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구시가지, 그 걸음엔 목적지가 없어 더 즐거웠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나오기 힘든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 아세요?
선생님의 그 질문은 매우 흥미로웠다. 근본적이라는 단어가 불가능이라는 뜻처럼 들려 묘한 서운함도 들었지만. 그런 연구는 대체 누가 한 것일까, 누가 반박을 좀 해줘야 할 텐데 라는 생각들을 하며 귀를 세웠다.
"빛의 품질이 달라요"
확언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수긍했다. 빛의 차이가 만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로 이어졌고 건물과 조경, 나아가 예술을 대하는 '미감'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 게다가 어릴 적부터 회색 도시에 갇혀있는 이들과 수없이 많은 색들에 노출된 사람은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에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출발점이 다르달까. 하지만 그것은 이 안에 갇혀 있을 때의 이야기이며, 타고난 것 때문은 아니라는 말을 그는 덧붙였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우연히 그 말을 떠올렸다. 봄이 절정이었던 4월 프라하에서.
호텔에 짐을 대강 던져놓고 나오니 세찬 비가 내리는 화창한 날씨가 펼쳐졌다. 셋째 날에야 겨우 마주한 화창한 하늘이 반가운데 그게 제법 굵은 비 사이로 보이니 아주 재미있다. 프라하 성 지구의 한적함과 너무나도 다른 시가지의 소란스러움에 고대 양식의 건축물 사이로 흐르는 트램과 사람들, 난생처음 만난 날씨까지. 한꺼번에 닥친 낯설음 탓인지 강한 햇살 탓인지 잠시 아득해져서 눈을 감았다.
비는 그렇게 짧은 환영인사를 건네고 그쳤다.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지 우산을 쓰지 않고 걷는다.
아, 유럽 날씨
촌스럽고 말도 안 되는 문장 하나가 튀어 나왔다. 아무래도 선생님께 '그 말 뜻을 이제 알겠어요'라고 전하려던 것 같다. 눈 앞에 어두운 것이 없는 풍경은 이 도시가 간직한 천년의 시간을 한 눈에 품게 해주었다. 애초에 목적지를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후로는 무아지경으로 걸었다. 다만 되도록 많은 것들이 보이도록 두리번대며.
어느 도시보다 햇살이 공평한 곳,
프라하가 그렇게 기억된 이유를 떠올려보니 바로 이 장면이다.
그 도시는 걸음마다 떨림을 줬고, 골목마다 놀라운 것을 보였다. 눈을 깜빡이는 동안 낮과 밤이 몇 번씩 지나고 시선을 좌에서 우로 옮기는 동안 수백 년이 흐르는 듯, 오랜 도시의 낡은 유산 속에서 시간의 흐름은 분명히 달랐다. 나중엔 그 속도가 버거워 몇 걸음 앞에 작은 골목길이 있으면 일부러 한두 발짝쯤 전에 멈춰 서서 허리를 숙이고 빼꼼히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다 종종 더 깜짝 놀라기도 했다.
이 날, 봄 하늘 아래서 도시의 골목들은 크면 큰대로, 작으면 작은대로 다 좋았다.
그 길엔 걸음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묘한 탄력이 있었다. 이 좋은 오후, 걸음에 목적지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이대로 특별한 것 없이 골목골목 이 도시를 한바퀴 돌더라도 그것도 그런대로 행운이다. 이 날씨를 대수롭지 않게 흘려 보내는 사람들의 무심한 뒷모습과 능숙한 움직임들은 내 감흥과 무척이나 대비된다.
이봐요, 당신에겐 더 이상 이것들이 놀랍지 않나요?
그렇게 얼마간 걷다 보니 우뚝 솟은 탑 하나가 저 멀리 보인다. 옆길로 빠지고 건물 뒤로 숨어도 어쩐지 점점 더 가까워지기만 해 마침내는 내 앞에 섰다. 이것이 그 유명한 프라하 천문 시계탑이며 서 있는 곳이 프라하라면 누구나 떠올릴 구시가 광장이라는 것은 굳이 표지판을 보거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중에 보려고 아껴뒀는데라며 아쉽다가도, 이런 완벽한 하늘 아래 볼 수 있는 날이 언제 또 있나 싶어 다행이라 한다.
천년 수도의 역사를 한 품에 간직한 구시가 광장, 그 위에서 셀 수 없는 놀라움들을 만났지만 나는 그 시작에 이 짧은 걸음을 먼저 이야기한다. 마치 내가 당신을 만나기까지의 시간들을 몇 번이고 이야기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