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문(記文) 10

- 백학재기(白鶴齋記)

by 우인

백학재기(白鶴齋記)


강원도 평창 다수리에 외사촌 형님이 은퇴해서 집을 지은 지 4년,

오늘에야 집 이름을 “백학재(白鶴齋)”로 짓는다.


평창(平昌)의 옛 이름은 ‘백오(白烏)’,

울산(蔚山)의 옛 이름은 ‘학성(鶴城)’.


형은 강원도 평창의 다수리(多水里)에 태(胎)를 묻고 자라

울산에 맨손으로 가서 크게 성공하고 이제는 고향으로 내려와 살고 있으니,

형의 인생에는 평창과 울산의 두 곳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 흰 까마귀(白烏)가 울산에 가서 학(鶴)이 된 형국이니

백학재(白鶴齋)가 크게 어색하지는 않으리라.


조선시대 학자 여헌(旅軒) 장현광 선생이 학(鶴)을 일컬어, “학(鶴)이라는 새는 날고 멈추고 서식(棲息)하는 것을 보통 새들과 함께하지 아니하여 반드시 신선(神仙)이나 도사(道士)들의 짝이 되니, 노인을 학에 비유함은 이 때문이다.” 했으니 학(鶴)으로 집 이름을 삼는 것은, 兄이 신선처럼 유유자적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바이다.


마당에 있는 정자의 이름이 청람정(靑嵐亭)이니

청람정의 靑과 백학재(白鶴齋)의 白이 대구도 이루어 적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평창의 다수리(多水里)는

앞에는 강이 휘돌아 돌고

뒤에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백학재(白鶴齋)의 거실에 앉아 있으면 멀리 옥고개가 보이고, 앞에는

평창강이 내려다 보이는 마을의 중심에 자리 잡은 명당이다.


이런 곳에서 인생의 절정을 조용하게 신선처럼 살아가는 형은 행복할지어다!

언제나 다수리를 그리워하고

언젠간 다수리로 돌아가고 싶어한 사람,


又人이 내소헌(內素軒)에서 진정을 다해 기문을 짓다.



작가의 이전글기문(記文)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