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노비스벳 (Nový Svět)

새것이라는 이름의 오랜 것

by 금요일
참 이상한 길이었어
그 길만은 아직도 프라하라 부르지 못하니까


걷는 내내 낯선 기분에 사로 잡혔던 이유는 단순히 이 길이 내가 만난 첫 프라하 풍경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걸음을 내딛을수록 묘한 익숙함을 느꼈다. 단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던 돌들은 멋진 봄 하늘을 향했던 시선을 땅으로 끌어내렸고, 발 끝을 보고 걸으며 이 시간들에 보다 진지해졌다. 그 짧은 독백이 없었다면 그 봄 내 시선들은 얼마나 경박했을까.


뉴 월드라는 뜻의 노비 스벳(Nový Svět). 모든 것이 새로웠던 오백 년 전의 '새 길'은 이제 오래된 것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소개된다. 더 이상 새것이 아니지만 여전히 그렇게 부르고 기억한다. 마치 더 이상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그 사람이 몇몇 수식어 뒤에 숨어 여전히 맘을 간질이는 것처럼. 물론 그보다는 훨씬 정당하지만.



빛만이 있었다, 다행히.


처음 맞이한 아침, 이 길이 내게 선사한 기분 좋은 고독이 아직도 잔향처럼 코 끝에 남았다.


몇 발짝 앞에 쏟아진 햇살은 좀처럼 잡히지 않고 적당히 구불한 돌길은 굽이굽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팔다리 달린 것만 봐도 네가 떠오르던 내가 몇 걸음 뒤만 떠올리며 걷는다. 얼마만일까, 이렇게 깨끗하게 비우고 가볍게 걷는 것이. 수백 년 전의 그들에게 말을 건네 본다. 이 길이 내 기대보다 훨씬 길었으면 좋겠다고.



새 것이 남아있지 않은 이 길이 나에게만은 분명히 새 길이다. 어깨에 내린 햇살이며 수 없이 들락이는 공기, 눈이 닿는 모든 장면들이 모두 새것이다. 수 많은 이들에게 이 길은 여전히 뉴 월드이니 그들이 붙인 이름이 마냥 경솔하지만은 않았다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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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하늘에서 땅으로. 선 틈으로 색을 입히듯 빠짐없이 시선을 칠했다. 원치 않게 파이고 깎인 풍경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것들이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그들의 손과 표정들이 떠올라 웃는다. 문득 이 행복을 독점할 수 있게 해 준 텅 빈 이 길이 눈물 나게 고맙다. 그렇게 이 길은 나도 모르게 나를 계속 벗긴다. 어느새 참 많이 가벼워졌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많은 이에게 이 길은 지겹도록 긴 행군이다. 결국 뛰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지루함이다. 그리움을 떨친 이에겐 짐 없이 뛰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경쾌한 산책이다. 그 사람에 대한 고집을 버리는 순간 이 길 위의 모든 것과 대화할 수 있다.


이 길을 걸으면 알 수 있다, 내가 아직 그대를 얼마나 남겨놓았는지.


길의 길이는 걷는 이의 그리움이 정한다.



나를 삼킨 그 산책에서 힘들게 빠져나와 다시 프라하와 마주한다.

그제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복잡한 풍경들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얼마만인지 시계를 보니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 여행은 이제 막 시작이다.


꿈속에서 또 한번 꿈을 꾸듯, 또 하나의 작은 여행이 끝났다.

그 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