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수(부사)열전
영월군수(부사)열전을 준비하며
영월군수에 관한 글을 쓰려고 퇴근하면 매일 2시간씩 古典을 뒤졌다.
조선시대에 한정하여 온갖 자료를 찾았으나 어렵게 어렵게 찾은 인원이 겨우 215명이다.
조선 태조부터 고종때까지 500년이 넘은 기간동안 찾은 인원이었다.
왜 郡守(府使)에 집착했는 지는 예전에 내가 濟州에 제작국장으로
2년 있었을 때 제주역사에 대해 좀 공부를 했었다.
제주도지사를 만나도 내가 제주역사에 대해 얘기했었던 입장이었다.
그 때 느낀 점은 "제주민들은 불행하구나!" 이런 감정이었다.
조선 500년동안 제주에 부임한 목민관은 대부분이 탐관오리나
혹은 학문이 부족한 일류는 아닌 느낌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대략 80%가 나쁜 목민관이고
20% 정도가 좋은 목사였다.
제주의 500년 역사는 대부분 한양서 부임한 목사의 수탈과
이런 폭정에 견디다 못해 일으킨 백성의 민란,
그리고 중앙에서 파견된 어사가 수령을 해임하여 민란을 종식시키고
마무리는 민란을 일으킨 백성중 주모자급인 狀頭(장두) 2-3명의 처형,
이런 형태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었으니
백성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으리라 상상할 수 있었다.
역사교과서에 수록되지 못할 정도의 작은 민란은 500년 동안 이어졌다.
수령이 누구냐에 따라 백성의 삶은 천국과 지옥을 갈 수 있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서귀포에는 감귤에 번호를 매겨서
태풍이 불어 감귤이 땅에 떨어지면 책임지는 백성은 곤장을 맞았다고 한다.
그 지역의 목민관과 백성의 운명은 바늘과 실 같은 관계였다.
누구를 지역책임자로 보내냐는 중앙 정부에서 그 지역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밀접한 관계가 있다.
때문에 영월군수(부사)로 어떤 사람이 왔느냐 하는 문제는 영월이라는 지역의존재감과 관계가 있다.
조선시대 牧民官은 사법,군사,행정,조세등 전권을 갖고 있는 책임자이기 때문에 목민관의 성향에 따라 그 지역의 학문이 신장되기도하고
백성의 질이 향상되거나 피폐할 수 도 있다.
조선 숙종25년(서기로는 1699년)부터 영월군수가 영월부사로 승격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격상이다. 군수는 종4품인데 반하여 도호부사는 종3품으로
2계단이나 승격한 케이스다.
대개 이런 경우는 왕비나 왕후의 고향이거나 혹은 공을 세운 사람의 고향일 경우승격시키고 반대로 역모자가 나온 지역은 강등당하기도 한다.
영월의 경우는 숙종때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권되고 군이 도호부로 승격된 케이스다.
현재까지 찾아낸 자료를 토대로 일단 영월군수(부사)는 대부분 문과급제자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상당히 큰 의미를 갖는다.
21세기에야 조선시대의 과거제도가 크게 실감이 안들겠지만
내가 예전에 읽은 책에서 보니, 조선시대 전체 선비의 수를 10만명으로 보고
과거를 통해 3년에 33명이 합격하니 1년에 11명, 10만명이 시험에 응시한다고 쳐도 10만명 당 11명이 합격, 합격률은 0.0001%이다.
뭐 정규시험인 식년시 말고 별시나 혹은 증광시, 알성시등이 있다고 쳐도
합격률이 0.1%도 안되는 정말 어려운 시험이었다.
예전엔 나도 조선시대 태어났으면 과거에 급제해 군수나 목사정도야 했겠지
뭐, 이런 막연한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책문"(소나무刊, 2004년)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부터는 조선시대 과거급제자가
엄청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요즘 고시보다도 훨씬 어렵다고 생각하면 된다.
조상중에 문과급제자가 있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만 하다.
대단한 일이었다.
조선시대의 관리임용제도는 문과, 무과, 문음 그리고 천거제도가 있었다.
아직 통계는 안 내봤는데 영월군수(부사)의 80%는 문과급제자이고
조선 후반에는 영월부사를 거친 분이 거의 대부분 승지로 간 경로를 확인했다.
그것은 임금이 굉장히 신뢰를 하였다는 반증이다.
영월부사를 역임한 대부분이 중앙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내고
청백리도 몇분 계시고 시호를 받았다는 것은 영월군민에게는
일정부분 행복한 환경이었다.
당대 일류학자로 부터 배울 수 있는 환경과 더불어 청렴결백한 목민관이 옴으로써
삶의 질은 다른 지역보다 더 나았으리라 생각된다.
유명한 분으로는 한강 정구선생과 인조때의 유명학자이신 박지계선생이 눈에 띈다.
아직 모든 자료를 검토해 보진 않았지만
얼핏 본 영월군수(부사) 215명의 전체를 평가하자면
A+는 아니고 A- 혹은 B+ 정도라고 생각된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자의적 해석이다.
그밖에 영월에 관한 시들, 관련 문서, 영월출신 인물들을 찾아서
퇴직 전에는 마무리를 해 볼 작정이다.
그러나 마무리는 못하고 아직도 군수와 부사 파일만 갖고 있다.
이 게으름병을 어찌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