모습을 보는데 괜히 목이 답답하고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벌써 십수 번이나 반복됐는데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는 감정이다.

 반면 그녀들은 이런 모임이 제법 익숙해졌는지, 수다만으로도 앉은자리에서 한두 시간을 금방 보낸다. 일상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 어렸을 적 남매가 엄마에게 혼이 났던 사례들로 이어진다. 매번 등장하는 단골 소재다. 어찌나 다양한 이유로 혼이 났던지, 아직도 새로운 이야기가 튀어나온다.

 동생의 기억 속 오빠는 매일같이 혼나고 회초리를 맞았다고 한다. 부러진 손잡이에 테이프를 감은 빗자루로 엉덩이를 맞던 기억이 선한 걸 보니 아주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남매의 추궁 아닌 추궁에 엄마는 처음엔 언제 그랬냐고 발뺌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다른 엄마들도 그 정도는 했을 거라며 정리에 나서셨다. 그러다 웃음이 터져 한참 동안 셋은 눈물이 나도록 깔깔댔다.

 엄마 말을 듣지 않거나 몰래 동네 오락실에 간 잘못도 있었지만 가끔 장난감 블록으로 방을 어지럽힌 것과 늦은 밤까지 잠자리에서 동생과 시시덕거렸다는 이유로 화를 내는 엄마를 그땐 다른 엄마들보다 괴팍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며 20대를 보낸 엄마의 깊은 우울감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 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차라리 평생 괴팍한 엄마로 남아있지 그랬어.’ 어른이 된 것이 그만큼 슬픈 적이 없었다.

 한바탕 세 식구의 웃음이 사그라든 후 엄마가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아유- 미안해. 엄마도 엄마는 처음 돼보는 거였으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그날 우리가 나눈 대화 중 대부분의 이야기는 흘러갔지만 그 한 문장은 어딘가 가만히 가라앉아 있다가 몇 달 후 불현듯, 갑자기 떠오르곤 했다. 내가 내 미숙함을 자책하며 한숨 쉴 때, 어떻게 알았는지 불쑥.


 ‘도대체가 마음처럼 되는 일이 하나 없네!’

 살면서 세상이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순조롭게 진행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배경이 낯선 도시라면 그 확률은 훨씬 낮아질 것이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숙소가 있는 타이베이 메인 역에 도착한 나는 소리라도 빽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벌써 이곳에 온 지 나흘이 지났지만 오락가락하는 비에 아직 해는 구경도 못한 데다, 기대했던 지우펀(九份)에서 폭우와 사람들의 우산 행렬에 휩쓸려 하루를 날린 후였다. 지우펀 시장 골목에서 발이 미끄러져 돌부리에 부딪힌 정강이는 퉁퉁 부어 욱씬거렸고, 설상가상 종일 비를 맞은 몸까지 으슬으슬했다.


 그 정도를 따질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실수의 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타이베이에서의 일주일은 낯선 것들 앞의 내 미숙함이 가장 잘 드러난 여행이었다. 오죽했으면 ‘열차 시간을 제외하면 예상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었어’라고 했을까. 일 년 전 여행에서부터 써온 아끼는 수첩을 비행기에 두고 내린 것을 시작으로, 비를 맞아 먹통이 된 카메라와 마치 지하실 같았던 창문 없는 숙소 그리고 일주일 내내 달고 다닌 몸살 기운까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대보름 시즌에 열리는 타이완 등 축제를 보러 타오위안행 HSR을 탄 날에는, 경비를 아낀답시고 입석 티켓을 산 뒤 왕복 티켓값보다 많은 거스름돈을 티켓 판매기에 두고 오기도 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알싸한 취두부 요리의 향 같은, 말이 통하지 않아 생긴 해프닝은 이보다 훨씬 많다. 평소 같았으면 혼행(혼자 하는 여행)에 이 정도 해프닝이 무슨 대수냐며 웃어넘겼겠지만, 실수가 자꾸 반복되니 자연스레 내 서투름을 탓하게 됐다. 이내 날씨에서 부어오른 상처, 숙소에 대한 한탄으로 원망이 점점 넓게 번졌다.


 다음날 대만 핑시선(平溪線) 열차가 루이팡(瑞芳)역을 출발할 때까지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고양이 마을로 유명한 허우통(侯硐)을 지나 천등으로 유명한 스펀(十分)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가 멎었지만 여전히 하늘은 우중충했다.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가 그렇듯 스펀의 철길 위 풍경 역시 언젠가 본 사진 속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해진 순서에 맞춰 풍등을 날리고 기념사진 몇 장을 남긴 뒤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들이 꼭 점심시간 맥도널드를 보는 것 같았달까. 탁한 하늘을 배경으로는 스펀의 풍등이나 사람들이 입은 우비나 별다를 것이 없었다.

 또 한 번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철로 위를 걸으며 ‘처음’, ‘낯섦’, ‘미숙’, ‘실패’ 같은 말들을 떠올리던 내게, 지난 엄마의 문장이 불쑥하고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 길로 곧장 숙소로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흐린 날씨 아래서 내 몸통만 한 풍등을 날리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보인 것도 그 말을 떠올린 이후였다.


 처음 날리는 풍등 앞에서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설프고 서툴렀다. 풍등 가게 점원들의 도움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날아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에 요 며칠 나를 괴롭히던 걱정이나 한탄, 두려움 같은 것들은 없었다. 오히려 철로 주변에서 붓으로 천등에 빼곡히 소망들을 적는 사람들의 입가에는 설렘과 낭만이, 이제 막 날아오르는 풍등을 쫓는 눈에는 이미 그것이 절반쯤 이뤄진 듯 행복이 채워져 있었다. 그동안 낯선 도시에서 내 서툰 모습을 감추려 했던, 그보다 전에 신입생 환영회, 첫 유격훈련, 면접관의 질문과 그 외 수많은 ‘낯섦’ 앞에서 미숙을 곧 실패의 다른 이름이라 여겼던 내게 그것이 적잖은 위로가 됐던 것은 물론이다. 아쉽게도 혼자 풍등을 날리는 것은 포기했지만 대신 나는 사람들의 환호하는 모습과 엄마의 문장에서 ‘미숙(未熟)의 미(美)’를 만끽했다.


 핑시선의 종착역인 징통(菁桐)에서 루이팡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 것은 오후 네 시. 텅 빈 기차에 앉아 차창 모양으로 잘라진 바깥 풍경이 마치 밀착 인화 후의 필름을 보는 것 같았다. 영화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는 경치를 바라보며 그 시절 갈비 삼인분의 이유만큼 궁금한 것이 생겼다.


세상에 서툴지 않은 여행이 있을까?
혹 있다면 그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여행은 그 안에 새로움과 서투름 같은 풋내 가득한 의미들을 품고 있기에 변함없이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 아닐까. 내가 떠나기를 갈구한 이유 역시 돌아보면 낯선 도시의 풍경보다 그 위에 꾸밈없이 늘어놓인 내 서툰 모습들에 있었던 것 같다. 서툰 언어로 이야기를 조각조각 맞춰 나가고, 마지막 버스를 놓치고 모르는 길의 낭만을 벗 삼아 걷는 동안 느린 속도나마 분명 나는 성숙하고 있다.

 그렁그렁한 맺힌 풍경 탓, 괜스레 더 감상적인 독백이 끝날 즈음 열차가 루이팡 역에 도착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어쩐지 하늘은 전보다 조금 환해 보였다.


 타이베이에서의 마지막 날, 창문 없는 호텔방을 나와 공용 화장실로 향하는 슬리퍼의 발등에 비친 낯선 빛을 쫓아 한달음에 로비가 있는 복도 끝에 닿았다. 대만에서 처음 맞는 화창한 아침이었다. 나는 칫솔을 입에 문 채 몇 초를 멍하니 서있다 되도록 빨리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곧장 화장실로 달려갔다. 대강 세수를 하고 건성으로 머리를 감는 동안 나도 모를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망설임 없이 단수이(淡水) 워런마터우(漁人碼頭)에서 오후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폭우에 헛걸음을 돌렸던 첫 번째 오후에 대한 보상이기도 했지만, 여행의 라스트씬으로 바닷가 노을만 한 것이 있겠냐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빨간색 MRT 노선을 따라 종착역 단수이까지 간 뒤,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릴 동안 낮은 콧노래 소리가 이어졌다.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내 눈 앞에 근사한 해안 풍경이 펼쳐졌다.


 그 날 나는 등대까지 이어진 긴 산책로를 끝에서 끝으로 왕복하며 하루 중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늦은 오후부터 나무 계단에 앉아 노을 마중에 나섰다. 잠시 후 시작된 하루의 클라이맥스. 빠르게 흐르는 구름과 그 아랫사람들의 실루엣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나는 떠나기 전 이 마을이 배경인 대만 영화를 꼭 보라던 친구의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노을이 절정에 다다르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이 내는 나무 바닥의 삐걱삐걱 소리가 뜸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역시나 다들 가던 길을 멈추고 이 장관을 보고 있었다. 태양의 붉은빛과 파란 하늘이 뒤엉켜 옅은 보랏빛으로 하늘이 물들자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보라색을 좋아하고, 코스모스 앞에서는 영락없이 소녀가 되어버리는 엄마의 수줍은 미소가 떠오르더니, 뒤이어 그날의 문장이 다시 한번 둥실 떠올랐다. 엄마가 되는 것도, 아이들이 자라며 겪게 된 일들도 모두 다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는 고백이. 그 속엔 분명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 녹아있었겠지만, 사실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미숙했던 날들이 돌아보니 큰 탈 없이 잘 흘러왔다는 확신이 아니었을까. 서툴던 지난 일주일이 마지막 노을 못지않게 아름다웠던 것처럼.

 그땐 간지러워서 말 못 했지만 내겐 처음부터 엄마였던 그녀의 미숙함에 대한 고백은 그간 내게 준 어떤 것보다 큰 울림이었다. 입버릇처럼 하셨던 ‘공부할 때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후회는 평생 간다.’는 말보다 수백 배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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