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안고수비
안고수비(眼高手卑)
예전에 우리 업계에서 수시로 쓰는 말중 하나,
바로 안고수비(眼高手卑)였다.
눈은 높으나 재주가 따르지 못함을 일컫는 말이다.
굉장히 속상한 말이었지만 워낙 이러한 인물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관용어처럼 느껴진다.
도처에서 만나서 이젠 뭐,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후배 중엔 눈(眼)이라도 높으면 다행인데, 아예 보는 눈(目)조차 없는 친구가 더 많으니 문제였다.
최근 3년간 “영상제작” 강의를 하면서 늘 강조하는 말이
“보는 눈이 있어야 잘 만들 수 있다” 였다.
어떤 게 좋은 줄 알아야 좋은 걸 따라갈 수도 있는데 아예 보는 눈조차 없으니 그게 더 문제였다.
안목이 있으면 그나마 자신의 재능을 알아보기라도 하는데,
뛰어나지 않은 후배 대부분은 자신이 업계의 대가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니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무시한다.
난 한 번 이야기 해 보고 두 번은 안한다.
우리 동기들은 비교적 현장경험이 많아서 몸으로 체득한 것이 많았다.
자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엔 선배라고 하시는 분들조차 라디오만 하다 갑자기 영상제작을 하니 경험부족으로 뭘 얘기해 줄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동기 중엔 괜찮은 선배를 만난 친구들은 쉽게 적응해 같는데,
난 회사서 아주 평판이 좋지 않은 분들만 8년 내리 만난 것 같았다.
이것도 나중엔 경쟁력이 된다고 느꼈다.
평판이 안좋으신 선배들은 워낙 후배와 많이 다투고 싸워 아무도 같이
하고 싶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좀만 잘해주면 될텐데~~
아무튼 나는 주로 이런 분들 아래서 초반을 보냈다.
비교적 무난히 잘 견딘 편이었고, 누구한테도 배운다는 자세로 임했다.
그 8년 동안 주로 배운 것은 반면교사(反面敎師)였다.
내가 나중 선배가 될 때는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정말 나중 그렇게 했나 생각하면 아닌 덧 같지만
어쨌든 '사례연구'로는 좋았다.
각설하고, 이 업계에서 비교적 무난하게 잘 보낸 것은
사춘기 시절의 적당한 습작(習作)과 다독(多讀)의 결과였다.
난 작가들의 원고를 보고 정말 잘 쓴 원고는 토씨 하나 안 바꾼다.
그리고 칭찬한다. 자기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한테 작가들은 잘한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만나는 작가들이 많다.
작가 중에도 본인을 대가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이들은 사양한다.
그런데 후배들을 보면 자기들이 뭔가라도 손을 안대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하는지
오히려 개악이 되는 소위 '빨간펜' 선생이 된다.
‘갑질’이다.
그러면 작가들과 분란이 생기고 작가가 그만 두는 경우를 참 많이도 봤다.
요즘도 작가들을 만나면 자기들이 겪은 상황을 얘기하며 분노한다.
그러면 난 빙그레 웃는다. 누구 편을 들어 줄 것인가?
작가도 나한테 하소연하는 것이 동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은퇴 후, 예전에 꿈꿨던 시(詩)를 써보려고 했으나 참 재능이 없다.
눈은 높으나 손이 안 따라오니 괴롭다. 보는 눈은 있어 가지고~~
그래 이제는 그냥 즐기려고 한다.
뭐, 이 나이에 시인이 되면 뭐 할 것인가?
20대는 잘난 척하고 싶어서 그랬지만,
이제는 시를 즐기고 인생을 풍요롭게 살면 될 것 아닌가?
그렇게 마음 편히 먹기로 했다.
언젠가 개그콘서트에서 유행했던 말이 생각난다.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잘난 척하기는~”
잘난 척 해봐야 누가 알아줄 것인가?
內素軒에서 又人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