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을 꼽으라면
대한민국 최고의 詩人을 꼽으라면?
어렸을 적에
영월에서 동네친구들이랑 놀던 시절,
같이 놀던 놀이는 늘
“누가 누가 잘하나?” 였다.
누가 먼저 봉래산에 올라가나,
누가 더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리나,
누가 더 멀리 오줌을 싸나,
누가 더 물수제비를 많이 뜨는가,
누가 더 잠수를 오래 하는가,
등등 언제나 순위 매기기였다.
낙화암에서 수영을 하다 지치면
물가에 앉아 돌을 양 귀에 대고
동강물이 많냐, 서강물이 많냐 하고
좌우로 흔들면
귀 안에 들어갔던 물이 돌멩이에 젖곤 했다.
그러다가 모든 놀이에 지치면
마지막엔 말로 하는 경쟁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나라의 군인은?” -
세상에, 어떤 근거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 답은 중구난방으로 나왔다.
주로 독일, 소련, 일본, 터키 등등...
중간엔 늘 대한민국이 자리 잡았다.
“세계에서 제일 빠른 비행기는?”
“세계에서 제일 센 장군은?”
대부분이 여포라고 얘기했지만
가끔 관우나, 장비 그리고 을지문덕
혹은 강감찬 장군까지 나오고
승자는 언제나 목소리가 제일 큰 놈이었다.
아무도 알 수 없고 근거도 없지만
우기는 놈이 왕이었다.
그래서 순위 매기기를 엄청 싫어 했지만
지난 해 봄부터 올해까지
한시를 몇 년 정도 필사해 보니,
마음 속에서 자꾸
대한민국 오천년 역사에서 최고의 시인은 누구일까? 하는 질문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시를 읽은 기간은 짧지만
나만의 취향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詩人을 꼽으라면,
나는 白雲居士(백운거사) 李奎報(이규보)와
茶山 丁若鏞을 공동으로 꼽겠다.
처음엔 이규보를 단독으로 꼽았으나 날이 갈수록
다산 정약용의 詩가 더 좋아 보였다.
그렇다고 이규보를 버릴 수는 없고 해서 공동 1위.
뭐, 南湖(남호) 정지상을 꼽을 수도,
혹은 動安居士(동안거사) 李承休(이승휴)를 꼽을 수도 있지만
개인 취향이니 다 존중한다.
정지상은 작품이 적어서 조금 아깝고
이승휴는 서사시는 좋으나 서정시가 약하다.
또 蛟山(교산) 허균을 꼽을 수도 있고, 簡易(간이) 최립, 谿谷(계곡) 장유, 龜峰(귀봉) 송익필, 石洲(석주) 권필, 揖翠軒(읍취헌) 박은, 容齋(용재) 이행, 五山(오산) 차천로, 玉潭(옥담) 이응희, 渼湖(미호) 김원행, 象村(상촌) 신흠, 東溟(동명) 정두경, 木齋(목재) 홍여하, 三淵(삼연) 김창흡, 稼亭(가정) 이곡, 孤山(고산) 윤선도, 農巖(농암) 김창협, 東州(동주) 이민구, 石北(석북) 신광수, 雅亭(아정) 이덕무, 사천 이병연, 春亭(춘정) 변계량, 陽村(양촌) 권근, 梅湖(매호) 진화, 등 많은 시인이 있지만 이규보와 정약용에는 미치지 못한다.
참, 학자 중에는 退溪 이황의 시가 가장 좋다고 생각된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가장 훌륭하다.
퇴계는 글씨도 명필이다.
그러나 퇴계는 학자로 생각되고 시의 양으로도 적은 편이라
논외로 치고 시인으로만 따지자면
여전히 白雲居士 이규보와 茶山 정약용을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으로 인정한다.
예전에 이규보의 전기를 읽었을 때는 이규보를 매우 싫어했었다.
관직을 얻기 위해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모습이 싫었으나
이제 나이 먹고 인생을 살아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상황론 인정.
그래서 이제는 인간적인 면모는 버리고 순전히 작품으로만 바라보면
이규보의 詩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가 있다.
세상에 대한 관심도 백운거사보다는 더 넓고 깊다.
우리나라의 한시는 뭐랄까,
우리 언어가 아니어서 그런지
어색한 표현이 많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형식적인 시들이 많다고 느껴진다.
한복 입고 자전거 타는 격일까?
그러나 이규보와 정약용의 시는
우리 언어가 아닌 불완전한 언어라도
시로서 힘을 갖는 절묘한 느낌이 있다.
뛰어난 시인이다.
대부분 정약용을 경세가로만 알고 있는데,
다산은 뛰어난 문학가이다.
시와 산문이 조선시대 최고의 일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규보는 오언절구도 좋고 칠언절구도 좋고 율시도 뛰어나 막힌 곳이 없다.
해학도 있고 정치적인 시도 잘 쓴다.
다산은 율시는 많으나 절구에 절창은 백운거사 보다 적다고 느껴진다.
백운거사 이규보는 스펙트럼은 넓으나 사회에 대한 관심이 다산보다 적고
권력에 아부하는 시들이 감점 요인이다.
해서 백운거사 이규보와 다산 정약용을
대한민국의 최고 시인에 공동으로 랭크한다.
玉潭 이응희는 내가 참 좋아하는 시인이나
대부분 小品이고 세계관이 개인적이어서 좀 아쉽다.
세상에 대한 폭 넓은 관심이 부족하다.
渼湖 김원행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다.
깔끔하고 좋으나 주로 소품이어서 최고로 꼽기는 부족하다.
蛟山 허균의 시는 시의 질이 진폭이 크다.
좋은 것은 좋은데 나쁜 것은 너무 좋지 않다.
의례적인 시가 많아서, 좀 그렇다.
다분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니 너그러이 양해하시길,
마지막으로 백운거사 이규보와 다산 정약용 중에
누가 최고냐고 다시 묻는다면,
아, “그때 그때 달라요” 라고 답할 것이다.
누가 앞선다고 말하기 어렵다,
어떨 때는 이규보, 어떨 때는 정약용.
처음엔 이규보로 생각했으나 다산을 빼고 시를 논하기는 어려워
결국에는 동률로 결론낸다.
처음에 아무 생각없이 읽었을 때는
이규보의 시가 우위라고 생각했으나
다시 읽어보며 생각이 변했다.
단순히 다산은 학자에 문장가에 시인이라는 타이틀이 있어서
이규보를 먼저 꼽았으나 시로만 놓고 보면 두 분 동률.
나의 결론은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은
백운거사 이규보와 다산 정약용 공동 수상이다.