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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Jan 18. 2019

이야기가 있던 도시, 이야기로 남은 공간.

제가 사랑하는 프라하 속 장소들을 소개합니다

3. 어쩌면 지금 스스로를 위한 선물이 필요할지도 모를 당신에게.


일 년 전, 시내의 한 펍에서 만난 슬로바키아 출신의 여인에게 나는 그녀의 이름보다 먼저 이 도시 속 사랑하는 공간들을 물었다. 무례였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그녀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었다. 시끄러운 음악과 소음 속에서 그녀는 귓속말로 몇몇 지명들을 일러 주다가 내가 몇 번이고 발음을 틀리니 탁자에 놓인 종이 귀퉁이를 찢어 쪽지를 만들었다. 구형 블랙베리 휴대폰의 작은 화면과 종이를 번갈아 보며 글씨를 옮겨 적는 모습이 어두운 조명 아래서 근사하게 보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다음날 가방이며 주머니를 다 뒤져 봐도 메모를 찾을 수 없었다. 취기가 오른 내가 어딘가 흘린 게 분명하다. 다시 연락할 방도도 없었다. 유일하게 기억해 낸 것은 쪽지 첫 번째 줄에 적힌 공원의 이름이다. 간밤에 움직이는 그녀의 손을 따라 머릿속에 적어 둔 덕분에 용케도 그 단어 하나는 남아서 서울에 돌아온 뒤에도 종종 떠올려 보곤 했다. 자꾸 생각하니 그녀가 그 공원 전망대에서 노을을 보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었던 것도 같다.


서둘러 나왔는데도 이미 제법 붉게 물든 하늘을 보니 마음이 급해진다. 숙소를 나와 걷는 요세포프(Josefov)의 뒷골목은 지난밤보다 길게 늘어진 것 같다. 발로는 걸음을 재촉하면서 동시에 긴 입김을 의식적으로 내뱉는다. 눈앞의 여명이 조금이라도 옅어지면 혹 아침이 늦춰질까 싶어서.

블타바(Vltava) 강 북쪽 체흐 다리(Čechův most)의 중간쯤 지났을까, ‘빠아아앙’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빨간색 트램 한 대가 오른쪽 어깨너머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 도시가 모두 잠들어 있을 거라 착각하고 차도 위를 걷고 있던 나는 요란한 아침 인사에 깜짝 놀랐다. 인도로 폴짝 뛰어올라 고개를 돌리니 트램이 떠난 자리 너머로 강과 다리가 온통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다. 등 뒤, 그러니까 프라하 성 지구에는 아직 파란 어둠이 남아 있다. 아침과 밤 사이의 섬 혹은 새로운 대륙을 발견한 나는 탐험가가 된 것 마냥 설렌다. 횡단보도 너머로 레트나 공원(Letenskápláň)과 연결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 ‘어쩌면_할 지도’ 본문 .



아픔과 낭만이 공존하는 땅, 프라하 요세포프(Josefov)


프라하 성과 구시가 광장, 바츨라프 광장 등 프라하에는 무척이나 많은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유명 관광지만 둘러보기에도 시간이 빠듯하다 보니 이렇다 할 대형 건축물도 없고, 상점보다 주거지가 많은 이 동네를 일부러 찾는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두 번째 여행에서 묵을 숙소를 찾으며 요세포프란 이름을 처음 알게 됐으니까요. 하지만 머무는 이곳만의 소박하고 멋스러운 분위기에 푹 빠져 지냈고, 다녀온 후에는 정겨운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화려한 여행을 꿈꾸는 이에게는 조용하고 재미없는 뒷골목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한쪽 어금니 언저리에 지긋이 낭만을 머금고 산책을 즐기기에 요세포프만한 곳도 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세포프의 본래 이름은 '유대인 지구'라는 뜻의 지도프스케호 몌스토(Židovské město). 8세기경 프라하 시가 타민족들의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이 지역에 정착하도록 한 것이 그 시작입니다. 하지만 보호보다는 주변으로 장벽을 쌓아 격리시키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탓에 빈곤과 차별에 시달리며 그들만의 문화를 이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렇게 천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18세기 후반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요제프 2세가 유대인 거주자들에게 평등권을 부여하는 관용법을 반포하면서 긴 차별의 역사가 끝났습니다. 요세포프라는 지금의 이름은 이 요제프 2세의 이름을 딴 것입니다.

무심코 걸으면 중세 유럽의 낭만 가득한 프라하의 여느 골목과 같아 보이지만, 요세포프 곳곳에 프라하 그리고 유럽 내 유대인들의 겪었던 핍박과 해방의 역사가 남아있습니다. 13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신구 시나고그(Staronová synagoga)를 비롯해 각기 다른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클라우스 시나고그(Klausova synagoga), 스타로나바 시나고그(Staronová synagoga) 등의 유대교 회당 건물들을 보며 이 좁은 땅에 녹아있는 긴 세월을 가늠해보게 됩니다. 그밖에도 일반적인 시계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히브리어 시계로 유명한 유대 구청(Židovská radnice),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묘지인 옛 유대 묘지(Starý židovský hřbitov)가 있습니다. 죽어서도 이 지역을 벗어날 수 없었던 유대인들은 좁은 공동묘지에 많게는 수십 명이 겹쳐서 묻혀 있다고 합니다. 어지럽게 꽂힌 비석들에서 단편적으로나마 그 아픔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저렴한 숙소를 찾다 머물게 된 묘지 바로 옆 아파트가 뜻밖의 발견들이었이죠.


옛 유대인 묘지는 많은 유대인들이 찾는 곳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요세포프는 무척이나 평화롭고 운치 있습니다. 중세 유럽 건축물 사이를 걷는 즐거움이 여전하며 유명 관광지와 비교할 수 없지만 좁은 골목에 열린 시장에서 기념품과 먹거리를 살 수 있습니다. 식당과 카페가 관광객들로 북적이지 않고 낯선 길에선 종종 재미있는 조각상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골목 끝엔 블타바 강이 있고, 불과 몇 블록 거리에 구시가 광장이 있으니 언제든 프라하의 낭만과 조우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중심가보다 저렴하게 숙소를 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골목에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을 만큼의 낭만이 있죠

스치는 여행보다 머무는 여행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편한 숙소, 괜찮은 식당 하나, 마음에 드는 카페 하나씩만 찾으면 언제까지고 프라하에 취할 수 있을 거라는 추천사와 함께. 그리고 제가 요세포프에 머무는 동안 저를 사로잡았던 장소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제게 특별한 이야기를 안겨 준 이곳이라면 누구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레트나 공원(letenská pláň)

프라하에서 가장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추천받은 공원입니다. 요세포프 북쪽에 있는 낮은 언덕으로 블타바 강을 건너면 계단을 따라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습니다. 프라하 구시가지 일부와 카렐교, 멀리 프라하 성까지 도시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스폿으로 현지인과 관광객 모두에게 유명합니다. 꼭 야경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멋진 뷰를 볼 수 있으니 여행 중 한 번쯤 찾아가 볼 만하지 않을까요? 저는 해 뜨는 풍경을 이 곳 전망대에서 보았습니다. 전망대는 거대한 메트로놈과 함께 까마득한 높이의 줄에 매달린 운동화들이 유명합니다. 신발끈으로 묶은 운동화 한 쌍을 던져 줄에 건 것인데, 누군가의 장난으로 시작된 것이 이제는 사랑이나 소망이 이뤄진다는 미신이 된 거겠죠?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재미있게 보신 분이라면 촬영지였던 레스토랑 하나브스키 파빌론(Hanavský pavilon)에서 야경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멋진 여행 계획이 될 것입니다.


https://goo.gl/maps/jsRoLa9othH2


Kafka snob food

여행 마지막 날, 카페를 나서 구시가 광장 쪽으로 걷다가 그녀에게 건넨 농담을 기억합니다.

“다음 주 일요일에도 카페에서 만나.”


여행하다 보면 누구나 단골 삼고 싶은 집 하나쯤 만나기 마련이잖아요. 두 번째 프라하 여행 중 매일같이 모닝커피를 마셨던 요세포프의 한적한 카페 Kafka snob food가 그런 곳이었습니다. 체코 사람들이 존경하는 예술가인만큼 프라하에서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이름을 딴 식당과 카페들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들어서기 전엔 그저 그런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풍스러운 가구와 소품들이 자아내는 낭만적인 분위기에 푹 빠졌습니다.


에그 스크램블과 베이컨, 빵, 간단한 채소 그리고 커피. 5천 원 정도로 먹을 수 있는 이곳의 아침 식사 메뉴는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그 수수함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사람들의 분주한 아침 풍경 속에 있는 느낌도요. 코발트블루 색상의 벽에 짙은 녹색과 겨자색 테이블, 낡은 밤색 의자가 촌스러운 듯 멋스럽게 어울리는 실내 풍경이 요즘도 가끔 생각납니다. 앉자마자 잠이 들 듯 안락했던 붉은색 소파가 몹시 그리울 때도 있어요.


https://goo.gl/maps/cTa2Je7fTo72

주소 : Široká 64/12, 110 00 Staré Město

전화번호 : +420 725 915 505

영업시간 : 월-금 AM 9:00 – PM 10:00 |  토-일 AM 10:00 – PM 10:00




1월 25일 금요일 저녁, '하나의 경험이 ___ 되다.'라는 제목으로 독자분들과의 만남 시간을 갖습니다. 2019년 새해를 시작하는 우리의 가능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격려하는 시간을 갖고 싶어요. 안내 및 신청 페이지는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일자 : 2019년 1월 25일(금) 19:30

장소 : 서울숲 얼리브 라운지 (https://alliv.co.kr/)

https://brunch.co.kr/@mistyfriday/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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