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으려 나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당신은 어디에서 온 사람입니까?

by 금요일
오전 일곱 시 삼십 분
프라하 Masarykovo nádraží 역.



알 수 없는 문자들 아래로 낯선 표정들이 스친다. 몇 분 후면 또 한 무리가 지날 것이다. 벌써 예닐곱 무리쯤 흘려 보냈으니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모든 낯선 이는 새 것이고, 이 풍경은 쉬 질리지 않는다.


여행의 마지막 아침, 대답해 줄 사람이 간절히 필요했다.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이들은 알 것 같았다, 이미 떠나온 이들이라면.


Masarykovo nádraží, PRAHA


낯선 도시에서 본 가장 낯선 풍경은 단연 붐비는 아침 기차역의 장면들이었다. 이 곳에선 도무지 떠나갈 사람과 떠나온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다. 바쁘게 재촉하는 그의 발걸음엔 누군가를 떠나온 묘한 홀가분함이, 웃으며 내 곁을 스치는 그녀에게선 재회의 묘한 씁쓸함 같은 생소한 것들이 풍겼으니까. 낯선 이는 줄곧 킁킁거리며 이 낡은 기차역 가득히 퍼진 정서를 맡았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곧 숙제가 되었다.



기차역에 한참이나 서 있는 내겐 목적지가 없다.


어느 곳으로도 떠날 수 없는 것이 곧 이별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을까. 이 날 나는 티켓을 찾지도, 시계를 보지도 않았지만 쭉 기차역에 있었다. 머물러야만 하는 이 시간이 좋았던 것 같다. 나를 위로하듯 떠나는 이와 돌아오는 이는 번갈아가며 춤을 추었고, 더러는 가만히 앉아 제법 큰 속삭임을 낸다. 그 소리가 빗소리를 쫓아내고 공간을 채운다. 이제 보니 속삭임과 노래는 닮은 구석이 많다. 그렇게 가사뿐인 노래가 한참 동안 흘렀다.


SJ150317.jpg
SJ150264.jpg
P4280134.jpg
SJ150301.jpg


나는 종종 그들을 따라 작은 역을 나서고 또 들어섰다. 그 즐거움엔 굳이 '그들의 일상'이나 '평범함' 같은 수식어를 붙일 필요가 없다. 떠나야만 했던 곳에서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는 새로웠고 얇은 문 하나 사이로 이별과 재회를 익힐 수 있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때마다 기차역은 다른 세상처럼 변해 있었다. 마치 기차여행처럼, 닮은 형태로 다른 이름을 가진 역들을 거치고 또 스치듯이.


SJ150333.jpg
SJ150305.jpg


그들이 종종 걸음을 멈춰 설 때면,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당신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무엇이 당신을 멈추게 했나요, 혹시 가야 할 곳을 잊으신 건 아닌가요 라고. 그들은 멈춰 선 동안 주인공이 되어 그를 중심으로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세상을 감상했다. 그들을 따라 관성처럼 내밀던 걸음을 잠시 멈춰 서니 알 것 같다. 떠나지도, 돌아오지도 않는 방법을.


P4280234.jpg
P4280173.jpg


"당신은 왜 웃고 있나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그렇다면 당신은 왜 웃고 있지 않나요?"라며 되묻는다. 그렇게 이 곳을 꿈꿨다면서, 오늘을 기다렸다면서. 그 무게가 내가 던진 것의 기십 배쯤 되는 것을 보니 큰 잘못이라도 한 듯 붉어진다. 대답 대신 그의 미소를 흉내 내본다. 흉내라고 생각하니 어렵지 않다. 그 미소가 곧 내 것이 되고 어느새 그와 나는 마주 웃고 있다. 이제 숙제를 다 한 것 같다.



마침내 떠나온 것인지, 떠나려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될 즈음, 생소한 경적 소리가 울리며 영원히 멈춰있을 것 같던 낡은 트레인 하나가 멀어진다. 다시 훔쳐 담는 시선에서 꽤나 오래 머물었던 흔적을 본다. 다음 경적이 울려 이 소리가 익숙해지기 전에 나도 기차역을 떠나야 한다. 이별은 늘 익숙함의 꽁무니에 숨어 있었다.


이제, 여행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