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일기亡命日記 8

by 우인

망명일기 8


사춘기 시절, 모든 것이 불만족 스러웠던 그 때-

서울도 싫었고 학교도 싫었고 모든 게 싫었던 그 때-

나의 유일한 탈출구는 책이었고

책과 더불어 사람의 이름에 탐닉했다.


책을 읽을 때도 내용 보다는 연보를 먼저 읽는 습관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하지 않았다.

이름 名에 집착하는 점은 지금도 그렇지만

사춘기 시절은 더 했다.

그 당시 난 내 이름에 매우 불만족스러워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많은 이름 중에 이런 여자이름을 지어서

놀림을 받게 하였을까?


이럴때 국어 시간에 배우던 이름.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금동 김동인, 소월, 영랑, 월탄, 노작,

서해, 미당, 육사, 만해, 도향, 파인, 다형, 고월, 회월 등

號를 외우기는 어려웠는데 멋있어 보였다.

그 때부터 나의 탈출구는 號였다.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부터 시작해서 1,500여명의 호를 조사했다.

논문을 쓰겠다는 목표로 호에 많이 쓴 한자를 찾아 통계를 내고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 정도 호에 관해 안목이 생긴 거 같았다.

결국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는 데 끝내 논문은 못썼다.


1988년인가 전북대 교수가 "호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썼던데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 유사했다.


그 당시 호에 관해 많은 조사를 한 덕에

나도 이리저리 호를 짓기 시작한 거 같다.


중 3때 내가 지은 나의 호를 떠올려 보면

炭湖 - 영월이 석탄이 많이 나서 이런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紫山이라고 이건 봉래산이 좀 붉은 빛을 띈 거 같아

김동인의 소설 "붉은 산"을 패러디해서 지었다.

그 다음은 茶樹라고 - 이건 외가 多水里를 한자 변형을 해서 지은 거고


본격적으로 남의 호를 지은 건 고 2때인 1976년,

문학반 친구에게 연파淵坡라고 지어 준 것이 처음이다.

약간 고전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고 2때 솜씨로는 봐줄만 하다.

그 후 한참을 호에 관해서는 잊고 있다가

대학교 1학년때 어떤 여학생에게 지어준 號가 "艸如"

한글로는 풀잎이라고 불렀다.

풀잎같이 청초하게 생긴 그녀에게 지어준 호인데

지금 생각해도 멋있다.


그 후 1984년 군대 제대후 복학생일 때 만난

만화 "캔디"에 나오는 패트리샤 닮은 그녀에게

지어준 호는 "艸霞",

뭐, '노을 지는 언덕에 풀잎이 떨고 있네..."

이렇게 시작되는 詩도 같이 써 주었던 거 같다.

그 후는 연도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茶霞" 라고

"차 속에 저녁 노을이 잠겨 있고

마음 속에 그대가 잠겨 있네."

아마 이런 짧은 詩를 써 주었던 거 같다.


큰 뜻은 없고 내가 가장 호가

茶山 정약용선생, 紫霞 신위선생이야.

두 분의 호를 한 자씩 떼어다 지었는데

여자가 엄청 좋아한 기억만 난다.


직장동료에게 지어준 것중 기억나는 건

義松 의리의 소나무라는 뜻으로 지어 줬다.

寬山 이 친군 무주 친구인데 성격이 너무 강해서

무주의 진산 德裕山에서 넉넉할 裕를 변형해서 너그러울 관으로 했다.

靜後 불교적 화두로 고요함의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耘翠 운치있게 항상 푸르름을 간직하라는 의미

怡岡 남들이 너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 주라는 의미

荷墅 연꽃으로 지은 농막이라는 뜻, 荷屋 김좌근이라는 안동 김씨 정치가의 호가 기억나서

하옥은 너무 뽐내는 듯해서 겸손한 뜻으로 가장 작은 집, 농막으로 지었다.

雅蕙 내가 예뻐한 작가, 아혜, 아이의 고어, 영어로는 babe,

亶溪 내 1년 선배인데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출신이라 믿을 단 계곡 계라 지었다.

丕山 큰 야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지어 줬다


제주와서는 별로 안 지었다.

내 아래 부장에게는 南冠

남쪽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뜻도 되고 이 친구 고향이 南元이라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어떤 작가에겐 章川, 글을 정말 잘 써서

글의 내(川)가 바다까지 도달하라는 당부도 전했다.

晩穀 늦게 결실을 맺을거라는 의미.

奈山 어찌 한라산의 기상을 받아 큰 일을 못하냐는 질책을 담았다.


돌이켜 보니 한 40명 되는 거 같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내가 홀르 지어 준 것이.


우리는 崇名사상이 강해서 名대신 字, 號, 堂號등으로 호칭했다.


내 自號는 又人이다.

영어로 and man 우리말로 ‘그리고 사람이 있었다’ 라는 뜻.

모든 것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사람이 있어야 된다는 뜻,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의미...


그런데 號도 좋지만

내 이름도 맘에 드는걸 보니

나이가 들어서 너그러워 지는 건지

아무튼

내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가 그리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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